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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2019

by 박종승

마고 로비가 연기한 샤론 테이트라는 인물에 대해 먼저 말하는 것이 필수적이겠다. 1961년 데뷔해 세계 최고 미인 반열에 오른 신예였고, 영화에도 언급되는 <렉킹 크류>(1969) 촬영 당시엔 이소룡이 그녀의 무술을 지도했다고 한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박쥐성의 무도회>(1967)의 연으로 1968년 결혼했고, 1969년엔 임신 8개월이었다고 한다. 때는 1969년 8월 8일, 폴란스키가 집을 비운 사이 찰스 맨슨 일당이 집에 쳐들어와 샤론과 그의 지인 5명을 처참하게 살해한 것. 사실 찰스 맨슨과 로만 폴란스키 그리고 샤론 테이트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부부가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음반 프로듀서가 당시 히피들의 상징이었던 비틀즈를 추종해 찰스 맨슨이 냈던 음반을 비판했고, 거기에 원한을 품고 LSD에 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사건이다. 맨슨을 추종하는 히피들이 모인 맨슨 패밀리는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1968)의 열렬한 팬이었다고도 한다. 영화에선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옆집에 <Rosemary's Baby>를 만든 로만 폴란스키가 이사 왔다.”고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또, 스티브 맥퀸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 원래는 스티브 맥퀸도 샤론 테이트와의 친분이 있어 함께 있을 예정이었으나 어떤 여자를 만나 사고를 피하게 됐다는 것이 훗날 맥퀸의 전 부인에 의해 밝혀진 바다. 맨슨이 저지른 사건은 그 외에도 많았고, 사형 선고를 받지만 1972년 사형제도가 폐지되어 종신형을 살다 죽었다.


영화를 본 분들은 알 것이고, 영화가 위 사건을 다룬다고 했을 때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 영화를 하나의 소재로 삼았을 뿐, 결코 이 사건을 재연하고자 하거나 깎아내릴 의도는 없어 보인다. 샤론 테이트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극장에서 보며 기뻐하던 그 장면으로 예우를 표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위 사건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사실 쿠엔틴 타란티노가 관심 있는 부분은 다른 것이다. 이소룡에 대한 논란? <킬빌> 시리즈를 보라. 그 노란 타이즈를 보고도 논란이라고 할 수 있는가. 영화를 봄에 있어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있으면 좋겠지만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타란티노의 영화를 봄에 있어 어느 정도의 준비운동이나 몸 풀기는 필요하다고 본다.


제목이 너무 낯이 익었다. 릭 달튼이 헐리우드에서 인기가 시들해지고 이탈리아로 가서 영화를 찍자고 때 그렇게 공분해하던 마카로니 웨스턴, 스파게티 서부극인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이하 아메리카)를 대놓고 오마주한 것처럼 보였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이하 헐리우드)를 보고 <아메리카>에 대한 재관람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251분에 달하는 영화를 이틀에 걸쳐 봤다. <아메리카>가 시작하며 흑백 화면에 릭 달튼과 그의 스턴트맨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가 소개되는 장면이 있은 후에 현재로 넘어와 아주 거대한 간판의 일부분을 클로즈업하는 숏으로 이어진다. 처음엔 그게 무엇인지 모를 프레임이 자동차 앞유리라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뒤로 서서히 물러난다. 사실 촬영장에서 주차장으로 왔을 뿐 시대의 변화는 없지만 화장실 벽에 난 구멍으로 어린 데보라의 무용을 몰래 훔쳐보던 누들스가 현재에서 대과거로 넘어가는 씬이 연상됐다. <아메리카>의 시간적 배경인 1968년의 후속이라도 된 듯 <헐리우드>의 배경이 1969년이지만 사실 두 영화 사이의 연결지점은 ‘시간 여행’이라는 것 말고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도 다르고, 그 다른 걸 이야기하는 결도 다르다. <아메리카>는 1920, 1933, 1968년 세 개의 시대를 오가며 누들스와 주변 인물 간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헐리우드>는 한 시대 안에서 릭과, 클리프 그리고 샤론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메리카>는 아주 천천히 마차를 타고 갔다면, <헐리우드>는 클리프와 로만 폴란스키(라팔 자비에루카)가 그랬듯 엑셀레이터를 아주 세게 밟는다. 가볍게 공통점을 하나 언급하자면, 아주 매력적인 여성 아역배우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외모나 캐릭터 설정마저 유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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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앞의 “원스 어폰 어 타임...”이 중요하겠다. 우리말로는 “옛날 옛적에...”인데, 콩쥐와 팥쥐의 이야기도 그렇고, 유리구두를 신은 공주의 이야기도 다 이렇게 시작했다. 굳이 제목에 써놓지 않아도 타란티노의 영화는 옛날 얘기를 할 게 자명한데, 굳이 언급한 건 분명한 의도가 있으리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내 모든 영화는 10개의 칸으로 구성된 하나의 긴 열차와 같다고 보면 된다. 10번째 영화는 일종의 에필로그로, 대단원을 맺는 클라이맥스가 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만약 흥행에 성공한다면, 곧바로 은퇴할 의사가 있다.”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헐리우드>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9번째 영화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고, 이 영화가 타란티노가 마지막으로 연출한 영화가 될 수 있다. 어쨌든 은퇴를 진지하게 고려한 타란티노의 심정은 릭에게 많이 투여됐을 것이다. 릭은 한때 잘 나가던 헐리우드 스타였지만, 이제는 젊은 주인공들에게 뚜드려 맞기만 하는 악역만 맡고 있다. 그것도 영화가 아닌 TV시리즈에서. 그 무엇도 시간을 컨트롤할 수 없고, 그래서 그 무엇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지만, 이름 그대로 폭발해서 먼지가 되고 마는 별과 같다. 영원히 살 수도 없고, 영원히 반짝일 수도 없다. 릭의 자리를 대신할 스타가 등장하고, 또 그를 대신할 스타가 등장할 것이다. 타란티노 감독은 언제나 자신이 열렬히 사랑했던 황금기의 헐리우드에 대한 예찬을 영화에 담아낸다. 왜 별의 반짝임도 이미 과거에 별이 폭발하면서 발광한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메리카>에서 누들스가 벽에 난 작은 구멍으로 과거를 돌아봤듯, 타란티노는 그 시절의 반짝임을 카메라를 통해 돌아본다. 1968년에서 1920년으로 돌아갔던 누들스처럼, 2019년에서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란티노는 자신이 봤던 영화들을 주욱 늘어놓고 찍고자 하는 장면에 어울릴 법한 영화에 관객을 데려다 놓는다. 보드게임의 말처럼 무작위로 던져진 주사위에 맞게 가는 식이라도 좋다. 잘 모르겠다고? 괜찮다. <헐리우드>엔 아주 친절한 가이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가 있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클리프라는 캐릭터마저 이러한 상황과 딱 떨어진다. 클리프는 릭의 스턴트맨이다. 릭을 대신해 위험한 장면을 촬영하고, 릭을 대신해 운전을 하고, 고장 난 안테나를 고치는 등 릭을 대체하는 인물이다. 릭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스타가 떠오르고, 타란티노가 찬양해 마지않는 헐리우드의 황금기가 가고 새로운 문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과 유사하다. 허나 영화의 종반부에 활약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클리프(와 그의 애견 브랜디)였다. 기성세대의 문화에 반하는 히피나, 누벨바그나, 도그마 선언이나 다 마찬가지다. 과거의 것, 옛 것이 있었기에 지금의 새로운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것들 역시 과거가 됐고, 될 것이다. 릭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시대가 끝났다며 좌절하고 울먹이던 그가 보란 듯이 호연을 펼쳐 보이지 않았던가. “이제 조금씩 쓸모없어진다(useless)”던 릭은 여전했다(still work). 사람도 마찬가지고, 영화도 마찬가지고, 세상의 모든 것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헐리우드>는 타란티노 본인이 만든, 구축한 영화 세계의 집대성이라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저수지의 개들>(1992),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에서의 폭발하는 액션은 두말할 것 없고, <펄프 픽션>(1994)의 강렬한 에너지, <킬 빌>(2003, 2004),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가 보여줬던 서스펜스, 사무엘 L. 잭슨이 저절로 떠오르는 <헤이트풀8>(2015)의 이야기와 복수가 선사하는 쾌감까지 모두 들어있다. 자신의 감독 인생을 되돌아보며 쓴 자서전 같은 영화인 셈이다. 그래서 <헐리우드>는 타란티노가 언젠가 한 번은 꼭 했어야 할 과제였을 것이다. 그만큼 애정을 쏟다 보니 러닝타임도 길어졌을 테지만,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광의 열정을 느끼려 노력했다. 클리프가 고장 난 안테나를 고칠 때, 쓸데없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구태여 따질 필요 있는가? 샤론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자세로 즐기면 될 뿐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으로 시작한 영화는 "원스 어폰 어 타임..."으로 맺었다. 그 시대는, 열정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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