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ball Girl, 2019
수인아. 나는 “주수인”이 아니라, 수인아라고 불러주고 싶었다. 짤막한 글이나 최대한 수인(이주영)의 이름을 언급해보겠다. 수인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출생 전에 정해진 성별과 맞서 싸우는 인물이었다. 수인은 자신의 성별을 두고 신체적인 요소를 장점과 단점으로 나누지 아니하였다. 그런 수인에게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고집스럽게도 성씨를 이름과 분리하지 아니했다. “주수인.” “야, 주수인.” 같은 식으로.
나는 여성 프로선수들이 활약하는 축구를, 농구를, 배구를 직접 경기장에 가서 본 적도 있으나, 야구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여자 프로야구가 활성화된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 원래 선호하지 않는 종목이긴 하지만 아예 생각조차 못했던 나의 뒤통수를 한 대 쳐주는 느낌이었다.
영화의 제목은 <야구소녀>인데, 프로 풀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야구를 하는 소녀란 것인가. 수인은 남성들 틈에서 차디찬 빙판과도 같은 길을 걷는 여성이었다. 영화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사실 야구는, 나아가 스포츠라는 건 틀에 불과했다. <야구소녀>는 스포츠 영화처럼 포장한 여성 영화였다. 그러나 수인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여자 치고”, “여자라서” 따위의 말을 듣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고, 앞서 언급했듯 성별에 의한 신체적 장단점에 휘둘리지 않았다. 다시, 않으려 했다. 수인은 아니라고 계속 말했지만 이런 생각들을 아주 배제하진 못했다. 근력이 약하다던가, 체구가 작다거나 하는 신체적인 단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피가 나도록 노력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수인이 자신의 말처럼 신체적 약점보다는 강점을 더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등장했고, <야구소녀>는 성장 드라마의 구색을 갖춘다.
<야구소녀>가 단지 여성이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건 아니다. 수인의 야구부 코치로 등장하는 이준혁(최진태)은 남성이지만, 마흔이 넘도록 프로의 벽을 넘지 못한 인물이었다. 수인의 친구 한방글(주해은)은 가수가 되고 싶으나 소위 ‘외모 전형’에서 떨어져 노래 한 소절 불러보지 못하고 오디션에서 번번이 떨어진다. 수인의 아빠 주귀남(송영규)은 늦깎이 공부를 하는데 시험에 수차례 실패하고 있으며, 수인의 엄마 신해숙(염혜란)은 홀로 가정을 이끌어가고 있다. 수인과 함께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실패와, 세상의 시선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 맞서 싸우고 있다.
<야구소녀>는 스포츠를 주요 소재로 내걸었으나, 긴장감 넘치는 경기는 나오지 않는다. <퍼펙트 게임>(2011)처럼 피 튀기는 승부에 집중하지 않는다.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빠른 직구는 없지만,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천천히 연출 의도를 지켜낸다.
정지우 감독의 <4등>(2015)이 문득 떠오르는 순간들이 많이 있지만, 만듦새는 많이 헐겁다. 너무나 쉽게 예상 가능한 저급하고 자극적인 대사들이 등장한다던가, 이런 효과는 아니겠지 싶은 찰나 어김없이 그것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인을 응원하게 되는 건 이야기의 힘이 분명 있는 것이리라. 조금 더 섬세하게 짜임새를 보여줬더라면 나는 이 영화를 올해의 영화로 꼽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며 여성 프로야구에 대한 자막이 등장하니, 이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가? 싶었으나 그러진 않았다. 아니, 아무렴 어때. 어딘가에 있을 수인을 나는 열렬히 응원하겠다. 수인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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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 역의 이채은이 하는 “파이팅”의 발음이 너무나 교과서적이었다.
영화 속 시간은 1월이다. 겨울에 진행한 촬영에 다들 감기에 고생했을 것 같다. 다들 코맹맹이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