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Romulus, 2024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1979)이 세운 혁신적이면서도 장엄한 장르의 기준을 제임스 카메론(1986년 2편), 데이빗 핀처(1992년 3편), 장 피에르 주네(1997년 4편) 같은 감독들이 번번이 넘지 못했었는데, 심지어 리들리 스콧 자신조차 <프로메테우스>(2012), <에이리언: 커버넌트>(2017)으로 프리퀄을 내놓았으나,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더하며 이 시리즈의 행방이 묘연했는데, 2024년 페드 알바레즈는 시리즈의 팬들이 오래간 바랐던 그 기준을 충족하는 작품을 내놓은 것 같다.
에이리언이란 크리쳐는 분명 생김새 이상으로 공포스럽고, 징그러운 존재가 맞지만, 이 시리즈를 굳이 장르로 구분하자면 <에이리언 vs. 프레데터>(2012) 같은 SF기반의 액션 영화보다는,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 같이 그 크리쳐에 기반하여 형성되는 분위기 속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스릴러/호러에 가까운 것이었다. <로물루스>에 더 이상의 질문은 없다. 영화 초반 레인(케일리 스패니)과 앤디(데이비드 존슨)가 탈출하려는 웨이랜드-유타니 노동 교도소라는 장소에 대한 설명도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됐다. 레인이 채워야 하는 12,000시간의 노동 시간이 어째서 24,000시간이 됐는지, 밖에선 왜 희망을 미끼 삼아 노예로 부리려는 것이라는 구호를 소리치는 이가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네오모프나 프로토모프에 대한 설명도 없어도 됐다. 1979년 1편에서 우주로 내던져졌던 제노모프가 그 오랜 세월 산소도 식량도 없었던 곳에서 살아남은 끔찍한 존재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쩌면 혹은 필연적으로 우주로 나아간 수많은 SF장르물들이 영원히 빚질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가, HAL9000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일 테다. 애초부터 감정이 배제된 앤디의 존재 때문에 가능한 선택들과 그것에 따른 이야기의 전개들은 영화 안에서 가볍게 등장했다 깊이 없는 대사를 남기고 퇴장한 전형적인 조연들이 분담했어야 할 그것들을 모두 기능해 낸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아무리 탐독했다 한들, 인간은 인간 자신을 위해 한 없이 이기적인 존재일 뿐이다. 단지 본능에 충실하며 살아온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류의 역사가 긴 시간 이어져 오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러다가는 다 죽어!”를 모르는 게 아니지만, <로물루스> 속 인간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래서 모종의 사건 이후 어떠한 대사도, 설명도 없이 레인이 앤디의 뺨을 때리고 부들부들 떠는 장면이 다 이해가 됐다.
모듈에 따라 180도 달라지는 휴머노이드를 연기한 배우의 호연이 돋보였고, 우주에서의 무중력을 이용한 장면에서의 쾌감도 돋보였다. 마지막 ‘두둥’하고 영웅처럼 등장하는 장면만 빼고 만족스러웠던 레인에게서는 굳이 리플리(시고니 위버)를 떠올리지 않아도 될만한 것이었고, 입이 바짝 마르고 손에 땀을 쥐는 와중 콜라 한 모금하려고 컵 집어 드는데 반세기가 더 흘러도 이보다 더 완벽해질 수 없는 비주얼의 제노모프가 등장하며 놀라게 하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9년의 <에이리언>이 여전히 제일 위에 위치할 테지만, 여기서 <에이리언> 시리즈를 끝내고 싶지 않다. 동면에 잠든 레인이 멋지게 속편으로 돌아와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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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24년인데 에‘일’리언이라고 표기해도 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