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 이민자 Oct 18. 2021

옛 친구의 부친상


마스크 낀 중년의 아저씨들 사이에서

혹시 이십오년여를 뛰어넘어 알아볼 수 있는 동창의 얼굴이 있을까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나의 눈빛을 마주본 상대들도 내 얼굴에서 자기들의 기억 속 친근한 얼굴을 떠올리려 노력하는 게 보였다. 우리는 서로 아무도 아니었다. 같은 상가에 다른 인연으로 모인 사람들이었을 뿐.


그간 별다른 왕래가 없었던 오래 전 친구는, 친구라기엔 그때나 그 후로나 내가 마음으로 해준게 없어 민망한, 그 친구도 마스크 낀 내 얼굴을 순간 못 알아봤다. 어떻게 오셨어요? 나야 나. 아이고 마스크 끼니까 모르겠어.


췌장암, 호스피스 병원, 코로나 백신, 이른 죽음과 사람의 수명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조금 보냈다. 아는 얼굴을 더 만나지 못했다. 둘째날인 내일은 동창들이 더 모여 친구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간간이 웃음도 터질 지 모른다.


장례식장을 나서는데 친구의 어머님과 인사를 나눴다. 당연히 누군지 모르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들의 간략한 소개에 바로 ‘그래, 우리 집에도 왔었잖아...’라고 말씀하신다. 가슴이  막혔다. 나는 전혀 기억을 못했다. 말씀을 듣고 나서야 그랬던  싶다. 아들 친구에게  해주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기억을 남긴 것이다.  친구는 아들에게 별달리  해준 것도 없는데.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나를 들킨 것만 같은 기분이다. 친구 어머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오늘 여기에  것만 같다.


하루종일 상가집에 다녀오는 것이 유일한 일정인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삶을 달리 살아볼 수는 없을지, 되새겨보게 된다. 되새겨도 별 수 없는 삶의 관성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바꿔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존 론도의 두 번째 우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