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ver, 2024
근 10년 만에 찾아온 <무뢰한>의 오승욱 감독이 다시 한번 전도연과 호흡을 맞춘 영화 <리볼버>는 어쩐지 평양냉면 같은 느낌이다. 영화를 볼 땐 밋밋한 것 같았는데, 극장을 나오고 나니 그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면,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형사 정재곤(김남길)처럼, 하수영(전도연) 역시 반듯한 경찰은 아니다. 선배이자 연인이었던 임석용(이정재)과 비리에 연루됐는데, 보상 7억 원과 임석용과 함께 살 아파트를 조건으로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다. 감옥에서 2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임석용은 알 수 없는 일에 휘말려 죽었고, 약속받았던 돈과 아파트마저 잃게 생겼다. 하수영은 임석용의 죽음과 자신이 받았어야 할 보상을 위해 복수를 계획한다.
하수영과 임석용의 사수였지만, 임석용과 자신의 사이가 멀어진 모종의 사건이 하수영 때문이라 생각하는 민기현(정재영)은 하수영에게 복수의 도구로서 <리볼버>를 건네지만, 정작 하수영은 <리볼버>를 손에 쥐지 않는다. 권총을 손에 쥐면 간단해질 수 있는 일이지만, 수중에 권총을 쥐고도 그것을 쓰지 않고 원하는 바를 달성하는 것, 인간으로서 자신이 생각하고 정한 선을 지키는 것, 그것이 오승욱이 <리볼버>에서 표현하고자 한 것일 테다. 느와르라 자처하고 나선 한국의 여느 영화들처럼 <리볼버>엔 비리에 연루된 경찰도, 막무가내인 재벌가의 인물도 등장하지만, <리볼버>는 그들의 개인사를 굳이 밝히지 않는다. 인물 간의 뜬구름 같은 로맨스도 없고, 생뚱맞게 말장난으로 코믹한 장면을 넣지도 않았다. 단지 인물들이 ‘돈’에 기반한 저마다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다 한 자리에 모인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다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각자의 ‘생’을 위한 투쟁일 것이다.
영화의 제목이나 포스터를 보고 <아저씨>(2010) 정도를 생각하며 극장에 갔을 관객은 분명 실망했을 테지만, 이 영화는 분명 <킬리만자로>(2000)와 <무뢰한>(2014)을 만들었던 오승욱의 작품이다. 이미 수렁에 빠졌지만 더 깊이, 더 지독한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은 차라리 <마돈나>(2014)의 것 같다. 그래서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산속에서의 액션씬도 <미옥>(2017) 같은 사례처럼 어떻게 더 잔인한 장면을 담을까를 고민한 것 대신, 그 자리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군상을 그리고, 하수영 역시 그들을 한 명 한 명 차례로 상대해 나가는 방식을 택한다. 달빛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어두컴컴한 숲 속에 부감으로 긴장을 넘어 공포감까지 조성했으나, 역시 <존 윅> 시리즈 같은 것을 기대한 이들에겐 실망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승욱은 그런 것을 표현하는 데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리볼버>는 전도연과 얼핏 메인 빌런 격의 지창욱의 투톱 영화처럼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정 마담, 윤선 역을 연기한 임지연과의 투톱 영화로 보였다. 술집에서 일하고, 남편이 벌이는 사고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면에서 <무뢰한>의 혜경과도 닮은 구석이 있는 윤선이 “너는 하수영 어디가 그렇게 좋냐?”는 물음에 “에브리띵”이라 답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왜인지 모르게 하수영에게 끌린 것은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보이는 면들이 있음에도 어느 순간엔 하수영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는 이중성을 띄며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과 하수영 사이에 연결지점을 만들고, 각 인물과의 서사에 색채를 입히는 역할을 잘 소화해 낸 임지연이 돋보였다.
하수영은 <리볼버>를 수중에 넣었지만, 손에 쥐진 않는다. 다시, <리볼버>를 손에 쥐긴 했으나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진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 그의 손을 클로즈업한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총기에 대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경찰로서 애초에 살상을 위해 병기를 손에 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지만, 그 태도를 오승욱은 <리볼버>에서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코 발사되지 않을 총알처럼, 이 영화에서 전도연의 연기 역시 폭발하진 않지만, 얼핏 한결같은 무표정에서도 다양한 감정이 느껴지는 전도연의 연기는 대단한 것이다. ‘전도연이 왜 그렇게 좋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윤선처럼 “에브리띵”이라 답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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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평양냉면 먹어본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