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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막극 제작기 21 - 다른 인물들

머리 심는 날

by 행복한 이민자

(화원 가족과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는 소품팀 상빈)


8. 화원의 부모


화원의 부모는 이한위 선배와 윤예희 선배가 각각 맡아주셨다. 이한위 선배는 연륜 있게 부담 없는 웃음으로 극의 무게중심을 잡아주셨다. 윤예희 선배는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에 계속 한 번쯤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묘한 마스크의 주인공이었다. 출연분량이 너무 짧아서 아쉽다.

두 인물에게도 히스토리가 있는데, 사실 창훈(화원 아버지, 이한위 분)의 바람도 나름 명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즉 화원 어머니가 먼저 살짝 바람을 핀 전력이 있는데, 이미 상황 종료가 다 된 뒤에 흔적을 발견한 지라 뭐라 말도 못하고 나름 그 복수로 바람을 꿈꿔왔다는 것.

어느 날 갈빗집에 기호 부모가 들렀는데 기호 아빠가 기호 엄마를 구박하고 화장실에 간 사이에 기호 엄마는 눈물을 찍고 있고, 그 때 손수건 한 번 건네주면서 관계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어절씨구. 드라마에 실제 나올 부분이 아니어서 참 쉽게 상상한 티가 난다.


어머, 부끄러버라...

이야기가 농담처럼 진행되기는 하지만, 창훈은 인범에게 있어서 냉정한 세상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속 썩인 대가로 2주치 알바 비를 주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 인범에게 치명적인 일이다. 인범과 같이 연합하여 소동을 겪고 협박 당하기도 했지만, 고용인과 고용주 관계에서는 철저하게 권력을 행사한다.

9. 기호의 부모

기호 아버지는 은퇴 조폭. 나름 아직 심부름 시킬만한 사적 네트워크는 있는 편이다. 희망 없는 삶을 도박의 흥분으로 이어가면서 어머니를 학대하는 아버지는 기호에게는 지옥이었을 것이다. 만근(기호 아버지, 지대한 분)은 주먹 쓰는 아들이 자기 같아 좋기보다는 지긋지긋했을 것이고.

지대한 씨는 <올드 보이>와 <파이란> 시절부터 인상 깊은 배우여서, 이번에 반갑게 작업했다. 지대한 씨는 아내와 자식에게 소외 당한 가장의 애환을 표현하고픈 포부가 있으셨지만, 이 드라마에선 그보다는 악역에 충실해주셔야 했기에 그 공간을 드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필요한 부분을 강렬하게 잘 표현해 주셨다.

이칸희 씨도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사실 이 작품은 <액자가 된 소녀>와는 대조적으로 과거의 인연을 바탕으로 된 캐스팅이 전혀 없다. 전부 새로 만난 사람들이다. 이칸희 씨 캐스팅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에필로그에서의 밝고 깊은 미소였다. 그리고 이칸희 선배는 내가 보고 싶은 미소를 가득 보여주셨다.

이 같은 한국적 미인에겐 주로 ‘단아하고 답답한’ 배역이 많이 오기 마련이라, 경찰서 씬처럼 막 질러대는 연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인지 그 씬을 무척 즐기셨다. (아, 연속극에 탑승하신 적이 있다면 감정 폭발의 기회는 많았겠구나.......)

경찰서 씬을 마치고 소동의 주인공들과

이칸희 선배는 <밀회>에서 유아인 어머니 역이었다. 3회에 퇴장하지만 참 슬픈 인상을 남긴 배역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태환과 이칸희 선배 모두 <밀회>에서 유아인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10. 그리고 다른 사람들.

박대기 기자는 내 후배 기자 중에서 가장 먼저 강제로 ‘셀럽’이 되어버린 일명 ‘눈사람 기자’다. 소재에 대한 깊은 공감을 보여주며 까메오를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현장에서 스태프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출연자였다.


고퀄 까메오 박대기 기자님

프랑스 면접관 역의 루시도 씬에 대한 이해(흑채에 대한 이해랄까...)를 바탕으로 낄낄거리며 자기 역할을 해주었다. 드라마에서 불어를 써먹고 싶은 욕심을 처음 채워준 씬이다. 같이 있던 대머리 면접관 역의 이우신 씨 역시 감사하다. ‘대머리’를 과장하는 컷을 요구해야 하는데, 뭐라 말하기 어려워 머뭇거릴 때, 먼저 나서서 ‘이거 찍으셔야죠’라고 말을 건네 주셨다.


모텔 아줌마의 땡땡이 의상은 그 배역을 맡은 김미경 씨의 개인 의상이다. 모텔방에서 인범이 갑자기 아줌마를 끌어안는 즉흥 연기를 시행하자, 좋고도 민구스런 표정의 즉흥 리액션으로 화답하여 촬영장이 빵 터졌다.


기호 아버지의 후배 조폭 중 탈모가 진행된 덩치 역이었던 진모 씨의 경우, 나름 본인의 탈모를 지적하는 걸 짜증내는 남성 일반을 대표하는 역으로 짧은 즉흥을 만들어 넣었다. 보고 나서 그 지점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그 외에도 맛깔나게 사투리를 구사했던 경찰 송하림 씨, 성형외과 의사 역으로 출연한 웃찾사 출신 개그맨 겸 연기자 김늘메 씨 역시 극에 양념을 더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