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낀 중년의 아저씨들 사이에서
혹시 이십오년여를 뛰어넘어 알아볼 수 있는 동창의 얼굴이 있을까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나의 눈빛을 마주본 상대들도 내 얼굴에서 자기들의 기억 속 친근한 얼굴을 떠올리려 노력하는 게 보였다. 우리는 서로 아무도 아니었다. 같은 상가에 다른 인연으로 모인 사람들이었을 뿐.
그간 별다른 왕래가 없었던 오래 전 친구는, 친구라기엔 그때나 그 후로나 내가 마음으로 해준게 없어 민망한, 그 친구도 마스크 낀 내 얼굴을 순간 못 알아봤다. 어떻게 오셨어요? 나야 나. 아이고 마스크 끼니까 모르겠어.
췌장암, 호스피스 병원, 코로나 백신, 이른 죽음과 사람의 수명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조금 보냈다. 아는 얼굴을 더 만나지 못했다. 둘째날인 내일은 동창들이 더 모여 친구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간간이 웃음도 터질 지 모른다.
장례식장을 나서는데 친구의 어머님과 인사를 나눴다. 당연히 누군지 모르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들의 간략한 소개에 바로 ‘그래, 우리 집에도 왔었잖아...’라고 말씀하신다. 가슴이 콱 막혔다. 나는 전혀 기억을 못했다. 말씀을 듣고 나서야 그랬던 듯 싶다. 아들 친구에게 잘 해주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그 기억을 남긴 것이다. 그 친구는 아들에게 별달리 잘 해준 것도 없는데.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나를 들킨 것만 같은 기분이다. 친구 어머님의 그 말씀을 듣기 위해 오늘 여기에 온 것만 같다.
하루종일 상가집에 다녀오는 것이 유일한 일정인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삶을 달리 살아볼 수는 없을지, 되새겨보게 된다. 되새겨도 별 수 없는 삶의 관성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바꿔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