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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Feb 01. 2024

<추락의 해부>

Anatomy of a Fall, 2024

<추락의 해부>는 그 이름처럼 산골 마을의 별장에서 사뮈엘(사뮈엘 테이스)이 죽어있는 것을 아들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너)이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사고로 영구적인 시신경 손상을 입은 어린 다니엘은 기르는 강아지와 산책을 갔었고별장엔 사뮈엘의 아내 산드라(산드라 휠러)만이 존재했다사인을 밝히기 위해 사체를 해부하듯 추락으로 보이는 사건을 법정에서 샅샅이 파헤친다.


사뮈엘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규명하기 위해 산드라와 다니엘은 법정에 선다산드라가 자고 있었다고는 해도 그것을 입증해야만 하는 처지에 처하고작가로서 저술한 텍스트는 물론 그간의 삶이 온통 해부되는 와중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무엇도 남지 않게 된다심지어는 모종의 이유로 다니엘이 산드라로부터 독립된 시공간을 요구하기도 한다표면상으론 추락사로 보이는 사건을 해부하는 이야기지만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해부로 인해 멸문지화 당하는 가족의 참상이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나 싶은 순간 최종변론처럼 들리겠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라는 판사의 말처럼 쥐스틴 트리에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15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도 여느 영화였으면 이미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 새로운 가지를 뻗는다.


판사는그리고 법을 포함한 시스템은 어린 다니엘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공방이 오가는 와중 다니엘이 받지 않아도 될 충격을 예방하기 위해 다니엘이 법정에 참견하지 않는 것을 요청하나다니엘은 진실을 모두 알아야겠다며 참석을 고수한다산드라는 말한다사랑하는 부부 사이에도 감정에 매몰되는 순간이 있을 수 있고그런 순간엔 과장된 표현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고하지만 그 다툼과 갈등에 다니엘이 포함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사뮈엘과 산드라는 서로를 사랑했고다시 둘은 다니엘을 사랑했다부모의 다툼이 으레 있는 일처럼 여기고 그냥 강아지와 산책을 나갔다던 다니엘이 자신을 두고 다투는 부모의 실체를 알았을 때의 충격은 직접적인 가격 못지않을 것이다.


법정공방의 마지막 순간다니엘은 증인으로서 법정에 선다볼 수 없는 다니엘은 그간 들었던 것들에 대해 말한다이제 사뮈엘의 입장을 들어볼 수 없기에과거의 기억과 기록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이 공방엔 빈틈이 많을 수밖에 없다산드라 역시 그 부분 때문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하지만 이야기란 것이 그렇다감독이 굳이 긴 시간을 들여 사뮈엘과 산드라의 대화를 재현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도 그것이 아닐까 싶다. <추락의 해부>는 이야기에 대한 영화이며이야기를 쓰고 말하는 작가에 대한 영화이다긴 시간을 통과해 다니엘은 작가로 탄생했고자신의 이야기 안에서 자신의 신념대로 사뮈엘과 산드라 중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로 결정한다.


#추락의해부 #산드라휠러 #밀로마차도그라너 #사뮈엘테이스 #쥐스틴트리에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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