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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세월호 1000일을 맞이하여.

by 행복한 이민자


보는 내내 단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모두 살아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너의 이름은’의 밝고 경쾌한 전반부를 지나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상처가 묵직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작품에 ‘지진’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재난’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이자, ‘어땠으면 좋겠어...’라는 염원을 다룬 원망충족이다. 그리고 재난에 대처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 그리고 이야기를 통한 원망충족은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끝나지 않은 그 이름, 세월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여전히 밝고 경쾌하며 대중적이다. 여기서 대중적이라 함은 글쎄, 가르치려 들지도 않고, 주제에만 복속된 재미없는 씬을 늘어 놓지도 않고, 옳고 그름에 대한 구호나 주장을 외치지도 않고, 호흡이 느려 지루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사실이었던 재난을 이야기로 다루는 데에 있어서 그만큼의 진중한 태도가 필요하기에, ‘큰 자본을 필요로 하는 대중영화’로서 이같은 대중성을 지켜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달디 달게 재미있다가,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 되고야 만다. 그리고 그게 무척 자기 답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감각의 포착과 재현, 전시에 능한 애니메이션 연출자다. 섬세한 세상의 구석 구석을 감각을 열고 받아들이게 하는 사람. 하지만 이야기 측면은 그리 중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연출에게 중요한 건 좋은 갈등이 있는 극이라기 보다는 감각을 신선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바탕이다. 종종 애니메이션에게 ‘속는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이건 카메라로 찍는 것과는 다른 애니메이션만의 ‘재현의 쾌감’이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실사로 찍는다면 전혀 달리 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에서는 이야기 자체만의 힘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의 감흥에 최적화된 이야기를 만들었겠지 싶었다.


그런데 <너의 이름은>은 지독히도 절실한 마음 속으로 들어간다. 재난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 그리고 모든 걸 되돌리고 싶은 마음, 사람 하나하나를 잊지 않으려는 간절함. 재난에 맞서 사람으로서의 최선이 희망을 이어갈 때, 크나큰 위로를 얻는다.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데뷔작을 만들 때. 그리고 더듬더듬 찾아간 대답도 비슷했다. 일본 연극 <배수의 고도>에서도 느꼈듯, 일본인들이 대지진에서 받은 트라우마는 우리 세월호의 트라우마와 흡사하다. 그러나 대지진보다 훨씬 음험한 인재였던 세월호는 잊히지 않을 상처이자 다짐으로 이야기 속에 늘 되살아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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