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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Jul 23. 2021

<피닉스>

Phoenix, 2014

1945년 6월 아우슈비츠 생존자 넬리(니나 호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스위스에서 왔다는 레네(니나 쿤젠도르프)가 넬리를 데려가고 있는데우리에게 익숙한 <쉰들러 리스트>(1993)의 쉰들러처럼스위스의 칼 루츠(Carl Lutz)에게서 여권을 받아가는 길일지도 모르겠다뼈가 주저앉고 피투성이인 넬리의 얼굴은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다. 검문소에서 미군이(그의 왼팔에 미국의 29 보병사단 마크가 있었다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붕대를 풀어보라고 하는데 순간 다행이다 싶었던 건우리가 라스 폰 트리에나 아리 애스터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카메라가 넬리의 다친 얼굴을 보여주는 대신 그것을 요구한 군인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것이었다영화는 넬리의 다친 얼굴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넬리가 무사히 병원에 도착해서 수술을 받기 위해 마취에 빠지자 그의 꿈속으로 향한다수용소에서의 차림을 한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상처 투성이었지만 전에 살던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남편 조니(로날드 제르필드)의 뒷모습을 본다꿈에서 깬 넬리가 병실 밖에서 소리가 나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처럼 얼굴에 붕대를 감은 이가 말없이 문을 열었다가 퇴장한다그 역시 넬리처럼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일지도 모르겠다같은 날 다른 꿈인지다음날 꿈에서 깨어서인지 옆방의 환자를 따라 어느 방으로 향하니 자신과 친구들이 있는 사진을 발견한다아니엄밀히는 이 사진을 보고 있는 이와이 방으로 이끈 이가 누구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영화가 시작하고 아직 붕대 안의 넬리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래서 우리는 그녀가 보는 사진 속 누가 넬리인지도혹은 다른 누구인지도 명확히 할 수 없다그저 주인공이 넬리니까짐작만 할 뿐이다펫졸트는 한걸음 더 나아가 레네의 말을 빌려 공습을 받아 이젠 없는 세상인 넬리가 전에 살던 곳으로 향한다다 무너져버린 건물에서 깨진 거울 파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보여준다거울의 파편은 둘이었고왼쪽의 것은 넬리의 인중까지오른쪽의 것은 넬리의 얼굴을 모두 보여주었다전의 얼굴은 볼 수 없게 됐고새로운 얼굴만이 보이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까넬리가 조니를 찾아 들어간 클럽에서도 똑같은 분장을 하고 똑같은 의상을 입고선 등을 맞대고 번갈아가며 노래하는 두 여인도 있었다.


주저앉은 뼈를 복원하고 성형 수술을 받은 넬리는 몸이 회복되자 조니를 찾아 나선다. <피닉스>보다 4년이나 뒤에 만들어졌으나 한국에서 정식 개봉은 더 먼저 됐던 <트랜짓>(2018)이 떠올랐다게오르그(프란츠 로고스키)를 남편 바이델로 착각해 다가가는 마리(폴라 비어말이다마리는 후에 넬리처럼 빨간 원피스에 검은색 코트를 입는다마리가 게오르그를 다른 인물로 착각하지만더 과거의 넬리는 남편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을 우려한다애초에 넬리는 성형수술을 할 때에도 최대한 원래의 모습과 같게 그저 복원이 되길 바랐다달라진 얼굴을 사랑하는 사람이 몰라보면 안 되니까그러나 펫졸트는 이미 두 인물에게 두 번째 초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했다게오르그는 게슈타포에 잡혀가지 않으려면 게오르그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바이델로서 살아가야 했다넬리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원래의 것을 알아볼 수 없게 다치고 말았다다시분명 21세기의 인물인 게오르그를 1940년대의 배경 속으로 보냈듯넬리도 보냈다물론 그 참혹한 수용소에서 넬리가 얼굴만 다쳤겠는가체중도 많이 빠졌을 것이고 여러 이유로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전과 달라졌다고 가정할 수 있지만 넬리의 주변 인물들이 그녀를 완전히 알아보지 못하거나전과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넬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내 머리로는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차라리 <트랜짓>의 게오르그처럼 다른 시공간에서 영화 속 세계로 감독이 보낸 인물 같다드리스(릴리언 뱃맨)의 청각장애인 엄마 멜리사(마리엄 자리)에게 들리는 게오르그의 노랫말이나, <운디네>(2020)에서 요하네스(제이콥 맛쉔즈)인 줄 알았으나 사실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스키)의 것이었던혹은 여항 속 잠수부 피규어가 운디네(폴라 비어)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장면처럼넬리가 클럽 피닉스에서 조니를 명확히 보고 호명하지만 조니는 그 소리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차라리 그런 유령 같은 존재라고 말하지 않으면아무리 겉모습이 달라졌다고 한들 심지어 입을 맞추기까지 하는데 아내를 몰라보는 것을 내 머리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레네는 넬리에게 막대한 양의 유산이 주어졌고그것을 이용해 유대인들이 안전하게 지낼 나라를 세울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트랜짓>에서도 그랬다. 21세기의 펫졸트가 이제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1940년대에게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


내 머리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건 조니가 외형이 바뀐 아내 넬리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심지어 영화 안에서 둘은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마주치기도 했는데 말이다내 상식으로는 전혀 설명되지 못하는 이 무감각함은 차라리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설정인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영화 안에서 의도적으로 빛이 기능하지 못하는 장면들이 많이 있다이미 잠에 든 레네에게 다가가 조니와의 일을 얘기하는 넬리의 얼굴이라던가밤중에 시각장애인 바이올리니스트에게도 그렇다아니검문소를 지나는 레네와 넬리의 앞에 눈부신 섬광이 비치고 그 위에 영화의 제목이 나타나는 영화의 오프닝처럼 빛은 대상을 오히려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조니는 눈앞에 있는 넬리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과거의 넬리를 떠올리며 붉은 원피스와 화장품염색약 그리고 구두를 건넨다넬리는 수용소에서 이제 막 돌아온 인물이 이런 모습을 할 수 없다며 반박한다그리곤 사람들이 수용소에서의 기억에 대해 물을 텐데라며 알몸으로 이제 막 수용소에 도착한 이들의 옷을 조사해 숨겨놓은 돈이나 보석이 있는지 찾아내는 일을 했다며어머니의 옷을 입고 있던 여자애가 자신을 쳐다봤던 기억에 대해 말한다유대인들의 피해에 대해 조사하는 레네는 조니가 넬리를 포함해 다른 유대인들을 밀고한 배신자라고 주장한다. 1944년 10월 4일 조니가 체포됐고, 1944년 10월 6일 넬리가 체포되자 조니는 풀려났음을, 10월 4일에 조니 가 넬리와 이혼을 신청했음을 말하며 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넬리는 조니가 계획한 자신이 자신을 연기하는 모순된 연극을 자처한다심지어 넬리는 조니와 새로 연애를 시작한 소녀처럼 들뜨기까지 한다.


넬리는 조니가 원하는 대로 붉은 원피스를 입고입술도 붉게 칠한다조니가 기억하는 대로 꾸미고 그의 앞에 서서는심지어 입을 맞출 것처럼 다가서자 조니는 무언가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상황을 피한다넬리에게는 환상에서 빠져나오라 죽음으로써 말하는 레네가 있었다이제 막 열차를 타고 수용소에서 돌아온 것을 연기하며 지인들 앞에서 <Speak Low>를 부르는 그때의 장면으로 영화는 나아간다클라이막스의 전날 밤 역에 홀로 서있는 그녀의 앞에 열차가 들어온다유대인들을 싣고 수용소로 향하는 그 열차의 외관을 한 열차가어두운 밤 넬리는 자신이 지나온 진실을 다시 한번 보았고우리는 다음날 햇빛이 드는 밝은 플랫폼에서 남편도 알아보지 못한 그녀를 단번에 알아보는 지인들을 목격하게 된다조니가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 의심스러운 걸까이 지인들이 넬리를 단번에 알아본 것이 의심스러운 걸까붉은 원피스에 검은 자켓을 입고 있던 넬리는 노래를 하기 앞서 잠시 자켓을 벗어둔다자켓을 입어도불을 꺼도붕대를 감아도 넬리는 넬리인데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벗는다기꺼이 타오르고 새롭게 피어날 것이다넬리는 그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곳을 뒤로하고 떠나간다넬리는 하이파나 텔 아비브로 향할까모르겠다드리스나 레네가 있는 곳으로 갔을 수도 있고펫졸트가 전한 사명을 다하고 지금의 현재로 돌아왔을 지도그러나 분명한 건조니는 닿을 수 없는 다른 세상으로 나아갔음일 것이다.


#피닉스 #니나호스 #로날드제르필드 #니나쿤젠도르프 #크리스티안펫졸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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