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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Apr 15. 2023

<물 안에서>

In Water, 2023


홍상수 감독의 전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에서 영화감독 구경남은 제주에 특강을 하러 간다자신의 영화를 틀어준 후 질의응답에 한 학생이 왜 이런 영화를 만드세요왜 사람들이 이해도 못하는 영화를 계속 만드시는 거예요?” 라 물으니, “제 능력과 기질은 하나뿐이 없습니다정말로 몰라서 들어가야 하고 그 과정이 발견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과정이 나로 하여금 계속 뭔가 발견하게 하고 그 결과물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드는 겁니다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구체적인 것을 매번 만날 뿐 체계적으로 미리 갖지 않는 것매번 발견하는 것단지 감상하는 것지금 이 순간에.” 여학생은 비웃듯 말한다. “영화감독이 아니라 철학자시네요.”


얼마 전에 내가 쓴 글의 일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다홍상수 자신도 <도망친 여자>(2019)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마지막 장면을 그대로 쓰기도 했고이번 <물 안에서>의 주인공을 맡은 신석호가 바다에 들어가는 장면은 <인트로덕션>(2020)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영화가 시작하니 제주에 단편영화를 찍으러 간 성모(신석호)와 상국(하성국)은 바닷가에서 고동을 잡다가 숙소로 돌아간다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니 배우 남희(김승윤)과 피자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셋이 공평하게 나눠먹기 위해 가위로 자르는 장면까지 등장하는데이와 비슷한 것이 후반부 회를 먹는 장면에서 등장한다장소 헌팅을 하기 위해 다니던 셋은 성모의 제안으로 회를 먹기로 한다회는 전후 과정을 관객이 봤지만피자는 이전의 과정이 뚝 끊겨있다남희 홀로 피자를 사 와 셋이 함께하기로 했을 수도 있지만 영화에서 본 것은 아니기에 확신할 수 없다그러나 방 안의 구조빛이 드는 정도셋이 앉은자리와 각각의 자세그들이 입은 옷까지 똑같다.


이후 상국과 남희의 귀신에 대한 대화도 그렇고성모가 피자를 먹은 후 야외에서 이뤄질 스케줄에 맞춰 빵을 먹는 것이 편리할 것이라는 계획을 구상했으나막상 상국이 피자에 이어 또 빵을 먹으려니 느끼하다는 불평에 당황한다즐겁게 관광하는 이들만 보였으나 시간을 갖고 여러 곳에 시선을 두니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줍는 인물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러닝타임 내내 포커스가 나간 흐린 이미지를 마주해야 하는 것 역시 영화 관람이라는 것을 평생 해왔으나 영사 사고가 아닌가 싶을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학생 시절부터 오랜 세월을 함께했을 그들이었으나상국은 남희가 성모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할 만큼 둘의 사이가 가까웠는지 몰랐고상국은 성모의 구상이 맘에 들지만 성모는 그렇지만은 않다당장 내일이 촬영인데 시나리오조차 전달받지 못한 상국과 남희는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에야 성모가 겪은 모종의 사건과 어떤 감정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된다홍상수의 영화가 늘 그랬듯 카메라에 담기는 인물들은 역동적인 움직임을 취하진 않지만 계속해서 다르게 일렁이는 파도처럼 서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인트로덕션>에서 신석호가 바다로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봤다. <인트로덕션>이 흑백영화이긴 했으나 그가 검은색 계열의 옷을 입고 바다에 들어갔던 것이 <물 안에서>에서 반복되는 것을 보게 된다그들은 영화를 찍고 있고카메라를 들고 있는 상국이 ’ 사인을 보내줄 것이라 예상하게 되는데그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간다상국의 목소리가 도저히 들리지 않을 만큼 멀리깊이 바다로 향해 나아가던 성모의 모습은 끝내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된다이전에 어떤 관계였는지도 모를 김민희에게 생일축하노래로 만들었던 것이 어딘가 구슬프게심지어 장송곡처럼 들리게 된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예상했던 것기대했던 것은 빗나가기 마련이다잘 안다고 생각했던 타인은심지어 자신조차도 계속해서 변하고 새로워진다선명히 보기 위해 오히려 초점을 흐리는 보기물 안의 고동은 물고기들이 되었고나아가 성모 자신이 되었다홍상수는 자신의 전작들에서 선보였던 물의 이미지그리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밀고 나아간 것 같다.


#물안에서 #신석호 #하성국 #김승윤 #김민희 #홍상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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