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e, 2024
이따금씩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영화 속 인물과 친구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가 나를 친구로 받아줄지는 모르지만 나는 살면서 종종 떠올리게 될 것 같은 사람들, <라이즈>의 엘리즈(마리옹 바르보)가 그렇다. 분명 어느 영화에선가 봤던 것 같은데 사실은 처음 본 작품이란 것이 <리코리쉬 피자>(2021)의 알라나 역을 맡았던 알라나 하임 같기도 하다. 엘리즈는 발레리나였다. 발끝으로 몸을 지탱하고 서있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언제나 위태롭지만 역시나 부상을 당하고 만다. 최소 3~4개월의 회복 기간과 더불어, 2년 정도는 춤을 출 수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어려서부터 평생을 춰 온 춤을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에 엘리즈는 무너져 내린다. 발레리나로서의 이상만 바라보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싶은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혼란스러운 시기에 엘리즈의 주변엔 그를 진심으로 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랑했던 남자 친구가 같은 극단 내의 다른 무용수와 바람이 났을지언정 말이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고, 그 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도 역시 사람이다. 엘리즈는 자신처럼 부상으로 인해 발레라는 꿈을 포기했던 친구와 함께 파리 근교의 레지던스에서 요양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좀 괴로워 보는 것도 좋아.”
언제나 완벽함을 위해 나아가던, 또 그것을 해내기에 충분했던 재능보다 엘리즈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더한 축복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선택이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보라고 말하는 이가, 부상으로 인해 몸동작이 작아지고, 무용수로서 점점 위축되면서 생긴 연약함이, 약점이 곧 인간적이라며 오히려 그것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극의 주인공으로서 수많은 무용수들을 배경으로 독무를 했던 것과 다르게,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현대무용을 하게 된다.
방향은 달라도 결국은 춤이었다. 부상으로 발레를 그만두고 나서 엘리즈가 처음 춤을 추게 됐을 때, 함께 한 이도 엘리즈가 무용수였음을 단번에 알아본다. 현대무용으로서 무대에 올랐고, 성공적으로 그 무대를 마쳤지만, 그 무대에 쓰인 음악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도 나오지만 엘리즈는 튀튀를 입고 발레를 하고 있다. 넘어졌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걷고, 달릴 수 있었던 건 과거에 자신이 그렇게 열심이었던 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넘어져도, 좌절해도 괜찮다. 엘리즈가 그러했듯 나도 다시 일어서서 달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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