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tz, 2017
<프란츠>는 감독 프랑수아 오종에게도, 배우 폴라 비어에게도 필모그라피 중 주목할 만한 지점에 있다. 오종의 필모그라피에선 <인 더 하우스>(2012), <영 앤 뷰티풀>(2013)과 <두 개의 사랑>(2017) 사이에 있는 첫 흑백영화이자, 오종이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섹슈얼 하거나 충격적인 이미지들 또한 거의 배제된 영화이다. 1995년생의 폴라 비어에겐 스물둘의 나이에 전쟁으로 약혼자를 잃었는데, 심지어 그를 죽인 상대국 군인이 종전 후 찾아와 용서를 구하는 상황을 연기해 베니스영화제 신인 배우상을 수상했다. 겉으론 떠나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나 새로운 사람과의 피어나는 마음 같은 것을 그린 드라마 같지만, 전쟁 중의 죽음이나 전후의 자살 같은 것들을 다뤄 으스스한 느낌이 맴돈다.
오종이 선택한 흑백이란 것도 그런데 보통 매체에서 흑백과 컬러를 교차로 사용한다면 과거를 흑백으로, 현재를 흑백으로 표현함이 예사의 것인데 오종은 반대의 선택을 한다. 현재는 흑백으로 하되, 과거의 기억이나 주인공의 감정이 더해진 것에 색을 입힌다. 새로운 방식 덕에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가는 지점들을 포착하는 재미가 있다. 이는 시신을 수습해오지 못해 묘비만 세워진 곳에 꽃을 두고 영령을 기리는 것처럼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의 내면에 있는 것을 보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 된다. 1919년, 종전 후 프랑스로부터 프랑크푸르트를 지나 베를린에 닿기 전 즈음에 위치한 크베들린부르크에 프랑스인 아드리앵(피에르 니니)이 전쟁 중 죽은 프란츠(안톤 폰 루케)의 친구였다며 안나(폴라 비어)에게 접근하는 것도 거짓이었으며, 후에 반대로 안나가 아드리앵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에 갔을 때도 독일에 있는 가족에게 애초에 아드리앵이 거짓을 말했음을, 프랑스에 와서 직접 보니 그의 말과는 현실이 달랐음을 말하는 대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거짓을 말한다. 거짓 위에 거짓이, 그 위에 다시 거짓이 켜켜이 쌓이는 와중 서사가 구축된다.
단지 과거의 것이 아닌 그 기억이 현재에 덧씌워지는 장면에서도 색감이 입혀지는 것이 독특하다. 아드리앵이 안나의 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프란츠와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안나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아드리앵이지만 흑백에서 서서히 색이 물든다. 프란츠를 잃은 아픔에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안나가 스스로 걸어 물속으로 들어가려 했던 흑백 장면에 반해,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갑작스레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수영을 하는 프란츠를 눈부시게 바라볼 때 색감이 입혀지기도 한다. 삶에의 의지를 잃은 것처럼 보이던 그녀는 멀리 프랑스까지 홀로 떠나기도 하는데, 당초 아드리앵이 말했던 거짓에서 출발한 것이긴 하지만 루브르에서 마네의 <자살>을 보며 역설적으로 삶에의 의지를 얻기도 한다. 전쟁 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 안나의 삶은 멈춰 현재로, 나아가 미래로 흘러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기 때문에 과거가 되고, 아드리앵을 만나 점차 다시 일어서 나아갈 동력을 얻기에 현재가 되려 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프랑스에서 아드리앵과 재회한 후 입을 맞추게 되는 순간까지 이르게 되지만, 이것이 영화가 시작한 후 영화 속의 시간도 꽤 흐른 지점이지만, 오히려 흑백에 머물게 된다. 턱시도를 잘 차려입은 그가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한 손에 총을 들고 침대에 쓰러져있는 모습이 그려진 마네의 <자살>을 보며, 그림 속 사내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타인의 삶을 한 발자국 물러나 프레임 밖에서 보며 그가 처한 상황을 추측하고 판단하듯, 찰나였을지라도 현실감을 느끼며 멈춰진 시간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정혼자가 있던 아드리앵이었으나 그를 뒤로하고 안나에게 입을 맞추지만, 안나는 아드리앵에게 너무 늦었다고 말한다. 한때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던 아드리앵이었으나 겹겹으로 쌓여있던 거짓을 걷어내고 현실을 바라보니 단지 보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이해하고 깨닫는 상황에 이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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