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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Feb 02. 2020

[소설] 산 자들

장강명 연작소설

차갑게 이해한 후에


르포문학의 느낌을 준다. 생생한 인터뷰를 살짝만 재구성한 연작 단편 같지만, 작가의 말처럼 상당히 많은 부분이 소설로 재구성되었음 또한 느낄 수 있다. 열 편의 단편은 모두 신랄하게 생각을 뒤집어 놓는다.


1부 자르기.


알바생 자르기 - 알바생을 자르며 동정하다 되치기 당하는 정규직 이야기


철저하게 정규직의 관점에서 알바생을 기록하고 있다. 업무와 근태에 대한 평가와 인간적인 정과 배려를 같이 하고 있는 정규직 선임의 모습은 상식적이다. 그런데 알바생을 잘랐으면 하는 사장의 은근한 압력과 눈에 밟히는 알바생의 불성실에 결국 해고를 추진하는데, 이 시점에서 안일하게 대화로 상황을 이끌어가던 선임은 온갖 법률로 무장한 알바생으로부터 최대한의 되치기를 당하게 된다. 화자의 관점으로 보면 ‘반성도 모르고 은혜도 모르는’ 알바생인 셈인데, 정규직 선임의 관점에서 한 발 떨어져 보면 과연 그 알바생에게는 처음부터 어느 정도의 기회가 더 있었으며, 달리 어떻게 다르게 대처하는 게 알바생 스스로를 위해서 좋았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별 다른 관계의 가능성이 있었던 시스템인가.


마지막 문단에서 딱 한 번, 알바생의 관점으로 기술되는데, 이 부분이 통일성을 해친다고 볼 수도 있고, 해석의 가능성을 확 넓혀준다고도 할 수 있다. 결국 작가의 선택을 지지하게 되는데, 이게 ‘치숙’(채만식) 처럼 화자를 풍자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자가 안일한 건 사실이지만 대상화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질 법한 안일한 수준으로 그려져 있다. 알바생 역시 ‘약해서 착한’ 캐릭터에서 한 참 벗어나 있는데, 사실 주인공이 ‘약해서 착하리라’ 지레짐작하고 온정을 베푼 데서 당혹감과 배신감이 커진다. 인간관계엔 호혜법칙이 적용되기 마련인데, 이 알바생은 인간 관계에서도 고용 관계에서도 철저하게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이득을 취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면 알바생에게 보다 다은 대우나 미래가 가능했을까? 어차피 불가능할 거라면 이 알바생의 선택이 옳았던 것 아닌가. 소설의 마지막 문단은 알바생이 자신에게 유리한 모든 대처를 다 끌어모은 다음에도 별로 나아질 게 없는 삶의 조건 앞에서 다음 걸음을 고민해야 함을 보여준다.


  사무실 만의 일이 아니다. 드라마 촬영 현장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전반적인 개선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다양한 이해 관계 속에서, 또 여러 자의적인 원칙 속에서, 일이 좌초되거나 관계가 틀어지거나 마음이 다칠 일이 계속 생긴다. 현장의 관계와 마음의 태도 등에 대한 총체적 재점검이 필요하다.



대기발령 - 구조조정으로 퇴직당하는 사례에 대하여.

여기선 정규직 간에 입장과 희비가 갈리는 경우. ‘우리’에서 ‘저들’이 되고, 다시 ‘내’가 되는 순서에서 허공에 사라지는 서로의 말, 말, 말.

사회와 공동체의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성실한 사람으로 지내다가, 그 울타리가 열리는 순간 생기는 회색지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헛갈린다. 이건 생각의 전제를 다 흔드는 일이다.


공장 밖에서 - 쌍용차 사태를 모티브로 한 노사 대립의 재구성

세 편의 경우 중에 가장 격렬한 경우. 현실에서 너무 격렬한 고통이 남은 경우라 오히려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해본 적이 없다. 어느 집회 현장에서나 언어의 인플레이션이 있다. ‘결사투쟁’. 죽음을 결의하다. 그러나 집회는 결국 협상과 타협을 통한 공존과 생존을 모색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인플레이션은 종종 현실의 죽음이 되어 돌아온다. 파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브레이크는 어떻게 고장나는가.


2부 싸우기


현수동 빵집 삼국지 - 좁은 지역에서 경쟁하게 된 세 개의 마을 빵집 이야기

빵집 운영이 이렇게 힘든 지 몰랐다. 하긴 어떤 자영업이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나 무얼 위한 경쟁인가를 생각함과 동시에, 또 개인은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 사는 집 - 재건축 지역에 마지막까지 남은 철거민 이야기

철거민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오래된 파쇼 대 생존의 서사다. 뉴스가 아닌 이야기 속에서 당하는 사람에게 감정적 편을 들지 않기란 무척 어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파국까지 고립되어가는 철거민의 이야기를 소름 돋게 저며낸다. 딱히 죽도록 나쁜 놈 없이, 딱히 커다란 오판 없이, 사람의 시스템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


카메라 테스트 - 지역mbc아나운서 면접기

아직 마음 속 한 구석엔 취준생 정체성이 남아있다.  그 시절 생각이 많이 난다.


대외 활동의 신 - 지방대 학생의 취업기

대학 졸업 전후의 희비 교차와 마음 속 찬 바람이 생각난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은 지금이라고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는 나만의 자각.


3부 버티기


모두, 친절하다 - ‘친절한’ 서비스의 홍수 속에서 극도의 불쾌를 겪는 날들의 기록.

켄 로치의 <미안해요, 리키>의 관점이 다른 가벼운 버전. 친절한 불쾌라는 아이러니에 집중한 글이다. 친절을 바탕으로 호객하지만 책임에 있어서는 극도로 발뺌을 하는 세상에선 인간적 관계를 거세한 친절은 종종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여기에서도 관계에 임하는 적절한 태도를 발견하는 일이 계속 숙제가 될 것이다. 타인에게도, 내 자신에게도.


음악의 가격 - 이 단편의 작가가 인터뷰한 음악가와 대화를 기록한 형식의 메타픽션

가장 르포적인 글이었다. 르포 끝에 튀어나오는 잉베이 맘스틴에 눈을 뜬 청소년 이야기에 맘이 설렐 게 뭐람.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 - 사립고 급식 비리를 학생의 관점으로.

작가는 ‘이해하되 편들지 않는’ 스탠스를 취하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피해자에 대해서, 혹은 정의감에 대해서도 차갑게 접근하는 느낌을 받는다. 덕분에, 차갑게 접근하려는 관점을 무의식중에 피하고 보려고 하는 통에 차분히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읽게 되어 좋다.


 옳고 그름과 정의감에 대한 감각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점검하고 조율해야 하는 감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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