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투탕카멘 전시를 보며
아이가 용산 전쟁 박물관 투탕카멘의 전시 관련 어린이 프로그램을 하러 들어간 사이, 먼저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집트 미라와 미술 전시를 처음 보았을 때.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8살 즈음일 것이다. 지금 내 아이의 나이가 7살이니 비슷하다.
어린 시절 유럽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자주 갔다. 프랑스로 파견 근무 나갔던 아버지 덕이다. 그 때가 여행의 기회여서, 서유럽 가족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 때마다 늘 박물관과 미술관을 들렀다. 재밌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고, 지루하기도 했던 기억이다.
그 때 마다 기분이 묘했다. 미술 공예품으로 박물관 전시 품목을 감상한다기 보다, 거대한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는 건, 이 전시물들을 실제로 만들고 사용했던 사람들은 이미 예전에 죽어 사라졌다는 걸 의미한다. 묘함은 죽음의 냄새였다. 난 밤의 박물관은 꽤나 무서우리라고 생각했다. 귀신으로 가득 차 있을 것 만 같았다. 저 생생한 유화속의 왕족도, 나보다도 어린 초롱초롱한 어린이도, 덮수룩한 수염과 뗏국물 진 얼굴로 고통을 울부짖는 사람도, 이미 모두 죽은 사람일 것이니.
그 중 압권은 이집트 미라였다. 이보다 더 죽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게 있을까. 아무 사전 지식이 없는 어린 아이에게도 붕대 감은 미라는 귀신의 대표 이미지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마주친 미라는 무서웠다. 수천년 전 사람이 썩은 채로 고통 속에 입을 벌리고 있고, 뼈와 흙만 남은 몸도 제대로 누워있다기 보다는 비비 꼬여 있어 보였다. 저것이 사람의 궁극적 미래라면 나의 미래도 종국에는 저 모습으로 귀결될 것 아닌가. 어린 마음에도 죽음을 섬찟하게 느꼈다. 아무렇지도 않게 영생할 것 같은 이집트 관과 벽화의 진한 눈동자와 대비되는 썩어 흩어진 인간. 그리고 영생을 믿었다는 박물관의 설명은 인간의 유한성과 어리석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 무서웠던 건, 이 미라를 발견하고 전시하게끔 한 사람들조차, 이 미라보다도 존재감 없이 벌써 자기의 생을 마쳤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미라 정도만 되도 영생의 측면에선 팔자가 나은 것이다.
오랜만에 이집트 전시를 보니 그 때 생각이 뒤엉켜 떠올랐다. 그래서 왠지 아이를 보여주기가 좀 내키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를 처음 인지했을 때의 황망함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9살이었다. 7살은 이를 느끼기엔 너무 빠르긴 하다. 만 나이로 생각하면 아직 6세다. 하지만 어리다해도 이집트 미술은 너무 구체적인 죽음의 이미지다. 괜찮을까.
발굴터 스티로폼 공예를 마치고 나온 아이의 얼굴은 무척 밝았다. 죽음의 인지와는 백년은 떨어져 있는 표정이었다. 역시, 7살은 아직 그런 나이는 아니니까. 아이와 함께 전시를 한 번 더 돌았다. 오디오 가이드가 길어 좀 지루해하긴 했지만 조금 전에 한 번 배운 걸 다시 살펴보는 걸 좋아하는 아이인지라, 나름 흥미로워했다. 전시는 투탕카멘을 발굴한 카터라는 사람의 관점으로 보게끔 스토리텔링이 되어 있었는데, 아이는 의외로 스토리 부분을 지루해하고 관심 없어했고 각 유물 재현품에 대한 설명을 재미있어했다. 문득, 투탕카멘의 묘를 발굴한 서양인의 시선으로 이 전시를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맞나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실재했던 ‘발굴사’를 따라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하면, 부적절할 것은 없었다.
전차 모형 아래 바닥이 진짜 모래라고 아이가 가르쳐줘서 혹시나하고 만져보다, 보기만 하라는 전시 안내원의 핀잔을 듣고 바로 돌아섰다. 아이는 아빠의 실수를 무척 즐거워했다. 투탕카멘을 발굴하고 나서 서유럽의 미술에서 이집트 미술스러움이 크게 유행했다고 되어 있다. 흥미롭다.
박물관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인류의 역사는 그대로 있고, 나는 한 세대를 돌아 여기에 다시 섰다. 아이는 삶을 시작한다. 나는 삶을 살고 살아 이제 지구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 어린 사람이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매사가 혼란스럽다. 변한 것과 그대로인 것. 인류의 역사, 부모와 자식, 어린이의 성장, 나의 표류.
ps.
프랑스 가자마자 빠져들었던 tv애니메이션 중에 <썬더캣>(불어 제목 코스모캣)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그 작품 최종 악당의 이미지가 피라미드 앞의 미라였다. 평소엔 망토를 뒤집어 쓴 미라인데 특정 조건에선 붕대를 풀어헤치며 근육질의 거한이 된다. 주인공들은 모두 고양이과 동물들이었는데, 사자, 호랑이, 표범, 치타 등등의 의인화 버전이었다. 어린이의 머릿속에 박히는 세계는, 어른들이 부지런히 역사로부터 차용한 캐릭터들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