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e chante, l'autre pas, 1977
길을 가던 폴린(발레리 메레스)은 과거 이웃에 살던 수잔(테레즈 리오타르)의 사진이 걸려있는 사진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진관엔 많은 여성들의 사진들이 걸려있었는데 그들의 나이가 천차만별인 것은 당연하거니와 임신한 여성, 자녀들과 함께 있는 여성들이었음에도 누구 하나 웃고 있지 않는 것이었다. 사진을 찍은 제롬(로버트 다디스)은 유부남이지만 수잔과 불륜을 저질러 두 아이를 낳게 하고도 뱃속에 셋째를 임신시킨 상태였는데, 사진 속 여성들이 “슬퍼 보여요. 버림받은 여자 같아요.”라며 왜 이런 사진을 찍냐는 폴린의 물음에 “내가 추구하는 건 발가벗은 진실이야. 여자는 그 안에 비밀을 품고 있어.”라 답한다. 폴린도 제롬의 카메라 앞에 서게 되는데, 훗날 페미니즘 운동을 하며 “내 몸은 나의 것. 낳고 안 낳고는 내가 결정할 거야.”라 소리치는 모습처럼 나신일지라도 당당하게, 심지어는 보디빌더처럼 당당한 자세를 취하는 폴린의 사진을 제롬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제롬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란 것이 여성의 신체는 아이를 잉태하고 낳아 기르기 위한 것이라는 보수적인 관점에 있었는지, 혹은 결혼과 임신으로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들에 대한 측은지심이었는지, 혹은 임신과 출산이 자신과 세상에 내려온 축복이라 여겼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 됐든 제롬은 수잔을 떠나간다.
폴린과 수잔을 잇는 소재는 낙태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수잔은 이미 홀로 두 아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셋째를 가진 것을 우려하고 있었고, 유부남인 제롬은 아내를 두고 수잔과 함께 아이를 키울 수도 사진이 팔리지 않아 경제적인 지원을 할 수도 없었다. 우리나라는 2019년에 들어서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위헌 판결이 났고, 국회에서 2020년 말까지 개정할 것을 명령해 2021년에야 비범죄화 됐다. 영화의 배경인 임신중지에 대해 목소리를 내던 1960년대엔 불법적인 수술을 받아 피해를 보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그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되는 등의 사례들 때문에, 젠더적 평등을 떠나 피임과 임신중단에 있어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모두에게 열려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비극적인 이슈가 발생하고 있었다. 20세기 초의 여성 참정권에 대해 다룬 <서프러제트>(2015)도, 임신 중절을 다룬 <4개월, 3주... 그리고 2일>(2007)이나 <레벤느망>(2021) 등 많은 이름들을 언급할 수 있을 테지만, 임신 중지만큼이나 기본적인 성교육, 산전관리, 예방의료 서비스, 불필요한 제왕절개, 여아 선별 낙태 등 많은 소재들을 언급할 수 있을 테지만, 아녜스 바르다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에서만큼은 더 깊게 밀고 들어가지 않고자 했던 것 같다.
폴린은 이란에서 온 다리우스(앨리 라피)와 사랑에 빠진다. 프랑스에서 페미니즘을 말하던 폴린이 놀랍게도 그와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이란으로 가니 나라의 문화에 따라 가부장적으로 변하는 그를 떠나 프랑스로 돌아오게 된다. 두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서 돈을 벌어야 했던 수잔은 타자기를 배우며 차차 공부를 해 지역의 복지센터에서 근무하게 된다. 전국을 다니며 여성 인권에 대해 노래하고, 복지센터에서 근무하며 여성들을 지원하는 등 영화 속 여성들은 서로 끈끈하게 연대한다. 영화가 시작할 때에 폴린은 수잔의 낙태 수술비용을 지원하며 관계를 시작했고, “싸돌아다니지 말고 16살 때부터 기술을 배웠어야지!”라고 타박하는 바깥양반과 다르게 안주인은 상냥하게 수잔과 아이들을 거두어준다. 바르다는, 그리고 그녀가 만든 이 영화는 여성들의 연대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남성에게 상처받은, 남성으로 인해 힘들어진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그럼에도 남성을 배척하진 않는다. 센터에서 만난 이와 결혼해 행복하게 산 수잔처럼 자신과 아이들 앞에 나타난 동반자 자크 드미가 있었기에 말이다.
어쨌든 행복한 방향으로 마무리 짓는 영화가 당장 사회의 어떤 이슈를 해결하진 못했을지라도, 말 그대로 ‘어쨌든’ 행복한 결말인 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은 바르다가 영화 속 어떤 인물에게도 한계를 그어버리거나, 가능성을 없애려 하지 않고자 했기 때문 아닐까.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으로 촬영했기 때문에 바르다 할머니의 밝은 미소가 영화의 많은 부분에 더 채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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