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 아저씨 Apr 06. 2024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2024년 2월 27일.

아침 일찍 할아버지, 할머니가 서울 딸네 집으로 출동을 했다.

육아에 지친 딸 구하기 미션이다.



전날부터 딸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토하기도 하고 비실비실 했다고 한다.

병원에 들러 약을 처방받고 회복을 위해 링거를 맞아야 했지만 19개월이 갓 지난 손녀가 있어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고 했다.


마지못해 딸이 아내에게 SOS를 보냈지만 집사람도 선약으로 서울에서 점심모임 중이었다.

자리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는지 결국 아내가 나에게 연락을 했다.

난 그날 서울에서 점심, 저녁  연이은 모임이 있었다.

점심 먹고 빈 시간에 딸 집에 가서 손녀를 돌 봐 달라는 요청이었다.

어차피 점심 이후 특별히 할 일이 없던 터라 그렇게 하겠다고 허락을 하고 친구들과 식사를 마치고 답십리에 있는 딸네 아파트로 갔다.



아파트에 도착하니 딸은 초췌한 모습으로 병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외손녀는 에너자이저의 기운을 뿜뿜 발산하며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딸이 병원에 간 사이에 손녀가 울고 떼를 쓰면 어쩌나? 하고 걱정은 되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처음으로  와 외손녀  단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외손녀는 크게 보채지 않고 집안에서 이것저것 놀이를 하며 잘 놀았다.

나의 눈은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외손녀의 뒷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행여나 넘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갔던 딸이 두 시간쯤 지나 돌아왔다.

딩동 하는 초인종소리에 외손녀는 부리나케 현관으로 달려가 엄마를 맞이했다.

별 탈없이 잘 노는 듯해도 엄마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링거를 맞고 나서 컨디션이 나아졌다는 딸의 말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잠깐 동안  돌봄의 시간이었지만 외손녀와 같이 있다 보면 늘 내가 먼저 지쳐 쓰러진다.

다행히 저녁모임시간까지 조금 여유가 있어 딸에게 외손녀를 맡기고 낮잠을 잤다.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친구들과의 저녁모임자리에 들렀다가 양평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씻고 쉬려고 하는데 사위로부터 전화가 왔다.

딸의 몸 상태가 내일 외손녀를 혼자서 돌보기에는 무리인  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나에게 내일 하루 더 외손녀를 돌 봐 달라는 부탁이었다.

아내는 내일도 선약이 있어 혼자 서울로 가야 될 형편이었다.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내일 약속을 취소하고 아침 일찍 같이 가자고 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외손녀와 놀아주기에 외할아버지보다는 외할머니가 더 나은 상대였다.

하루쯤은 육아에 지친 딸의 심신을 달래주자는 부모의 심정으로 기쁘게 달려갔다.



외손녀를 번갈아서 돌보는 동안 딸은 오랜만에 낮잠도 푹 자고  점심으로 맛난 어묵에 꼬마김밥도 사서 먹었다.

딸의 원기회복을 위해 저녁에는 토종닭 백숙을 먹었다.

사위가 회사일로 늦게 온다고 해 밤늦게까지 외손녀와 같이 딸네 집에서 놀았다.

하루를 쉰다고 해서 딸의 컨디션이 모두 회복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만큼은 딸과 외손녀 모두 즐겁고 평안한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프리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만 부모의 정성과 힘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내가 나서 자란 60년대 시절만 해도 아이는 부모와 함께 동네 사람들이 같이 키웠다.

나는 옆집 아줌마와 동네 누나들이 다 업어 키웠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어찌 나만 그랬을까?

그 시절  부모님들의 세대는 먹고살기에 바빠 아기를 돌 볼시간이 누구나 부족했을 것이다.

바쁜 이웃을 대신해 조금이라도 손이 덜 바쁜 사람이 아기들과 어린애들을 품앗이 개념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돌 봐줬던 것이다.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장 보러 갈 때나 볼 일이 있으면 이웃집이나 근처 친척집에 아기를 맡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육아에 대한 부담이 지금보다  오히려 작았고 출산율도 높았다.

세계 최저인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국가에서 여러 가지 정책으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 아이들에게 이웃이 했던 돌봄의 몫을 국가가 제대로 다할 수 있을 때 지금 세대의 젊은 부부들이 마음 놓고 2세를 낳고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자식들에게 반드시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할 수 없는 시절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과거보다 결혼 연령도 늦어지고 맞벌이를 하는 부모들 혼자 만의 힘으로 육아를 감당하기 힘들다 보니 다른 삶의 선택권을 생각하는 젊은 부모들이 많아진 것이다.

각자 삶의 또 다른 만족을  위해 인간의 본성인 "종족 보존의 본능"을 뛰어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손녀를 낳아 건강하고 예쁘게 키우는 딸 부부가 고맙다.


큰 힘이 되진 않겠지만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언제든지 달려가는 짱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즐겁고 기쁘다.


작가의 이전글 양평살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