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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Mar 07. 2024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 2024

안녕을 잘 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24년이란 시간에 걸쳐 끝내 상대방과 안녕을 잘 고하고자 하는 여정을 그린 영화다. 영화가 시작할 때, 건너편 바에 앉아있는 노라(그레타 리), 해성(유태오), 아서(존 마가로)를 바라보는 이들이 수군거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용인즉, 새벽 네 시에 나란히 바에 앉아있는 저 셋의 관계가 무엇일까 추측하는 것이었다.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이지만, 그래서 노라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 오프닝을 통해 노라와 해성의 이야기를 주인공 자신이 회상하는 것 대신, 제3자가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노라, 아니 한국 이름으로 나영과 해성이 헤어진 것은 24년 전 12살 때였다. 나영의 의지로 그런 것이 아닌, 부모님의 이민길에 따라나선 것뿐이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지만, 너무 어렸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 자체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어린 나영과 해성은 서로에게 안녕을 고하지 못했다. <패스트 라이브즈>가 특이한 것은, 예사의 영화였다면 그렇게 24년 전과 후 2개의 시점을 소개할 텐데, 그 중간지점인 12년 후를 소개한다.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태오는 군 복무를 했고, 나영은 캐나다에서 다시 한번 미국으로 이주하며 서로의 길을 열심히 나아가던 중 우연히 연락이 닿아 인터넷 화상통화로 12살 때로 돌아간 것 같은 시기를 보내지만, 어쩌면 이제는 성인이 된 둘이 연애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한국과 미국의 물리적인 거리, 시차, 그래서 같이 있고 싶고, 보고 싶지만 당장 한국으로, 미국으로 갈 수도 없는 둘의 상황은 서로에게 장해가 된다.


뻔한 얘기지만 셀린 송 감독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영화다. 오프닝의 선택부터 단지 본인이 한국계 캐나다인이어서 한국인으로 자라고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해성을 대하는 조심스러운 태도, 미국에 있지만 한국어로 말하고 관계를 쌓는 노라에게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기 위해 한 발자국 물러선 것으로 보이고, 어색한 한국어 대사들도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졌다. 단지 감독이 한국계 이민자라서가 아니라, 이 영화는, 노라와 해성은 12살의 나영과 해성이 못한 것을 하기 위해 24년 만에 만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노라와 해성은 지난 긴 세월의 그리움에 대해 말하다가도 노라의 곁에 있는 남편 아서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서로가 싱글이었다면 다른 결말이 있지 않았을까 분명 생각했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 어제의 노라와 오늘의 노라가 다르고, 어제의 해성과 오늘의 해성도 다를 것인데, 24년 전의 나영과 해성은 어떻겠는가. 둘은 24년 전의 모습을 생각하며, 12년 전의 화상통화 상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만났을 것이다. 36살의 두 인물이 육체적으로 마주하고 있으나, 사실 12살, 혹은 24살의 둘의 상이 맺혀있는 셈이다. 12살의 한국어가 유창할 리 없다. 또, 노라의 근처엔 한국어를 사용하는 이가 없다. 당연히 12살 때에 한국어 수준이 멈춰있었을 것이고, 사용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더 퇴보했을 수도 있다. 영화 속 한국어가, 한국을 묘사하는 이미지가 어눌한 것은 당연하다.


24년 전, 나영과 해성이 갈림길에서 헤어질 때 해성이 가는 길은 회색빛, 나영이 가는 길은 초록빛이다. 해외로 이민 가는 것이 꼭 나영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는 것은 아니겠으나 서로가 다른 길을 가는 것을 암시한다. 24년 후, 노라와 해성이 헤어질 때 다시 한번 이 장면이 반복된다. 똑같은 장면인데 24년 전의 것은 낮이었으나, 24년 후의 것은 밤이다. 낮의 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밤의 것은 현재의 노라와 해성이 처한 그 상황이다. 아쉽게도 이번 생엔 인연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헤어지려 한다. 애초에 12살에 그것을 인지했더라면 24년이나 서로를 찾아 오늘에 이르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결국에 안녕을 고하러 지금에 이르렀다. 안녕. 잘 지내. 노라와 해성은 12살에 하지 못했던 이별을 끝내 해냈다. 노라에겐 해성이 단지 어린 시절 친구인 것 이상으로, 떠나온 한국에 대한 그리움도 혼합된 존재일 것이다. 떠나왔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아파트에서 나와 왼쪽으로 갔다가 해성을 우버에 태워주고 다시 오른쪽으로 나아가는데 노라의 옷과 머리가 다 날릴 정도로 바람이 분다. 두 손에 꼭 쥐고 내내 그리워하며 찾아 헤매던 이와, 인지는 하고 있으나 그저 마음 한편에 두고 살았던 이가 긴 세월의 짐을 내려놓으니 마음에 큰 구멍이 뻥 뚫렸는데 그곳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패스트라이브즈 #그레타리 #유태오 #존마가로 #셀린송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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