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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아저씨 Mar 12. 2020

서울시장은 공원 만들기를 좋아한다

건설현장 에피소드 # 1

 

2004년에서 2005년까지 성수동 인근 서울숲 공원 조성 공사를 할 당시에 겪었던 에피소드.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 시절로, 15년이란 시간도 넘어 흘러갔으니 이제는 글로 써도 되지 않을까 싶다.    

 

1990년대 중반 조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친환경 및 녹색서울이 강조되면서 서울시장재임 시에  반드시  해야 하는 치적사업 중 하나가 서울 도심에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여의도 공원


조순 공원이라 불리는 여의도공원 개장(1999년)을 시작으로, 고건 시장 재임 시에는 난지도 쓰레기 적치장을 시민공원으로 탈바꿈시킨 월드컵공원(2002년)이 시민들의 도심 휴식처로 많은 각광을 받고 있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우리나라 대표 건설사의 CEO를 지낸  후임 이명박 서울시장으로서는 당연히 전임 시장들보다 더 획기적인 서울시 공원사업을 기획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월드컵공원 겨울풍경


그렇게 해서  기획된 대표적인 공약이,

당시 도심을 관통하는 흉물(?)이었던 삼일고가도로를 철거한 후  청계천 수로를 복원하여 도심 수변공원을 조성하고,

뚝성 경마장과 그 일대를 대규모의 서울숲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었다.


 시장 당선 이후 서울숲 공원의 핵심사업계획이 수립되었다.


성수동 인근 경마장과 뚝섬 대중골프장을 뉴욕의 센트럴공원과 같은 대규모 시민공원으로 탈바꿈시키고,

뚝섬 정수장 내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청계천 수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수원 처로 사용을 하기,

그리고 한강변 공원과 서울숲을 시민들이 도보로 접근할 수 있도록 직접 연결하는 것이 공원의 핵심 사업이었다.   


그 이후 오세훈 시장의 한강르네상스(2010년) 및 북서울 꿈의 숲(2009년) 공원사업, 그리고 최근 박원순 시장의 서울역  고가도로공원 공사가 지금까지 서울시장들이 추진했던 대표적인 공원사업들이다.   

  

한강 세빛둥둥섬 _ 한강르네상스 사업


서울숲 공원 공사는 전체 부지 미처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2004년 중반 공사를 착공하였다.


착공 후 2005년 어린이날 이전 개장을 목표로 초돌관 공사를 시행하다 보니, 해결해야 할 난관들이 도처에 지뢰밭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시유지에 있는 무허가 공장 이주 및 철거,

성수대교 경비초소 신축 및 이전,

30만 평의 부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십 동의 소규모 건물(화장실, 관리사무소, 휴게소, 나비온실, 레스토랑, 생태학습원, 인근 학교 철거 및 증축 등) 짓기,

수목 이식 부지 확보,

공원 공사장 주변 아파트의 집단 민원과 몸싸움,

도로점용 및 굴착 인허가 기간을 고려 시 턱없이 짧은 공기 등등등.


서울숲 공원 나비정원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서울시장이 공약한 역점사업이다 보니 관련부서와 업무협조는 다른 건설공사에 비해 다소 수월했지만, 워낙 부지가 넓고 공사기간이 짧아 매일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닥치는 대로 해결해가며 공사에 매진했다.


그러다 보니 준공 때까지 직원들 대부분이 휴일도 거의 없이 일 년 동안 일을 해야만 했었다.

    

30만 평이 넘는 부지를  매일 끝에서 끝까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공사를 하다 보면, 파김치가 된 채로 퇴근하여 자리에 눕자마자 깊은 잠에 들기 일쑤였다.


서울숲 호수에서 바라본 전경




그러던  어느 날.


평상시처럼 아침 여섯 시 반경 출근을 했는데 뚝성 정수장 측에서 관리실로 긴급히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알다시피 뚝섬정수장은 시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는 시설물이 있는 지역으로  일반인이 임의로 들어갈 수 없는 외부인 통제구역이었다.     


그렇지만 정수장 내부 일부 구간을 리모델링하여 휴게소 및 화장실 그리고 온실 만든 후, 서울숲 공원으로 개방할 예정이었으므로 작업자들이나 장비들이 사전 허가를 받아 수시로 출입을 하곤 했었다.   


뚝섬 정수장

   

경비실을 거쳐 정수장 본관 건물 수질 관리실에 들어서자마자, "정수장 내부 물탱크의 수질오염으로 서울시내 일부 지역의 수돗물 공급을 중단하였다"라고 담당공무원이 통보하며 샘플로 채취한 수질의 상태를 보여주었다.

    

육안상으로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지만, 수질분석 결과 이물질이 들어가서 음용으로 부적합 판정이 났다는 것이었다.     


정수장 측 주장으로는, 건설사에서 수돗물 저장 물탱크 위에서 가끔씩 장비 이동 및 공사를 했고, 그로 인해 지하에 있는 물탱크 상부 구조체에 균열이 발생을 했다.


리고 어젯밤 내린  빗물이 균열을 통해 물탱크 내부로 침투되어 수질이 오염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수장 측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을 했다.


한강수변공원에서 서울숲으로 들어가는 육교에서 바라본 전경


땅속 1미터 이상의  깊이에 묻혀있는 콘크리트 물탱크 상부구조물이 1톤 정도 무게가 나가는 공사용 장비가 이동을 했다고 균열이 생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설령 크랙이 났다고 해도 슬래브 상부에는 방수층이 있으므로 빗물이 땅속에 묻혀있는 물탱크 내부로 침투되어 물을 오염시키는 일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히 주장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물탱크 한 곳은 오염이 되어 사용할 수 없었지만, 정수장 측에서 신속히 조치를 취하여 서울시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데는 차질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물공급에 차질이 발생해 언론의 뉴스거리가 되었다면 그 이후 발생할 일들은 상상조차 하기 조차도 끔찍했다.


서울숲과 뚝섬 정수장사이 잔디마당


서로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 후, 양자가 최종적으로 합의를 했다.


물탱크 내부의 물을 전량 빼고 나서 내부로 들어가 구조물의 상태를 양측이 같이 확인하기로 협의를 하였다.


어치피 식수로 부적합 판정을 받은 물은 배수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날부터 탱크 내부에 있는 물을 배수시킨 다음, 정수장 측 직원과  건설사 직원이 물탱크 내부로 들어가 구조물의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설마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그다음 날 장화 옷을 입고 나와 정수장 직원들이 물탱크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5만여 톤의 수돗물을 저장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보니 크기도 엄청났다.


더구나 5미터 정도의 간격마다 칸막이 벽이 시공되어있어 “리을”자 형태로 구불구불 걸어 다녀야 했다.


약 7미터 높이의 천정을 대형 플래시로 비쳐가며 콘크리트 구조물의 천정 상태를 점검하다 보니 목덜미도 많이 아팠다.


더구나 무릎까지 물이 차있는 상태에서 걸어서인지 지하 물탱크 내부였지만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도 했다.    

 

구조물에 누수의 흔적이 확인될 경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하는 결과에 대한 걱정까지 하고 있었으니 몸과 마음 모두가 피곤한 상황이었다.


2시간 정도 정수장 물탱크 거의 끝 지점까지 꼼꼼히 살펴가며 걸어가는 동안 다행히 특별한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속으로 "다행이다"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찰나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서울숲 내부전경

 

정수장 내부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조사하는 사람들의 숨소리와 물길을 헤치며 걸어가는 소리밖에 없어야 했다.

 

모두들 긴장하며 물 떨어지는 곳을 플래시로 추적한 결과 물탱크 상부 코너 벽체 부위에서 200밀리 정도의 파이프가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콘크리트 벽체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할 곳에서 발견된 파이프는 한순간 나의 숨을 막히게 했고, 정수장 측 직원들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이 "그럼 그렇지!!" 하면서 반기는 표정이었다.   

  

물탱크 밖으로  나와서 확인 결과, 정수장 휀스와 인접해 있는 서울숲 내부 우수 집수정 파이프관을 우수관이 아닌 정수장 물탱크 벽체에 잘못 연결시켜 놓았던 것이었다.

 

서울숲 관리사무소 코로나예방 캠페인

    

정수장 물탱크 벽체는 많은 양의 식수를 저장하는 곳이므로 콘크리트 벽체 두께도 두껍고 큰 규격의 철근이 들어가 있어 일반 작은 기구로는 잘 뚫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경험이 있는 작업자라면 응당 실수를 하지 않았을 작업이었지만, 확인 결과 공사 경험이 거의 없는 근로자가 반장의 지시에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충실(?)하게 파이프를 연결한 것이 그날의 대참사를 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파이프 접속 후 당일 밤에 하필 많은 비가 내렸고, 빗물이 집수정을 거쳐 PVC관을 타고 정수장 물탱크 안으로 꾸준히 흘러들어 갔던 것이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더 이상 여기서 언급할 필요가 없는 듯하다.     


외부인 통제구역에서 벌어진 일들이라 많은 사람들의 책임이 얽혀 있는 관계로 문제 해결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고, 신속하게 긴밀한 협의가 진행되었다.  

   

말은 협의였지만 시공사의 입장에서는 거의 일방적으로 정수장 측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서울숲 내부 둘레길

 

배수한 전체 물값 보상은 물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배수한 후 물탱크 청소 및 보수비를 추가로 배상했다.


통제구역이라 건설사에서 직접 작업반을 고용해서 청소 및 보수를 할 수가 없어 정수장 측에서 주장하는 비용 전액을 지정업체에 지불하고 난 후에야 가까스로 사태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지금은 사슴이 뛰어노는 자연 친화공원으로 완전히 탈바꿈되어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시민공원으로서의 역할을 어느 공원보다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서울숲 공원".


시공참여자 기념비


하지만 나에게는 사건 발생일로부터 문제 해결할 때까지 보름 정도의 기간 동안, 정말 긴박하고 초조했던 기억을 떠 올리게 하는 공사현장이었다.


여러모로 힘들었던 기억이 많은 현장이지만, 개장 이후 공원에서 편안하게 여가를 즐기는 시민들을 볼 때면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네!" 하며 나름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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