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rank Hauser & russell Reich
영국의 연극 연출가 프랭크 하우저(1922-2007)가 연출자로서 유념해야할 사항들을 130항목으로 정리해서 쓴 책이다. 그가 자신의 조연출이었던 러셀 라이치에게 건넸던 간단한 노트를 확장했다고 한다.
이 노트들은 연극 연출에 대한 것이지만 장르를 막론하고 배울 점이 많다. 극본과 배우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연출가로서의 준비와 마음가짐에 대해, 담백하게 정리되어 있다.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그동안의 경험이 몸에 베어있기를, 그래서 은연 중에 성취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공짜 심보가 든다. 그러나 어떻게 일하는지 제법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일에 착수하려면 길 잃은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런 나에게 정중하고 따뜻하게 꾸지람과 가르침을 전해주는 글이다. 돌이켜 보면 나의 불만과 고통은 결국 나의 모자람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스스로 오래도록 정립했던 연출자로서의 바람직한 자세가 있었다. 그걸 성취하고자 노력했는데, 지나고 나니 무엇을 성취했고 무엇을 못 했는지, 애초에 목표 설정 자체는 옳았는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모든 것이 성취의 증거이자 동시에 실패의 증거였다.
몇 가지 이야기들. '이건 너에 대한 것이 아니다'. '모두의 친구가 되려 하지 마라', '모두가 항상 긴장과 공포에 질려 있는 상태라고 상정하면, 사람들이 너에게 원하는 박애와 인내의 정도에 접근하기 쉬울 것이다'... 등등.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다.
연극에 관한 글이라 세부사항에서 영상 연출자에게 주는 팁이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사실 그런 팁들은 산업의 재편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10년전 방송계 연출자가 소중히 챙겨야할 실전적 팁과 현재의 팁들은 꽤 다르고 새롭다. 기본적인 마음 자세 정도만이 시간을 뛰어넘는 진리랄까. 이 책을 통해 시간을 뛰어넘음직한 충고만을 골라 받은 셈이다.
2003년 초판이 나왔다. 한창 복학해서 좌충우돌 하던 시절이다. 그 때 읽었더라면 지금 내가 조금 더 나았을까. 아니, 지금 읽었기에 더 생생하리라. 그래도 오랜만에 다시 어린 학생이 된 심정이어서 읽는 동안 즐거웠다.
책에 쓰여 있지 않았지만 읽고 나니 이 일의 정의가 새롭게 떠올랐다. 자의식이 비대한 사람들이 모여, 자의식을 놓아 두고 대신 자기가 아닌 이야기에 헌신함으로서, 성취를 이루고 그 결과로 자신을 다시금 알게 되고 성장시키는 일. 이 과정에서 산업과 비즈니스와 관객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의식을 기술적으로 놓는 법을 연마하여 성취를 다듬고 자신을 보호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직업을 좋아한다. 두려움을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