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이야기>

東京物語, 1953

by 박종승



오늘은 너무 아픈 영화를 봤습니다. 아주 단순한 이야기이고, 카메라의 움직임도 없는 영화에서 저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오즈 야스지로 감독님의 많은 영화들 중 첫 번째였기에 그랬을까요, 저 스스로도 확신이 들지 않아 감독님의 다른 영화 <만춘><1949>을 보았습니다. 영화에 무지한 저이지만, 갈피를 못 잡던 처음과는 달라졌습니다. 노부부가 자신들과 손자들을 보기 위해 동경으로 향합니다. 오랜만에 자식들을 보러 왔으나, 저마다 맡은 바 일을 하고 있기에 짐만 됩니다. 노부부는 집으로 돌아가고, 얼마 후 할머니가 돌아가십니다. 자식들을 보기 위해 왔던 할머니를 보기 위해 이번엔 자식들이 여행길에 오릅니다.


1953년도 작품임을 감안하고서도, 아니 그런 것을 제쳐두고서도, <동경 이야기>는 참 담백하게 찍힌 영화입니다. 인물이 누워있든, 서있든, 앉아있든 카메라 앵글 안에서 바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한 인물이 말을 하는 것을 촬영하는 동안엔 카메라 밖에서 다른 인물이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한 인물이 카메라 안에서 어디론가 이동한다면 실제로 그것에 소요되는 시간만큼 다른 것을 카메라에 담지 않습니다. 지금의 장면이 말하는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쓰이는 음악은 일체 없습니다. 영화 안에서의 유일무이한 운동력은 현재 앵글 안에 있는 배우들의 연기뿐입니다. 앞서 <동경 이야기>가 아주 단순한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단순한 이야기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것도 명확할 것입니다. 그 장면에서 전달되는 감정 또한 같을 것입니다. 눈에 띄는 어떠한 기교도 없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교를 부려놓은 것처럼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동경 이야기>의 이야기는, <동경 이야기> 속 인물은 꼭 나의 이야기이고, 그 인물이 꼭 나인 것처럼 공감이 되는 영화였습니다. 태어나 동경에 가본 적 없지만, 그 나라와 도시의 문화를 잘 모르지만, 정말 공감이 됐습니다. 아시아권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럴까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동경 이야기>가 지닌 힘은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님의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필모를 보다 보니 류 치슈라는 배우가 많이 보입니다. 류 치슈가 연기한 슈키치를 보며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졌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리고 류 치슈는 키가 크고 볼이 움푹 패었습니다. 영화의 초반부, 노부부가 동경에 도착하자마자 며느리 후미코가 맏아들 미노루에게 “할아버님, 할머님이시란다.”라고 두 분을 소개하자 미노루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나갑니다. 후미코는 노부부에게 “미노루는 이제 중학생이에요.”라고 말하는데, 미노루가 아주 어렸을 때 노부부를 뵀었기 때문이거나, 처음 뵀기 때문에 나온 대사일 겁니다. 두 분을 모시기 위해 후미코가 미노루의 방을 비워둔 탓이기도 하겠지만, 처음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존재가 낯설고 어쩌면 무서웠을 수도 있겠죠. <동경 이야기>의 이야기는 이 지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픈 영화라고 했습니다. 1928년에 데뷔해 100편이 넘는 영화에서 활약한 류 치슈의 예사롭지 않은 연기는 저를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흐느껴 울지 않지만, 그의 입꼬리는 미소를 띤 것처럼 위를 향해있지만, 많은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자식들과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데, 자식들은 언제 돌아가고, 돌아가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함을 나열하기 바쁩니다. 어머니의 건강에 이상 조짐이 보였다면 왜 진작 본인들에게 말하지 않냐고 다그칩니다. 슈키치는 조용히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릅니다. 이웃의 여자가 와 조의를 표하자 슈키치는 “아아.. 그 사람은 억센 여자였어요. 그래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 사람한테 더 잘해줬을 텐데요. 혼자되니 갑자기 하루가 길어지네요.”라 답합니다. 저는 오늘 너무 아픈 영화를 봤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동경이야기 #류치슈 #하라세츠코 #오즈야스지로 #영화

작가의 이전글<야구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