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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생물학자 천종식 Oct 13. 2019

술 한 방울 먹지 않고도 음주 단속에 걸릴 수 있을까?

대장 속 '양조 달인'에 대한 수사기록

최신 과학 연구를 통해 답을 찾아보자.


17세의 중국인 첸(가명)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 건 2004년 호주에 유학을 간 다음이었다. 자주 술에 취해있기는 다른 학생과 비슷했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있었다. 바로 첸은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이 비밀이 아닌 비밀을 안고, 2011년 중국으로 돌아왔다.


술을 전혀 먹지 않고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음주 운전 제한치의 10배에 이르는 일, 즉 만취하는 일이 한 달에도 몇 번씩 일어나던 첸은 급기하 27 세 살이 된 2014년에 베이징의 한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된다. CT 스캔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의 간은 알코올 중독자와 비슷하게 지방이 잔뜩 끼어있고, 크게 손상되었다.


사람의 간질환은 크게 알코올에 의한 것과 아닌 것, 즉 비알코올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첸의 경우엔 알코올을 섭취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비알코올성 간질환으로 봐야 하는데, 혈중 알코올 농도는 그 반대를 가리킨다.


첸의 주치의인 베이징 병원의 징 유안 박사와 연구팀은 그의 질병을 아주 드물게 보고되는 '자가 양조 증후군 (Auto-brewery syndrome)'으로 의심한다. 맥주나 와인 같은 술을 담그는 양조장에서 알코올 발효를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미생물이 바로 곰팡이의 일종인 효모 (이스트, yeast)다. 이 미생물이 엉뚱하게도 양조장이 아닌 사람의 대장에서 술을 발효하는 경우가 흔치 않지만 가끔 보고가 되기도 한다. 이 미생물이 장에 많으면, 콜라, 밥, 국수 같은 탄수화물만 먹어도 장에서는 알코올이 만들어지고 흡수되어, 사람이 취할 수 있다. 유안 박사는 첸에게 효모를 죽일 수 있는 항진균제를 처방했다. 하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고, 고민 끝에 연구팀은 장내 미생물 생톄계, 즉 마이크로바이옴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장내 미생물 DNA를 해독하는 이 검사를 통해 38조 개로 추정되는 장내 세균의 조성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데, 연구팀은 첸의 장에서 다른 사람에 비해 특별히 그 수가 많은 세균 하나를 찾아낸다. 바로 크렙지엘라 뉴모니아 (Klebsiella pneumoniae)라는 세균인데, 보통 장에서 발견되는 세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회 감염균으로 병원에서 악명이 높은 종이다. 첸은 다른 중국인에 비해서 900배나 많은 수의 크렙지엘라 뉴모니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유안 박사는 즉시 이 세균을 죽이기 위한 첸에게 항생제를 투여했다. 앞에서 사용한 항진균제는 효모는 죽이지만 세균은 죽이지 못한다. 그리고 추가로 장에서 일어나는 알코올 발효를 막기 위해, 발효 미생물의 먹이가 되는 탄수화물의 섭취를 제한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첸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급격히 줄었고, 첸은 급성 간질환에서 벗어났다. 물론 술도 깼을 것이다.


연구팀이 첸의 대변으로부터 마이크로바이옴 검사를 통해 혈중 알코올 농도가 줄어드는 동안, 범인으로 의심받던 크렙지엘라 뉴모니아도 같이 줄어드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수사 착수에 필요한 정황 증거는 확보한 셈이다.


범인을 확정 짓기 위해, 첸의 대변에서 이 세균을 분리 배양한 후에 자세히 취조(연구)한 유안 박사는 범인이 같은 종에 속한 다른 세균과 달리 알코올 발효의 달인의 경지에 이른 세균 (양조 달인균) 임을 실험실에서 확인했다. 같은 종에 속하는 세균이 사람을 죽이는 독성이 있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알코올 발효에 특화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곰팡이가 아닌 세균이 양조 기술에 특화된 건 이번이 첫 사건이라 수사에 시간이 오래 걸린 셈이다.

배양을 통해 드디어 범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양조 달인균이 간질환을 일으킬 능력이 있는지를 밝히기 위해 또 한 번 무균 생쥐가 소환되었다. 무균 생쥐에 이 세균과 탄수화물을 먹여본 연구팀은 양조 달인균이 첸에게 했던 것처럼 생쥐에게도 지방간을 일으킬 수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유안 박사는 혹시나 해서 다른 중국인도 이 양조 달인균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했는데, 놀랍게도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 환자 중 상당수가 이 세균을 대장에 가지고 있었다.


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최근에 서구화된 식단이 널리 퍼지면서,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간으로 시작해서, 간이 섬유화가 되는 간경변, 마지막으로 간암으로 이어지는 이 질병은 현재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예방이 최선이다. 이미 우리나라 국민의 20~30%가 이 질병을 가지고 있고, 이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큰 사회적 부담이 될 것이 뻔하다. 중국의 연구 결과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 양조 달인균에 의한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만약 양조 달인균이 장에 있는 것이 걱정된다면, 마이크로바이옴 검사를 해볼 수 도 있고, 탄수화물 섭취를 줄여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 그럼 술 한잔 마시지 않고 음주 운전 단속에 걸릴 수 있을까? 답은 ‘가능하다’이다.


단, 이를 증명하려면 마이크로바이옴 검사와 추가로 더 복잡한 미생물 분리 배양 검사까지 해야 할지 모른다. CNN의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2016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미국 뉴욕주의 한 여성이 단속 기준치의 4배의 혈중 알코올 농도로 입건이 되었다가, ‘자가 양조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무죄로 석방된 적이 있다고 한다. 사실 이 증후군은 이미 100년 전에 첫 보고가 된 오래된 의학적 현상이다. 너무 희귀하기도 하지만, 이 양조 달인 미생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취한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특별히 검사를 받지 않고, 일부는 자기도 모르게 지방간을 얻을 수도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통해 어쩌면 아주 중요한 간질환과 장내 미생물의 연관성이 밝혀진 것이라면, 그 치료나 예방법도 연구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참고로 마이크로바이옴 검사를 꾸준히 하고 있는 필자의 장에서는 지난 3년간 단 1마리의 크렙지엘라 뉴모니아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탄수화물과 알코올은 앞으로 좀 줄여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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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다음의 논문의 연구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자세한 내용을 원하는 독자는 원문을 참고하길 바란다.

(사진 출처: 경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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