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Name Engraved Herein, 2020
1987년, 대만에서 무려 38년간 지속됐던 계엄령이 해제된다. 남자 기숙학교에 다니는 자한(진호삼)은 버디(증경화)에게 자꾸 시선이 간다. 기숙학교이면서도 기독교학교를 다니는 와중 연합고사를 잘 치러 상위권 대학에 가는 것이 학교에서도, 학부모들도, 많은 학생들도 원하는 바이다. 자한은 버디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동아리 활동으로 함께하던 악단의 신부님으로부터 “스킨십을 해야만 사랑하는 건 아니야. 내가 그녀를 바라볼 때, 그녀도 날 바라봤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계속 그래 왔지만, 이때도 자한과 버디의 시선은 서로를 향한다.
학교에서 기본적인 플롯의 구조로서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 배웠다. 이야기엔 무릇 위기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에서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위기는 많았다. 학교에서의 억압이 그랬고, 상위권 대학에 가길 바라는 부모의 압박이 그랬고, 시대적인 상황에 스스로 억누르는 자한의 내면에서의 갈등도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얼핏 초반부에서 보이는 요소들이 많은데 영화는 자한의 버디를 향한 마음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1987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나, 2021년에 봐도 전혀 무리가 없는 것엔 그런 이유가 있다.
얼핏 안전하면서도 괜찮은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결말로 나아갈수록 초반부에 가졌던 흥미는 조금씩 떨어진다. 계엄령이 해제되긴 했으나 여전히 전운이 감도는, 학교도 남학교에서 남녀공학으로 바뀌긴 했으나 여전히 남과 여를 철조망으로 나누는 상황 속에서 자한의 외사랑은 실패하고 만다. 실패해도 좋으나 그것의 다음을 다루는 방식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영화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자한이 신부님에게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택하다가, 수십 년 뒤로 갑자기 점프한다. 그렇게 실패하고 만 뜨거운 날의 사랑을 안온하게 뒤에서 회상하는 것이다. 심지어 대만을 떠나 저 멀리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자한과 버디는 재회한다.
자한은 버디에게 갖는 마음으로 괴로워할 때 위로해주던 노인의 손길을 “젠장, 왜 이래요? 전 그런 사람 아니에요. 당신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요!”라며 뿌리치고 도망친 적이 있다. 자한이 버디에게 갖는 마음을 똑바로 보고, 노인에게서 자신을 떼어내는 게 아닌,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먼 훗날, 그 먼 땅에서야 버디를 웃으며 만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사랑한다는 말 대신 계속해서 잘 자(WANAN)라 말할 수밖에 없는 둘의 모습은 애처롭기만 하다. 영화는 자한을 캐나다와 미국의 경계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로 보낸다. <해피 투게더>(1997)에서 아휘(양조위)가 이과수 폭포에 향했듯 말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위치한 이 폭포엔 양쪽에서 모두 가 봐야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느 쪽에서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폭포에 다가가는 방법도, 어느 위치에서 어느 각도로 볼 수 있는 지도 다르기 때문이다. <해피 투게더>에게 상당한 짐을 지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의 결말을 싫어할 수 없지만, 그래서 또 아쉽다. 아휘가 아픈 보영(장국여)을 계속 곁에 두고 함께할 수 있어서 아픈 그의 손이 낫지 않길 바랐던 것처럼, 자한도 아프지만 버디와 함께했던 시간이 여느 때보다 좋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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