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
지들이 한강을 아나.
70년대 초 잠실이 아직 섬이었을 때, 송파강을 메우는 공사가 진행된다는 소리를 들은 순우는 퉁명스레 중얼거린다. 지들이 한강을 아냐고.한강에서 농사짓고 배로 건너다니며 삶을 일구어온 순우 입장에서 잠실 개발은 토착민들의 삶을 모르는 헛소리로 들린다.
나도 내 업에서 비슷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지상파 방송의 헤게모니가 영화인력으로, 케이블과 종편의 부흥으로, ott의 진입으로 와장창 깨져나가기 시작할 무렵, 술자리 선배들의 대화들.
지들이 방송을 아나.
지들이 드라마를 아나.
그 말이 상기 시키는 건 매일의 몸과 마음을 바친 노동이었다. 밤새 촬영장에서 진행을 도우며 서 있다가, 전대를 차고 다니며 정산을 하고, 들어와서 하나밖에 없던 nle편집기를 조연출끼리 돌려쓰며 예고 편집을 하고, 특수영상실에서 같이 밤을 새고, 회사 화장실 옆 토끼굴 같은 샤워실에서 씻다가 수건을 두고 온걸 발견해서 당황하고, 등급표와 숙박 식사표를 보며 출연료를 상정하고, 곤란한 돈 얘기를 서로 민망하게 끝도 없이 하고, 스태프들에게 사정사정하고, 연출에게 욕먹고, 그러다 칭찬받으면 신나고, 편집점 하나하나 음악 인아웃점 하나하나를 눈에 불을 켜고 체크하던 그 매일 몰아닥치는 노동과 마음의 시간. 노동의 결과물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뿌려지는 짜릿함과 그 후의 헛헛함. 이걸 누가 우리만큼 찰떡같이 알고 수행하겠느냐고.
그리고 모든 게 달라졌다.
무용할 뿐만 아니라 유독한, 철 지난 자부심과 어리석은 불안.
세상은 기존의 질서를 잘 아는 사람이나 세력을 통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질서가, 더 강하거나 더 효율적이거나 더 지배적인 질서가 나타나 그냥 밀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속절없이 세상은 바뀐다. 더 잘 아는 건 나 같다고 확신해도 그건 아무 소용이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알던 질서는 옛것이 된다. 옛 질서를 온 몸에 박아 넣고 온 마음을 다해 의미를 부여해온 인간의 시간은 그렇게 갈 곳을 잃는다. 잠실섬은 없어진다. 그래도 순우는 살아야 한다.
체홉 <바냐삼촌>의 번안인 김은성 작가님의 <순우삼촌>을 통해 떠밀려 사라지는 것들과 새롭게 들어서는 질서에 대해 생각한다. 파도 위의 서핑처럼 우린 점점 더 능숙하게 파도를 옮겨 타다가, 그 후엔 점점 더 조금씩 불안해지다가, 어느 바다 위에 쓰러져 해변으로 밀려올 것이다. 그 때 우린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무엇을 보고 있게 될까.
요즘 신주단지처럼 마음 속에 모셔온 과거의 기억들이 정말로 내게 있었던 일인지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진중하게 부여해온 의미들도 희미하게 느껴진다. 거울 속에 나도 종종 낯설다. 그래도 매일의 태양이 새로 뜬다. 또 다시 하루의 시간을 살아간다.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의미를 통과해 나아간다. 그리고 떠밀려 사라지는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지들이 한강을 아나.
지들이 한강을 알아서 바뀌는 게 아니라 한강을 모르기 때문에 바뀌는 것이다. 순우는 한강을 몰라서 떠밀리는 게 아니라 한강을 너무 잘 알아서 떠밀리는 것이다. 발밑의 든든한 질서와 의미에서 벗어나 압도적인 무의미로 순우는 떠밀려간다. 새소리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순우는 한강을 오래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우린 매일을 맞이하던 순우의 담담한 용기가 그에게 새로운 삶의 질서와 의미를 가져다주기를 기원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부디 그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