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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이민자 Feb 02. 2020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셀린 시아마 연출 / 아델 하에넬, 노에미 메를랑, 루아나 바야미


사극

사극의 목표는 역사의 충실한 재현이 아니기에, 여러 거짓말이 그냥 허용되고는 한다. 화려한 의상, 양식적 말투. 한국 사극은 하나의 관습적 장르다. 그런데 그 관습은 무얼 추구하기 위해서일까? 왕조 사극을 현대 정치의 은유로 두기에도, 여성 캐릭터를 펼쳐내기에도, 사극은 가능성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제약으로 기능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이 제약을 역 이용하여 창의적 도전을 할 수는 없을까.


고요와 고독.


이 영화가 포착하는 과거의 핵심이다. 18세기 프랑스 브르타뉴가 배경. 시골 저택의 모녀에게는 대화를 나눌 상대도, 대화를 나눌 일도 많지 않다. 고요와 고독의 시간이 끝없이 펼쳐진다. 엘로이즈는 세상에 대해서는 현재의 우리보다 무지하지만, 자기 자신의 운명과 존재에 대해서는 현재의 우리보다 훨씬 긴 시간을 집중하여 숙고했을 것이다. 그게 이 영화가 포착하는 과거 인물의 정체성이다. 이 영화는 집요하리만치 음악을 쓰지 않는다. 대신 모닥불 타오르는 소리, 캔버스를 스치는 목탄 소리,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 같은 것들이 귀를 가득 채운다. 자연 앞에 선, 드레스를 차려입은 인간. 문명과 야만의 격차를 가늠하며 자신의 존재를 곱씹는 여성들.


어머니가 집을 비운 며칠간, 그들만의 사랑과 평등과 존중의 세계를 만들어낸 세 사람. 현대에서 평범한 대화일 수 있는 것들이 엄청난 자의식의 표현이자 시대에 대한 도전이 된다. 아직 미래를 모르는 눈빛으로, 고요와 고독 속에서.


멜로

대화와 시선만으로도 관능적이다. 씬 마다 씬의 리듬에 빨려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매 장면이 아름다운 유화같았다.  빛과 촛불의 활용도 인상적이다. 초상화가 바뀌어가는 과정 또한 시퀀스의 리듬감을 만든다. 음악만 (거의) 없다 뿐이지, 아니 음악이 없기에 더욱 모든 것의 음악성이 부각되며 둘의 감정과 눈빛에 집중하게 만든다. 과잉의 현대에선 낯선 경험이다.


여성

이토록 말끔하게 남성의 시각을 소거하고, 이토록 깊게 사람의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노출이나 장면과 무관하게 선정적인 느낌이 없을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헛소리에 귀를 닫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에 맹렬히 집중하는 여성. 나의 산만함이 부끄러워지는 경험.


용기

어떻게 이런 연출적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고요와 고독 속에서 대화를 청하는 자신감. 주제와 세부사항, 전체 형식에 대한 깊은 인지와 강력한 자신감 없이는 만들 수 없는 영화다. 관습적인 장면이나 씬까지도 독창적이고 창의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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