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Long Nights, 2024
“지구가 자전하는 한, 공평하게 아침은 올 것이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8)에서 클럽에서 밤을 지새운 세 인물이 술기운이 남아있는 상태로 밖에 나와 맞이한 새벽이 있었고,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2)에선 게이코(기시이 유키노)가 다음 시합을 위해 또다시 조깅을 시작할 새벽이 있었다. 지구가 끝없이 자전하는 한, 우리의 하루엔 낮이 있고 밤이 있다. 다시, 우리의 하루엔 빛과 어둠이 있다. 밝고 좋았던 시간이 있었다면, 반드시 어둡고 힘든 시간도 있기 마련이다. 미야케 쇼는 <새벽의 모든>에서 그 중간의 새벽을 조명한다. 조명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직접적인 이미지로써 보여주지는 않는다.
후지사와(카미시라이시 모네)는 PMS(월경 전증후군) 탓에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화를 내게 되는 날이 있고, 야마조에(마츠무라 호쿠토)는 공황장애 탓에 사람이 많은 곳에 갈 수 없다. 둘 다 이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떠나 지역에서 아동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쿠리타 과학에서 일하게 되는데, 어느 날 야마조에가 회사에서 발작을 일으켰는데, 후지사와가 자신이 예전에 먹은 바 있었던 야마조에의 약을 발견하게 되면서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나, 둘은 각자 자신의 상황 탓에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은 경계한다. 후지사와의 말을 빌려, “서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미야케 쇼 감독 특유의 섬세함이 영화 전반에 묻어나는데, 그 선이라는 것이 모든 장면에 드러난다. 두 주인공이 한 화면에 잡히는 와중에도 집까지 데려다주는 후지사와가 야마조에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걷는 모습이라던지, 창문 너머로 상대를 바라보는 인물과 그 시각의 대상이 되는 두 숏을 나란히 연결한다던지, 나란히 앉아있지만 사무실 책상 위라 공간이 형성해 주는 거리감이라던지,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상대의 집 앞까지 왔는데도 문고리에 봉투만 걸어두고 간다던지, 나란히 서서 차의 유리창을 닦는데 자동차의 프레임이 둘 사이를 나눈다던지, 나란히 앉아있는데 그것을 정면에서 담지 않고 측면에서 촬영해 앞과 뒤의 거리감이 느껴지게 배치를 한다던지 말이다. 하지만, 그 선을 넘지 않는 와중에도 둘은 미세하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명만이 화면에 등장해 있다가, 외화면에서 한 명이 걸어 들어와 한 화면에 둘이 같이 잡히게 되는 장면이 있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그랬듯, 영화의 대부분은 어떤 순환이라는 흐름 위에서 그려진다. 영화의 첫 장면, 후지사와가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좌절감에 쓰러져있던 곳은 순환버스가 정차하는 곳이었다. 야마조에가 공황장애 탓에 오르지 못한 전철 역시 하루 간 정해진 노선을 순환하는 것이다. 둘은 그 흐름에 오르지 못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낮이 가고 밤이 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고, 떠나는 전철에 내가 오를 수 있을 준비가 될 때까지 잡아둘 수도 없다. 미야케 쇼는 외화면에서의 내래이션을 통해 친절하게, 그리고 세심하게 그것을 말한다. 첫 번째는 후지사와의 것이었다. “도대체 난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은 걸까?”... “이런 자신에게 진저리가 난다.”라고 했던 후지사와가 직장 상사로부터 들은 말은 “후지사와 씨 답지 않네요.”였다. 회사에서, 사회에서 말하는 ‘나다움’이란 무엇일까. 답을 내리지 못한 후지사와는 회사에서 뛰쳐나와 쿠리타 과학에 이르렀다.
다음 내래이션은 쿠리타 과학 사장의 동생이다. 모종의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그의 밤에 대한 목소리는 어느새 야마조에의 것으로, 후지사와의 것으로 옮겨간다. “지구가 자전하는 한 공평하게 아침과 밤이 올 것이다.”... “기쁨으로 가득 찬 날도 슬픔에 가득 찬 날도 반드시 끝난다.”... “그리고 새로운 새벽이 올 것이다.”라고. 마지막의 내레이션은 후지사와가 떠난 후 야마조에의 것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 후지사와가 했던 말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인데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후지사와를 만나게 돼서 다행이다.”라고 말한다.
미야케 쇼가 적당히 무리하지 않으면서, 힘들이지 않고, 선을 넘지 않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만들어 놓은 이야기는 얼핏 밋밋하고, 별일 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모습 같지만, 마지막의 후지사와와 야마조에의 목소리가 들릴 때면 나도 모르게 눈두덩이가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밤하늘의 별은 스스로 반짝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우리가 캄캄한 극장 안 영화를 보며 얻고 싶은 위안과 희망은 미야케 쇼가 보여주고 들려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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