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THE DAY, 2023
<아수라>(2016)의 김성수 감독이 오랜 기간 절치부심하여 복귀한 영화 <서울의 봄>. <아수라>에선 그저 정우성의 읽는 소리 그대로 “싯빨”이라며 해대는 욕만이 기억에 남았다면, <서울의 봄>은 애초에 설정한 주제의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되도록 영리하게 잘 밀고 나아가는 인상이다.
‘서울의 봄’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에서 딴 말로 1979년 10월 26일 저녁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 등을 권총으로 살해한 후, 전두환의 12.12군사반란으로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뒤부터 1980년 5월의 광주 민주화운동까지의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영화가 수백 번을 그저 실화에 기반했고, 상상력을 더해 각색한 이야기라고 주장한들, 누가 보더라도 황정민이 분한 전두광은 전두환이고, 박해준이 분한 노태건은 노태우, 정동환이 분한 최한규는 최규하, 서광재가 분한 총리는 신현확이다. 불과 하룻밤사이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우리는 그 밤의 결말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광이 정권에 대한 야욕을 품고, 어떻게 수도 서울과 육군 본부를 장악하는지의 과정에서 그것에 정의감과 군인정신에 근거하여 저항하는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정우성, 장태완 소장 모티브)과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성민, 정승화 대장 모티브), 김준엽 육군본부 헌병감(김성균, 김진기 준장 모티브) 등과 전략 싸움을 벌이는 구도가 팽팽하다. 정치 스릴러답게 누군가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누가 어떠한 심리변화를 겪고, 변심하게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밖에 나가보세요. 바뀐 거 하나도 없어. 세상은 그대로야.”
전 국민이 결말을 아는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으나, 6~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2023년에도 제법 들어맞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모두가(아닌 이가 있을 수도 있겠다) 전두광 대신 이태신의 계획이 성공하길 응원하겠지만 태신은 실패하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모든 주인공은, 영웅은 반드시 성공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때론 실패를 하기도 하며, 춥고 어두운 시기를 딛고 다시 일어나지 않겠는가. 모두가 이것이 잘못된 방향이란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우선 걱정하며, 혹은 겁에 질려서, 혹은 앞에 나설 용기가 없어서, 어느 이유가 됐건 옳은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소위 ‘사회생활’이라 말하는 것도, 그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말하기도 한다. 반대급부로 ‘사이다’나 ‘코카콜라’라 불리며 위아래를 막론하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옳은 것이 옳다고 말하는 이에게 호감을 보내는 것도 의아한 광경이다.
이태신도 전쟁이 두려웠고, 목숨을 잃을까 무서웠고, 사랑하는 가족과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 걱정됐고, 자신만을 믿고 따라온 부하들이 희생될까 흔들렸지만 “우리가 이 나이 먹고 왜 군복 입고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싸울 땐 이 악물고 싸워야 하는 군인입니다. 저는 원칙대로 싸우겠습니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습니다.”라며 끝까지 올곧은 심지를 유지하며 전두광과 대조되는 정신을 보여줬다. 영화 말미, 쿠데타에 성공했으나 어딘가 회의감이 몰려오는 듯한 전두광의 화장실 씬은 그런 점에서 한 번 더 강조한 장면이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그릇된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이불개 해선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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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2019)에서 박정희 역을 맡았던 이성민이 박정희의 죽음 이후의 시대를 걱정하는 육군 참모총장 역을 맡은 것도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