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0. 프롤로그
60일 지정생존자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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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0일, 합천 청와대 세트장.
<60일, 지정생존자> 마지막 본 촬영.
박무진이 붉은 중앙 계단을 걸어내려온다. 그에게 주어진 60일이 끝났다. 1층에서 기다리던 참모진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고 선다. 잠시 권력을 대리하는 동안 그는 모두와 마음을 나누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한다. 별 다른 말을 보탤 게 없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마지막회 박무진이 청와대를 떠나는 장면을 촬영했다. 리허설 진행하는데,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다들 민망해하며 놀란다. 진짜 눈물이 나네, 하면서. 나도 마찬가지였다. 반 년간의 촬영이 끝나는 날이었으니까. 모두 각자의 주마등으로 지난 시간을 되새긴다. 아직 다른 씬이 남았지만 그 자리의 모두 약간 감정이 올라와 있었다. 지진희 선배는 실없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밝혀 본다. 그래도, 테이크를 반복할 때마다 매번 눈시울이 붉어지고 만다. 그리고 모두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한다. 무진에게도 촬영팀에게도 시청자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전하듯.
안세영 민정수석 역의 이도엽 선배가 촬영이 시작되기 전, 연출자가 무진처럼 계단을 내려오면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도 메이킹에 남기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다. 제안은 진지했지만 난 감사드리며 웃고 넘어간다. 그 말씀만으로도, 나는 가장 정중하게 이 사람들과 헤어지는 상상을 한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던 나의 팀과.
곧 <60일, 지정생존자> 첫 방송 1주년이다. 하지만 같이 모여 담소를 나눌 수 있는 2020년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대신, 몇 가지 기록을 남겨 본다. 더 잊기 전에, 더 잊혀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