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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Oct 12. 2020

라존 론도의 두 번째 우승

nba 19-20 파이널

사실 별로였다. 이번 결승은.

저 두 사람은 원래 라이벌이자 앙숙이어야 했다. 같은 팀 동료가 아니라.


라존 론도와 르브론 제임스는 NBA를 다시 보게 만든 두 선수였다. 2012년, 조던 시절 이후로 NBA는 뉴스로도 체크하지 않아왔던 내게, 어디선가  ‘르브론 제임스라는 선수가 그렇게 잘 한단다’ 라는 풍문이 들려왔다. 그래서 보게된 경기가 2012년 동부 결승 7차전 게임이었다. 그 경기의 승자는 르브론 제임스(와 드웨인 웨이드의) 마이애미 히트였지만, 최고의 선수로 보였던 사람은 팀 최고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로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보스턴 셀틱스의 라존 론도였다. 경기를 지더라도 어쩌면 저리 멋있게 질까. 플레이 하는 모습은 어찌도 저리 감각적인가. 그렇게 한 경기로 팬이 되어버렸다.  셀틱스의 유니폼이 담백하게 예쁜 것도 한 몫 했다. 사실, 정 붙이고 NBA에 재입문 하고 싶어서 무슨 이유든 필요한 때였다.


 셀틱스는 빅3 삼총사(케빈 가넷, 폴 피어스, 레이 알랜)과 달타냥(라존 론도)으로 비유되는 끈적한 팀 농구를 구사하는 팀이었고, 마이애미 히트는 리그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며 당대 최고의 선수 셋(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이 최 전성기에 뭉친 팀이었다. 팬들의 설왕설래가 뜨거웠다. 한 쪽 편을 들고 상대방과 전의를 다지기에 좋은 구도였다. 기량상으로는 내리막을 타고 있는 셀틱스가 확실히 한 수 아래였다. 그러나 나는 셀틱스의 막내 포인트가드 론도의 성장을 같이 지켜보고 싶었다. 언더독을 응원하는 재미가 있잖나.

 그 해 르브론 제임스는 첫 우승을 거머쥔다. 그리고 보스턴 빅3의 한 축이었던 레이 알렌은 라이벌이었던 마이애미 히트로 이적한다. 셀틱스 팬덤은 배신자라며 난리가 났다. 그리고 그 해 라존 론도는 연속 두 자리 어시스트 기록을 역대 2위의 자리로 이어가다 코트 내 폭력 상황에 끼어들어 어이없이 날린 후, 무릎 부상으로 주저 앉는다. 론도는 그 시즌에 돌아오지 못했고 셀틱스는 2라운드에서 카멜로 앤서니의 뉴욕 닉스에게 주저앉는다. 그리고 르브론 제임스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간신히 누르고 두 번째 우승을 쟁취한다. 셀틱스는 결국 케빈 가넷과 폴 피어스를 브루클린 네츠로 넘기며 팀 리빌딩에 들어간다. 팬심을 갖자마자 모든 게 무너져 버린 셈이었다.


 론도는 복귀했지만 캡틴으로서의 성과는 미미했다. 댈러스로 이적하고선 감독과 불화하고 문제아로 찍혀 쫓겨난다. 론도가 한 시즌씩 댈러스, 킹스, 불스, 펠리컨스를 거쳐갈수록 사람들은 론도가 어떤 선수인지 잊어갔다. 그리고 론도가 어떤 선수였는지 관심 없는 사람들로부터 차갑고 짧은 평가를 받았다. 플레이오프에서 번득이는 모습도 종종 보여줬지만, 팀을 더 높은 곳까지 데려가기에는 부상이 발목을 잡았고 그 어느 팀도 론도를 중심으로 팀을 꾸려보려는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nba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대 마이애미 히트의 라이벌리에 이어,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대 또 이적한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브랜드 캐벌리어스의 라이벌리로 이어졌다. 론도는 과거에 반짝했던 잊혀져가는 저니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도를 응원하게 만드는 것은 깡과 투지였다. 그리고 그 깡과 투지의 상대는 결승에서 두 번 만났던 LA레이커스나 동부에서 지겹게 만나던 르브론 제임스의 팀이었다. 그러니 론도를 응원하는 일은 셀틱스 이겨라 이후엔 레이커스를 이겨라,  르브론을 이겨라, 의 구호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론도에겐 녹색 피가 흐른다며 절대 레이커스만은 가지 않겠다던 때도 있었고, 르브론을 욕하는 팬들과 흐뭇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었다. 그러니 이런 스토리를 상상해본다. 언젠가 베테랑으로 셀틱스로 돌아와 후배들을 이끌고 우승하는 론도를 보고 싶다는. 혹은 다른 팀이어도, 필생의 라이벌 르브론 제임스나 팀 레이커스를 꺾고 우승하는.


 부상으로 쇠퇴하고 있는 프로 스포츠 선수가 거취에 대해 자율권을 행사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론도의 (아마도) 종착지가 그동안 그를 응원하며 은연 중에 적으로 설정했던 레이커스일지, 그리고 르브론 제임스와 팀 동료로 뭉칠지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응원의 맥락이 완전이 깨진 셈이다. 김이 샜다. 이게 뭐야. 르브론의 휘하로 들어가는 거야? 셀틱스의 주장이 레이커스 팬덤에게 눈칫밥 먹어가며 실수하는 날은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모양새가 안타까웠다. 최고의 야전 사령관인 론도를 두고 르브론이 탑에서 공을 잡고 지휘를 하면 론도는 구석에 가서 멀뚱히 서 있어야 했다. 론도야 이게 정녕 네가 원하는 것이냐.

 그런데, 결국 그 둘이 뭉쳐 우승을 하고야 만 것이다. 하지만 론도는 여전히 팀의 주역 대우는 받지 못한다. 연봉이든 미디어의 인터뷰든, 주역은 르브론 제임스와 앤써니 데이비스다. 론도는 가자미다. 그렇게 원하던 론도의 승승장구였는데, 나름 팀 내 세 번째 정도의 존재감을 내뿜으며 우승을 이끌었는데, 보는 론도팬은 심드렁했다. 응원의 맥락이 깨지니 흥이 나질 않는 거다.

 하지만 론도 입장에서야, 말년에 안정된 팀에서 중요한 기여를 하며 두 번째 우승을 이루었고 세번째 우승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나을 수 있겠는가. 흥이 식은 건 단지 팬의 입장일 뿐, 론도는 자신의 최대치를 성취했다. 심드렁하게 경기를 보다보니, 스포츠 팬이라는 건 결국 맥락의 포로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응원의 스토리를 만들지 않으면 응원할 흥도 나질 않는 것이다.


 그런 점이 꼭 인생 같다. 사람은 자기 스토리의 완성에 집착한다. 그래야 어떤 의미라도 성립하니까. 그런데 정작 살면서 만나는 일들은 무맥락의 사건들이다. 때로는 안전하고 때로는 잔인한 일들이 마구잡이로 벌어진다. 대충 스스로가 생각하는 삶의 맥락에 정리해 본다. 그러나 가끔 도저히 스스로가 생각하는 맥락에 집어 넣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 나면, 그야말로 멘탈이 깨진다. 어? 이건 내가 생각한 내 인생이 아닌데? 그리고 머리가 굳는다. 이거 뭐야. 이건 내가 아닌데? 이건 나한테 발생할 거라 생각 못한 일인데?


맥락과 의미는 중요하지만, 그건 사후적인 놀이에 가깝고, 진짜 중요한 건 매일의 삶이 아닐까. 론도는 셀틱스와 레이커스에서 모두 우승한 최초의 선수가 되는 걸 목표로 삼겠다고 이번 시즌 시작 때 말했다. 사실 그런 홍보 자료 같은 목표가 론도라는 선수의 핵심일 순 없다. 그는 그저 영민하고 매력적인 포인트 가드일 뿐이다. 그리고 그의 팀에서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그에겐 핵심이다. 다만 매일의 최선을 하기 위해 명분을 붙여볼 뿐.


명분과 맥락, 의미를 찾지 못해 삶이 멈춰선 안 되겠지. 결국 드리블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패스하고 슛해야 한다. 맥락이 어그러졌다고 연습이든 경기를 멈추면 삶도 거기서 멈춘다. 명분과 맥락은 다시 온다. 인간은 어떻게든 의미를 잇지 않고는 못배기니까. 그러나 이을 재료가 없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절대 보고 싶지 않았던 같은 유니폼을 입은 두 선수의 포옹을 흥 없이 보며 스포츠의 뽕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올 것을 결심한다. NBA에 미쳤던 9년도, 내 삶에서도 환상 속에서 맥락을 이리저리 이어보던 9년이었다. 그리고 결국 내게 남은 건 그냥 나일 뿐. 그냥 오늘도 무심히 나를 스쳐가는 나의 시공간일뿐.


 우승을 축하해 론도. 멋져.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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