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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Nov 23. 2023

<괴물>

Monster, 2023

괴물; 1. 괴상하게 생긴 물체 2. 괴상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괴상하다; 보통과 달리 괴이하고 이상하다.

괴이하다; 정상적이지 않고 별나며 괴상하다.

이상하다; 1. 정상적인 상태와 다르다. 2.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르다. 3. 의심스럽거나 알 수 없는 데가 있다.

별나다; 보통과는 다르게 특별하거나 이상하다.

특별하다;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다.

구별하다;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갈라놓다.


“괴물은 누구게?"


영화를 보면서는 머릿속에 부윰하던 것이 <헤어질 결심>(2022) 이후 단어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사전에 검색하는 행위를 하다 이 <괴물>이란 영화가 말하는 ‘괴물’이란 것이 무엇인지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영화는 초등학교 5학년의 두 아이들이 이상행동을 보이자, 부모와 선생들의 시선으로 왜 그런지 다가가는 것에서 출발한다. 어느 날엔가 갑자기 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 가위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어느 날엔 운동화를 한 짝 잃어버린 채 집에 왔으며, 아침에 새 물을 채워 들려 보낸 물통엔 흙이 들어있다. 누구라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무기노 미나토(쿠로카와 소야)가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에게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돼지일까, 인간일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자신의 담임선생님 호리 미치토시(나가야마 에이타)가 자신에게 이 말을 했다는 말을 덧붙이며. <만비키 가족>(2018)에 이어 또다시 세탁 일을 하는 엄마 역을 맡은 안도 사쿠라 분 사오리는 곧장 정장을 다려 입고 학교로 향한다. 어떤 엄마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교장을 포함한 선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확실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학교의 총책임자로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하는 답변도 금방 거짓으로 들통날 수준이며, 피의자 신분인 호리는 정중하고 엄숙해야 할 분위기에 사탕을 까서 입에 넣는다. 엥? 사오리가, 내가 괴물인가? 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인가? 학생들은 토리의 가해사실을 공공연하게 말하는데 토리는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제가 대화하는 사람들이 인간인가요?”


영화가 시작하며 한 도시를 익스트림 롱숏으로 담고, 휘파람을 부는 것이 서툰 이의 것인지 불안하고 위태로운 소리가 나더니 소방차들이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건물로 향하는 모습이 보인다. 한참 먼 곳에서부터 한 도시로, 한 동네로, 그중에 무기노 모자의 시선으로 전개했던 것을, 다시 토리의 것으로 진행한다. 양쪽의 입장을 모두 볼 수 있으니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겠다 싶었다. 먼발치에서 도시를 바라본 롱숏에서, 소방차, 그리고 토리순으로 다가간다. 그런데 정작 토리의 관점으로 다시 보니 그는 오히려 아이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교사로 보였다. 아이들에 대한 폭력 행위는 일절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토리의 기억 왜곡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토리는 걸스바(여성들이 걸그룹 같은 공연을 하는 유흥업소)에 출입한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학부모들에게도, 동료 교사들에게도 소문이 나있는 상황이었다. 그 자체로는 범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외로운가 보다.’ 정도로 넘기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미나토에 대한 폭력 의혹이 전해지니 불에 기름을 끼얹듯 의혹이 커진다. ‘걸스바에 다니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식.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의혹에 교장은 일단 불을 끄자며 토리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했고, 토리는 많은 학부모들 앞에서 사과하며 이것이 언론에도 실린다. 토리는 학교에서 쫓겨나고야 만다. 일이 단단히 잘못되고 있는데 토리는 그것을 바로잡을 힘이 없어 보인다.


<괴물>은 미나토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자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른들이 관점에서 알아가는 영화다(초등학교 5학년인 두 아이가 주인공이지만 그 또래의 관객은 많지 않겠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돼지의 뇌를 이식받은 인간’이라는 미스테리한 이야기로 문을 열더니 점차 학교 폭력, 가정 폭력 등의 사회적인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확장해 간다. 사실 영화를 보는 중엔 표면적으로는 잔잔한 템포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싶은 의문에 추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이야기의 볼륨이 너무 커져있었다.     



“흰 선 벗어나면 지옥에 간다.”

“어릴 때나 믿었지.”

“아직 어리거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이 늘 그래왔듯 영화 속 아이들은 어떤 결핍을 누구의 탓을 하기보다는 스스로 메우려 애쓴다. <아무도 모른다>(2004)의 아이들이 그랬고,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의 자매들도, <어느 가족>의 쇼타(죠 카이리)가 특히 그랬다. 쇼타가 그 교각에서 뛰어내릴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벅찬 것일 테다. 미나토는 워킹맘 사오리가 홀로 키우고 있고, 미나토의 친구 호시카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는 키요타카(나카무라 시도)가 아내 없이 홀로 키우고 있다. 나카무라 시도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에서 한여름에도 겨울 양복을 입는, 아들밖에 모르는 순박한 청년 타쿠미를 연기했었는데 사회생활이 많이 힘들었는지 이제는 하루도 술 없이 보낼 수 없는 키요타카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미나토의 아빠는 바람이 나서 온천 여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해 죽었고. 요리의 아빠는 알코올 중독에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벅찰 것이고, 안정적으로 받아내질 못하니 기형적인 혹은 괴물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겠다. 미나토가 사오리에게 자신은 아빠처럼 될 수 없다고 말하는데, 단란한 가정의 다정한 아빠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폭력적인 아빠 대신 따뜻하게 자신을 감싸줄 사람이 요리에게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미나토와 요리뿐 아니라, 사오리, 키요타카, 토리, 교장 후시미 마키코(다나카 유코) 등을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의 시선은 편협하기만 하다.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어른들이 각자의 이유로 기능하지 못하니 아이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가 말하는 괴물의 형태를 생각하다 떠오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방구뽕(구교환)이라는 인물에게 우영우(박은빈)는 “방구뽕이 본명입니까? 이름이 이상해서요. 판사님이 부정적으로 볼까 봐 걱정됩니다.”라 말한다. 방구뽕은 오히려 의아해하며 “어린이는 웃고 어른은 화를 내는 이름을 가지고 그 이름에 걸맞게 사는 거, 그게 제가 하려는 혁명입니다.”라 말한다. <가려진 시간>(2016)에서 성인이 됐으나 정신은 아직 어린 상태에 머물러있는 성민(강동원)은 모종의 사건 이후 어른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결국 자신이 하지 않은 범죄를 자백하고야 만다. 성민의 행위를 타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는 게 타협일까. 성민도 방구뽕도 어린 시절 어린이답게 그 순수함을 유지하지 못한 채 어른들의 시선으로 무언가 강요받아 지금의 모습이 됐었다. 이들은 영화가 말하는 ‘괴물’의 모습이지 않을까.


“친구인 건 맞긴 한데, 애들 앞에서 말 걸지 마.”

“알았어. 말 안 걸게.”

“고마워.”


미나토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요리와 친구라는 사실만으로 자신도 괴롭힘을 당할까 봐 학교에선 하나뿐인 친구를 외면한다. 곤경에 처한 요리를 도와주지도 않는다. 요리는 그런 미나토를 이해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가 밀어서 넘어졌는데 그냥 넘어졌다고 하고, 어딘가에 갇혀있다가 제3자에 의해 나오게 돼서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한다. 비단 그것은 학교에서만은 아니다. 집에서 모진 일을 겪고 있으면서도 밖에서 티를 내지 않는다. 단지 티를 내지 않는다의 정도를 넘어 해맑게 웃는다. 미나토는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런 요리를 위해서도 그 누구에게도 둘이 겪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요리와의 비밀을 지키려다 보니 호리가 걸린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있는 곳에선 둘이 함께할 수 없으니 미나토와 요리는 둘만의 비밀공간으로 향한다. 그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고 있는 둘 외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방구뽕이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듯, 성민이 산속의 아지트에 갔듯이.


“저도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애가 있어요. 그걸 남들한테 말할 수 없어서 거짓말을 한 거예요. 행복해질 수 없는 게 들통날까 봐 말할 수가 없었어요.”


“몇몇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건 행복이라고 부르지 않아. 누구나 할 수 있는 걸 행복이라고 부르는 거야.”


비 내린 후의 촉촉하게 습기가 느껴지는 풀밭을 볼 때면 루카 구아다니노의 <아이 엠 러브>(2009)와 함께 두고두고 떠오를 영화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비가 내린 후 원 없이 풀밭을 내달린다. 영화 속 아이들은 마음껏 소리도 지르고, 영화 밖 아이들은 자신들을 찍는 카메라 감독이 어떻든 간에 내달린다. 처음 그곳을 달릴 땐 철문이 막고 있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뚫고 나아갈 힘이 없었을 수도 있고, 자신들의 마음이 어떤지 스스로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이제는 아닐 것이다. 크게 부푼 풍선 안의 공기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듯 영화를 보며 계속해서 커져가던 이야기의 볼륨에 힘들던 찰나 내달리는 아이들과 함께 내 마음도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아가씨>(2016)의 타마코(김태리)와 히데코(김민희)의 장면이나, 달빛 아래에선 누구나 푸른빛을 발하지만 언젠가 스스로 어떤 색의 빛을 발할지 정해야 한다던 <문라이트>(2016)의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우린 새로 태어난 걸까?”

“그런 건 없어. 원래대로야.”

“그래? 다행이네.”


샤이론이라는 이름이 있었음에도 작은 체구 탓에 리틀(little)이라는 별명으로, 커서는 블랙(black)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샤이론처럼 <괴물> 속 인물들도 타인의 시선 속에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이 보는 대로, 부르는 대로 자신이 정말 그러한가 의문을 품었다면, 나중엔 있는 그대로의 자신들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 흔히 가볍게 새로 태어난다면 어떤 모습이길 바라냐는 질문을 하는데, 이제 미나토와 요리는 지금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바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장면 장면들을 장식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은 더할 나위 없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건강상의 이유로 두 곡 밖에 만들지 못했기에 이전에 만들었던 노래들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영화음악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한 장면이 주는 전율로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보다 나은 것을 나는 근 몇 년 간 만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두고두고 기억할 장면과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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