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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Jun 13. 2022

<소설가의 영화>

The Novelist’s Film, 2021

개봉과 함께 극장을 찾아 영화를 마주한 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가는 데도 나는 이 영화에 대해 무어라 확신할 수가 없다길다면 긴 시간 동안 영화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기에 한 번의 재관람이 있었으나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홍상수의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그의 전작들과 이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배우 김민희가 맡은 배역들배우 서영화나 기주봉이 영화에 등장하는 것만으로아니 화면 밖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형성되는 어떤 분위기들실제 부부인 효진(권해효)과 양주(조윤희)가 극 중에서도 부부로 나와 보이는 모습들장소나 의미에 있어 겹치는 부분 같은 것들 말이다이번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그런 것들이 등장하지만 같은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


소설가이지만 자신이 소설을 쓰는 데 있어 과장하고 부풀린다고 느껴서 더 이상 쓰지 못한다는 준희(이혜영)가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그런 상황에 처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에 대해 크게 알고 싶진 않았다시인 만수(기주봉)가 이야기에는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이야기의 큰 힘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그런 것들 보다는홍상수의 영화들에서 단지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나 화면에 등장하고 퇴장함에 따라어떤 행동을 취하는지에 따라 발생하는 운동력에 대해 온전히 집중해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준희가 후배 세원(서영화)을 만나러 그가 운영하는 책방에 갔다가 세원을 돕고 있는 현우(박미소)에게 수어를 배우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했다세 배우가 가만히 앉아 날이 아직 밝지만날은 곧 저문다날이 좋을 때 실컷 다녀보자.”라는 문장을 반복하여 수어로 말하는 동안 관객의 눈동자는 바쁘다같은 문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가르쳐주는 현우와 배우는 준희가 단어 하나의 의미를 되새기며 반복하는 동안 발생하는 차이나아무 말 없이 그것을 따라 하기 시작한 세원의 모습을 보기 위해 말이다이후 공원에서 박 감독 부부(권해효조윤희)와 준희가 길수(김민희)를 만난 장면도 하나의 컷이지만 배우인 길수가 어떤 기점 이후 연기를 하고 있지 않음에 아깝다라고 말하는 효진과 그것이 왜 아깝냐며그의 인생을 더 잘 알고 사랑하기라도 하는 것이냐며 쏘아붙이는 준희의 대립이 있은 후 부부가 퇴장길수의 조카 경우(하성우)가 등장할 때에도 그렇다.


소설을 더 이상 쓰지 못하고 있던 준희는 영화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 경우를 만나게 되고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하며 나의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은 것이 아니다하지만 모든 것이 진짜여야 한다어떤 배우를 편안한 상태에 두고서그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무언가를 온전히 기록하는 것이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다.”라고 한다얼핏 홍상수가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태도를 준희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건 모르는 일이다영화 바깥의 홍상수의 생각일 수도 있고영화 안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준희의 생각일 수도 있으며혹은 그것을 보고 있는 관객의 생각일 수도 있다단지 홍상수는 꾸며낸 무엇이 아닌 모두 진짜를 찍었을 뿐이다.


앞에서 언급한 장면들을 보면서 눈이 바쁜 이유도 온전히 관객이 그 장면에서 무언가를 보고자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홍상수는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이나 이후 <강원도의 힘>(1998)에서그리고 줄곧 한 자리에 카메라를 가만히 세워뒀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에서 함춘수(정재영)와 윤희정(김민희)이 처음 카페에서 대화를 나눌 때 같은 장면이 바로 떠오르는데심지어는 이쯤이면 장면을 나누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부분에서도 말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에서는 선화(박선화)의 집 현관에서 방과 거실이 보이는 위치에 카메라를 두곤 선화가 기르는 개를 따라 그 시선이 이동하기도 했다물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장면이다.



<우리 선희>(2013)에선 대뜸 은행나무를 보여주기도 한다은행나무는 영화를 만들기 훨씬 전에 이미 그곳에 있었으며홍상수의 영화에서 카메라는 가만히 있는다. <도망친 여자>(2019)에서는 지나가던 고양이를 카메라에 담는다연출의 영역이 아닌 원래 진짜로 그곳에 있던 무엇을 카메라에 담았을 뿐이다관객은 알 수 없는 홍상수의 의도가 카메라에 담겼겠지만자신의 의도를 좀처럼 밝히지 않는 그의 영화를 보며 관객은 자신의 관념을 영화에 투영한다자신이 처한 상황자신이 보고 싶은 것지론 등이 장면에 담긴다.


우리는 모두 소설가다프로필명함자기소개서 등의 직업란에 소설가라고 적지는 않지만 우리는 언제나 소설을 쓴다말 그대로 신변잡기적인 그 소설에는 소망과 희망이 담길 때도 있고절망과 원망이 담기기도 한다근래 들어 나의 소설엔 후회가 가득한데 후회로 가득한 문장이 가득 차 한 페이지를 이루고 그 페이지가 쌓이고 쌓여도 후회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나에게 <소설가의 영화>는 후회가 담긴 영화였다.


영화 <소설가의 영화안에는 소설가인 준희가 만든 영화가그러니까 <소설가의 영화속 <소설가의 영화>가 있는 셈이다관객은 준희와 길수가 서대문구의 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까지 눈으로 본다하지만 그것이 실제인지 확신할 수 없다.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에서 해원(정은채)의 꿈을 보여줬듯 길수의 꿈을 보여준 것일지도 모른다준희와 길수가 극장에 가기 바로 전 장면에서 길수가 술에 취해 잠들었기 때문이다다시어떤 이유로 길수는 영화를 더 이상 찍지 않고 있었다박효진 감독은 그것이 아깝다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었다준희의 영화를 보고 나온 길수의 표정은 좋지 않아 보인다실제로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만족스러웠으나 그것이 표정에 잘 드러나지 않았는지혹은 영화를 찍기 전의 불안감이나 이전에 영화를 찍지 않기로 한 어떤 계기 같은 것이 꿈에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다같은 이유로 길수씨 나왔는데 우리가 없으면 안 되니까.”라고 말하던 준희는 심지어 영화가 끝나기 5분 전 알람까지 맞춰뒀으나 길수가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 나왔으나 그곳에 없었다길수와 함께 영화를 보지 않은 준희 역시 결과물이 만족스러웠는지 알 수 없고역시 그것이 꿈인지 실제인지 알기 어렵다영화 속 영화실제 속 허구라는 경계를 사용하며 영화는 다양한 의미를 낳는다.


준희와 길수가 영화를 찍기로 결심하고 나서 분식집에 간다어떤 영화를 찍을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 창밖으로 웬 여자아이가 등장해 안을 바라본다그 시선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으나,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에서 영희(김민희)와 지영(서영화), 천우(권해효)가 머무는 호텔의 창문을 닦던 검은 사내가 떠올랐다다시그 소녀가 길수씨가 너무 예뻐서 쳐다보는” 거라 말하던 것도 준희의 생각일 뿐이다창문이라는 경계 너머의 것에 자신의 관념을 투영시킨 셈이다스크린이라는 경계 너머의 영화를 보는 관객처럼한번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한 소녀를 보러 문밖으로 나선 길수는 흑백으로 촬영된 영화 속에서 햇빛을 받아 이목구비가 지워진 것처럼 보인다벽 너머의 길수와 소녀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소리도 들리지 않을뿐더러입모양도 읽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된다.


하지만 그곳에미지의 영역이지만 꼭 알아야겠다는 무엇이 보이진 않는다그저 그러겠거니길수와 소녀가 원래 아는 사이였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소녀가 무언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를 테면 길을 잃었다던가길수와 만나기 전 세원과 함께했던 준희가 다시 길수를 따라 세원을 만나러 갔을 때, “있는 그대로 얘기하죠.”라고 했던 것처럼 딱히 숨길 것도 없고숨기는 것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고그 영역의 소설은 개개인이 다 쓰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그저 길수가 자리를 뜨자 그가 먹던 비빔밥을 한 숟갈 떠먹는 준희를 보는 것그런 것이지 않을까.




그렇게 경계 너머의 것을 다루는 것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였다세원의 책방을 찾은책을 살피고 있는 준희의 손이 클로즈업되고 화면 밖에서 머리가 잠깐 하얘졌었다.”라고 말하는 현우에게 세원이 “이제 말도 안 해대답도 안 해너 왜 이렇게 까부니네가 왜 이렇게 까불게 됐어?”라 소리치는 것이 들릴 뿐이다이어 책방을 나간 준희에게 현우와 세원이 차례로 나오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상냥하게 구는 모습에서 당황스러움마저 밀려오지만그대로 영화가 계속 진행되는 통에 경계 너머의 것은 경계 너머의 것으로 두고 넘어오게 된다아니아예 다른 인물인 것 같다영화 바깥의 서영화가 영화 안의 세원이라는 인물과영화 바깥의 이혜영과 영화 안의 준희가영화 바깥의 김민희와 영화 안의 길수가 다른 것처럼화면 바깥의 세원과 화면 안의 세원도 다른 것이 되는 것 같다그렇게 준희와 길수가 찍은 영화가 실제인지 꿈인지도 마찬가지가 되는 것 같다.


우한 폐렴이라는 말로 시작한 코로나 시국도 벌써 몇 해 째인데영화 안에서 인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온 것은 처음 본다그간 좀비가 되거나 다른 전염병으로써 간접적으로 표현되는 일을 많았으나 직접적으로 마스크를 쓴 것은 처음 본다심지어 실제로도 그렇듯 마스크를 턱에 걸치기도 하고잠시 벗어 손목에 끼고 있기도 하며 실제 모습을 담은 것 같아 보인다준희가 자신의 영화를 두고 말한 나의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은 것이 아니다하지만 모든 것이 진짜여야 한다.”라는 것이홍상수가 말하는 진실성(integrity)이 보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소설가의 영화>를 말하는 것은 영화 안에서 관객이 마주하는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가를 위해 열심히 밀고 나아가는 것일 텐데그 내용은 사실 술자리에서 준희가 가정한 것이었다길수의 생일을 남편이 까먹어서 화가 나 어머니한테 갔는데남편이 찾아와 레스토랑에 가 식사를 하고 기분이 풀려 어머니와 함께 산책을 한 것준희는 가정으로허구로 꾸며낸 것이지만 사실 길수의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것 말이다기록물로써 영화는영상은사진은 과거를 담는 것이다그때는 현실이고 실재이지만그것을 보는 관객은 과거의 것을 보는 것이다다시영화 속 영화를 보면 길수는 산책하다 만난 낙엽꽃들을 보며 아깝다라고 한다일전에 박 감독이 연기를 하지 않고 있는 길수에게 아깝다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일까나뭇잎과 꽃은 1초만 지나도 과거의 것이 되어 시든다길수는 그 찰나의 것을 아깝다고 말한다영화 안에서 길수의 남편이 누구인지 관객은 알 수 없다화면 안에 등장한 적도 없고 그 이름이 언급된 적도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영화 속 영화에서 길수를김민희를 찍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다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길수는김민희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와 대화를 나눈다.


너무 예쁘지색깔로 찍고 있어?

아니요

흑백이에요?

.

아깝다이렇게 예쁜데.

아니색깔로 찍으면 되죠.

   

사랑해.

사랑해요.



흑백의 영화였으나 그 진짜를실재를 담기 위해 감독은 작은 고민도 없이 바로 색깔을 입힌다흑백으로 영화를 찍기로 했으니 색을 입히는 건 안 된다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감독은 그러지 않는다사랑하는 이 앞에서 안 되는 게 무엇이겠는가안 되는 건 없는 것일 텐데나의 후회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끝나지 않았다야생화로 부케를 만들어 결혼행진곡을 부르던 그녀를 보며그런 화면에 바로 색을 입히는 감독을 보며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기까지 했다영화 제작을 도운 경우의 말을 빌려 영화는 정말 특이하다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의 관념이 작용하다그 무엇도 닿지 않을 실재가 등장하니 말이다그렇게 엔딩크레딧이 나오는데영화가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다시 흑백의 화면으로 상영관을 나오는 길수가 보인다사랑을 말하던사랑하는 이를 위해 안 될 것은 없을 것 같았던 남편은 사정이 생겨 동행하지 않았고그녀를 기다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영화 촬영에 참여한 이들 각자가 영화에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어떤 이유로 예정과 달리 길수를 기다리지 않았는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그들을 만나러 옥상으로 간 길수는 준희를 만날 수 있을까만나서 어떤 대화를 하게 될까만나지 못하면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누구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간다기록물로써 담기지 않은 모두의 과거는그리고 소설은 그렇게 계속 나아가고 있다모든 인물이 퇴장하고 카메라가 비추는 하얀 벽은 <원더풀 라이프>(1998)의 한 장면마저 떠오르게 하는 미지의 영역 그 자체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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