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Days, 2023
완벽한 하루, 완벽한 삶이란 존재할까. “The Tokyo Toilet”이라 적혀있는 유니폼을 입고 새벽녘 출근하는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일한다. 동료 타카시(에모토 도키오)가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텐데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청소하냐고 핀잔을 놓을 만큼 히라야마는 자신의 일에 열심이다. 두 시간이 조금 넘는 영화 안에서도 그의 대사를 손에 꼽을 만큼 말수가 적은 그가 왜 그렇게 열심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루하루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이른 새벽 이웃의 비질 소리에 잠에서 깨어 단정하게 면도를 하고, 집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먹고 일터로 향했다가, 퇴근 후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 잔을, 서점에 가서 책 한 권을 사서 읽다가 자는 것이 히라야마의 매일의 모습이다. 그가 화장실 청소를 하던 중 손을 잡고 줄지어 가는 유치원생들을 보고 미소를 짓는 것, 공원에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는 어떤 노인과 가볍게 목례를 나누는 것들 외에도 특이점을 발견한 것은 그의 취미에서였다. 포크너나,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을 읽고, 그의 방에 가득한 레코드와 테이프들 같은 것에서 그가 과거에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것뿐 아니라, 어떤 사연이 있어 스스로 과거의 삶과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 같은 인상이다. 아니더라도 사실 상관은 없을 것이다. 점심시간 인근 신사에 올라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볕뉘를 보며 미소를 짓는 것, 그런 것이 지금 나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빔 벤더스 감독이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삶뿐만 아니라, 나의 삶도 잘 살펴봐 주었구나라는 기분이 들게 하는 영화니까.
히라야마는 어떤 식전의식처럼, 점심을 먹기 전에 카메라로 그날의 햇빛을 찍는다. 노출값도 무엇도 설정하지 않고, 뷰파인더에 눈을 대지도 않은 채 그저 찍는다. 그렇게 결과물을 알지도 못하고 있다가 한 번에 사진을 뽑아선 잘 나온 것은 보관하고, 아닌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북- 찢어서 버린다. 하루 간의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통제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 유연성도 꽤 있어 보이는 그에게서도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건, 오래간 소원하게 지냈던 여동생의 딸, 조카 니코(나카노 아리사)가 불쑥 찾아오고부터이다. 열심히, 오래간 과거의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정교하게 살아냈을 그에게 정해진 루틴이 흐트러지고, 과거의 삶을 떠오르게 하는 니코는 반갑기도 하면서 동시에 불청객인 셈이다.
니코의 이런저런 물음에 답변을 하긴 하지만 히라야마의 말수가 적은 건 여전하다. 그에겐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일뿐이다. 반복해서 진행되는 그의 하루를 빔 벤더스는 굳이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촬영에 있어 어떤 기교도 부리지 않았다. 단조로우면서도 담백한 일상을 보는 와중 그 여백에서, 많은 대사보다 그의 표정과 몸짓에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열심히 거리를 두고 살아내려는 그의 모습은 마치 수행자, 순례자의 것 같기도 하다. 짐 자무쉬의 <패터슨>(2016)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패터슨 시에 사는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은 버스 운전사로 일하며 점심시간 시를 쓰며 자신의 하루를, 삶을 돌아보기도 했었다.
영화를 보고 집에 오는 길에 문득, 시인 한강의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이 떠올랐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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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