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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Mar 29. 2024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Evil Does Not Exist, 2024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흡이 참 길다.’ ‘이걸 이렇게까지 담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한 10초 전에는 진작 끝났어도 괜찮겠다 싶은 오프닝은 누군가가 혹은 무엇도 아닌 그저 카메라가 숲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점숏이었다. 계속 스산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이게 언제까지 이어지려나 싶었다. 이미지는 아직 하늘인데 다음 장면의 소리가 먼저 나왔다. 하나(니시카와 료)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앞의 이미지는 하나의 시점숏이었나? 또 숲 속의 하나의 이미지는 그대로인데 다음 장면의 사운드가 먼저 나온다. 타쿠미(오미카 히토시)가 장작을 전기톱으로 썰고 있었다. 장면과 장면은, 그리고 자연과 어린아이, 성인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작은 산골 마을 숲 속에 사는 하나의 하굣길은 아빠 타쿠미와 눈에 보이는 나무의 이름을 맞추고, 사슴의 흔적을 보는 일로 채워진다. <드라이브 마이 카>(2021)에선 다양한 국적의 언어를 동시에, 심지어 수어까지 쓰는 와중 이번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선 나무가, 사슴이, 냇물이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해피 아워>(2015)에서부터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떤 분위기에서든, 무엇에서든 무언가를 들어보려 하게 되는 것 같다. 산골 마을의 주민들, 그리고 그곳에 글램핑장을 설치하려는 이들 사이에서 자연도 끊임없이 관객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함이 분명히 느껴져 이상했다. 나무가, 사슴이, 심지어 얼어붙은 냇물이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그저 이상하다고 할밖에 없어 야속하다.


영화는 글램핑 사업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자연, 특히 물이 오염되는 것을 화두로 내세운다. 다수의 인원이 캠핑을 하며 발생한 오염수 처리에 관한 것인데,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이고, 상류에서 잘 처리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오염된 것이 쌓여 아래로 흘러가기 때문에, 상류에 사는 산골 마을 사람들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기생충>(2019)의 비 오는 날이 떠오르기도 하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도 연상된다. 도시에서 사업을 위해 온 이들이라고 자연을 파괴하고자 했겠는가. 마을 주민들도 길지 않은 인생 잠시 와서 자연 속에 지내다 가는 셈이니 처지는 별반 다르지 않다. 글램핑 사업을 위해 왔던 이들이 주민들의 반발에 떠밀려 나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타쿠미를 따라 장작을 패고, 샘물로 만든 우동을 먹고, 마을을 다니며 심지어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나를 찾으러 다니며 어느새 하나가 된 듯한 분위기 속, 그래서 결국 모든 이야기의 흐름이 선으로 귀결되는 건가 싶었던 순간 총성이 울리고야 만다. 영화의 제목을 잠시 잊을 만큼 영화에 흡입되어 있다가 ‘악’이라는 것에 대해 상기하게 된다.


마을의 심부름센터라는 타쿠미는 여러 일을 하다 산골에 총성이 울리니 하나를 학교에서 데려와야 함을 상기했었다. 산에 사는 동물은 셀 수 없이 많겠으나, 영화에 등장한 동물은 한 손에 꼽는다. 흔히 영화를 보던 이들은 계속해서 언급되고 노출되던 사슴을 떠올리겠으나, 타쿠미는 그때 하나를 떠올린다. 그런 날이 많았는지 하나는 아빠를 기다리지 않고 홀로 걸어서 집에 온다. 마을회장은 어린 하나에게 숲 속 들판엔 위험하니 혼자 가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었다.


영화의 마지막, 안갯속에서 타쿠미는 사슴과 마주하고 있는 하나를 발견한다. 사슴의 몸통엔 총상이 보인다. 겁이 많아 사람을 보면 도망간다는 사슴과 하나는 어쩜 저리도 가만히,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까. 이내 타쿠미는 타카하시의 목을 조른다. 야생 사슴은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총에 빗맞아 도망갈 여력이 없다면 공격을 할 수도 있을 거라던 타쿠미의 말이 떠오른다. 좀 전까지 그 자리에 있었던 사슴은 보이지 않고 하나는 코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다. 하나는 총에 빗맞은 걸까. 그래서 하나의 아빠가 타카하시를 공격한 것일까. 다시 오프닝에서 한참을 봤던 하늘을 바라보는 시점숏이 등장한다. 하나를 안고 달리는 타쿠미의 거친 숨소리만이 들리는 와중 하나는 무사할까.


#악은존재하지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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