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Min-young of the Report Card, 2021
매년 끊임없이 등장하는 성장기를 다룬 드라마에 얼마나 더 색다를 것이 있을까 싶지만, OMR 카드에는 담길 수 없는 그 시절의 특성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여고생 3인방은 “삼행시 클럽”을 만들어 활동하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수능이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지내다가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로 나아간다.
대학에 진학하고, 각자의 삶을 살고,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 그런 뻔한 과정을 거쳐 왔다. 하지만 이 영화만이 지닌 리듬은 수능 시험장 내 옆자리에 백발의 할머니를, 앞자리에 시계를 두고 왔다 말하는 정일(임종민)을, 겨울날 텅 빈 운동장을 수능 시험을 치르는 와중 잠시간 응시하는 정희(김주아)의 시선에서 발생한다. 정희에겐 아직 삼행시 클럽 친구들이지만, 두 친구에겐 과거의 기억이 되는 일. 그 차이에서 발생하는 서운함, 미안함 같은 것들이 있다. 나는 너희를 이 만큼 생각하고 배려하는데, 너희는 왜 날 배려해주지 않아? 같은 식의 이기적인 마음들이 있다. 시간이 얼마간 흘렀으나 그때 했던 말들, 행동들을 다시 하며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 같은 것들이 있다. 하하 호호 웃으면서도 지금 각자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현실적인 관점들이 있다.
수능을 보고, 대학에서도 시험을 보겠지만 그런 성적표는 사실 중요치 않다. 상대방의 성적표를 보고 우리가 친구를 사귀는 건 아니니까. 사실 중반부까지는 세 친구들의 이름이 분명하게 인식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민영(윤아정)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정희가 그의 일기장을 몰래 볼 때부터는 완전히 다른 감정이었다. 언급했던 정희의 조금은 느린 리듬이 폭죽이 터지기 전 찬찬히 심지에 불꽃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시절 아이들이 누구나 그랬듯 아이돌을 동경했던 민영은 노래와 춤에 재능이 없어 보였다. 정희의 눈에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 학원에서도 그녀에게 재능이 없음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디션 제출용으로 촬영된 영상 속 민영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걸 보는 정희 역시 최선을 다해 그녀의 모습을 지켜봐 주고 있었다. 삼행시 클럽의 약속 시간에도 늦고, 오랜만에 타지로 자신을 불러선 자기 노트북만 보고 있던, 당일치기 제주 여행이 소원이라는 정희에게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싸가지 없는 민영의 말이 떠올랐을까. 정희는 그간의 마음을 민영의 친구로서의 성적표를 적어줌으로써 대신한다.
지치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었을 긴 여행을 마치고 김밥 한 줄을 사들고선 집으로 돌아온 정희네 거실에 엄마와 그의 친구들 셋이 평화롭게 앉아있는 모습을 지나 방에서 덩그러니 그저 김밥이란 음식을 씹고 있는 정희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간 나의 성적표는 점수가 어떻게 될까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에게 몇 점일까, 그는 나에게 몇 점의 친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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