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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Oct 25. 2021

더 체어(The Chair)

netflix, 산드라 오, 시즌1 30분 6부작

더 체어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미국의 가상 대학의 영어영문학과 학과장이 되었다. 인간 승리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이 승리의 순간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승리에는 이면의 논리가 있다. 수강생에게 인기 없고 학과의 예산에 부담이 되는 노 교수 3인을 해고해야 한다. 손에 피를 묻힐 당사자로 한국계 여성 교수를 학과장에 내세운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감동적인 성취인 이 학과장 자리에서 김지윤 문학 박사(산드라 오)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지윤은 합리적이고 시원시원하게 문제 해결에 나선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모두를 보호하며 성취를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 과정에 동참하는 우리는 그녀의 선의와 합리적 결정 과정을 따라가며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그러나 매번 최선의 선택이 되기를 예상하며 걸었던 그녀의 행보는 예상치 못한 다음 위기로 그녀를 몰아넣는다. 그리고 이 위기들은 뼈저리게 현실적이다. 그녀는 부끄러운 선택을 한 적이 없지만 일은 점점 꼬여만 간다. 학과의 구설이 없어야 하는 사람들, 자신들을 향한 평가 절하를 참지 못하는 노 교수들, 종신 임명을 받기 힘든 젊은 교수, 부인을 잃은 상처를 극복하는 중에 사고를 쳐대는 오랜 친구이자 전임 학과장의 문제 등, 그녀의 선택엔 미처 예상치 못했던 다른 변수가 튀어나와 그녀를 궁지로 몰아간다. 도대체 어쩌라고 싶은 그녀의 학과장 기간이다.


입양딸의 싱글맘이기도 한 지윤은 가정에서도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친정 아버지에게 의지해야하는 육아 스케줄의 문제도 문제지만, 자신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고 심리 상담을 요하는 상태의 입양 딸을 건강하게 키워내야 한다. 멀쩡한 명문대학 영문학 교수에 학과장 자리를 차지하고서도 그녀는 스스로의 인간적 파산을 의심한다. 일도 가정도, 아무 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는 리더의 위치라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다. 그런다 한들, 입장이 다르니 결국 적대와 갈등의 씨앗은 늘 심어져 있다.


 40 중반은 드라마적 가능성을 깊게 품은 나이대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 사회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할  있을 만큼의 경력을 쌓은 나이. 그럼에도 뜻대로 풀리지 않은 것들을 내려 놓고 산적한 문제를 관리해야 하는 나이. 이만큼 쌓아온 세월 중에 가족과 직업이 위기에 처하면,  어떤 우정에도 기댈  없이 홀로 서야 하는 고독한 나이. 밖에서 보기엔 한국계 미국인 학자의 아메리칸 드림의 모범과도 같은 지윤의 실상은 이런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하는 순간들이 있다. 인생은 엄청난 악의를 가진 빌런이 없어도 암초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텍스트를 읽고 의미를 추적하는 순간들. 따뜻한 햇살이 깃드는 고풍스런 강의실에서 문장과 단어의 의미를 곱씹으며 삶의 의미 또한 떠올려보는 순간. 그리고 그 위에 스스로의 숙고와 창의를 덧입혀보는 순간들.

 쓸데 없기로 유명한 인문학을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수백년 전에 죽은 작가의 글에 권위를 부여하며 우리는 왜 읽고 또 읽는가. 그리고 거기에 부연하는 글을 쓰고 또 쓰는가. 그렇게 쌓아온 의미가 현재의 인간에게 더 나은 삶을 모색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기 때문이겠지.


 이런 이야기에 속 시원한 승리나 문제 해결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그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인식을 열고, 인간적으로 품위를 지키며, 실수를 인정하고, 어렵더라도 인간적인 일보 진전을 시도한다. 유능한 인문학자는 현실 앞에서 승리를 패배와 맞바꿨지만 의미의 구성과 깨달음에 있어서는 패배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사려깊은 드라메디(dramedy, drama comedy)다. 깔깔 웃으며 마음을 적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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