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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아저씨 Aug 18. 2024

어머니에 대한 단상 - 4

할머니가 남겨 준 유산 - 종이배 접기


날씨가 무덥다 못해 뜨겁다.

낮에 햇볕을 쐬며 바깥에 나가는 것이 두렵게 느껴진다.

38년 전 열사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에서 근무할 당시의 땡볕도 이렇게 따갑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마솥 더위란 말이 요즘 날씨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일산에 사는 아들부부가 주말에 집에 다녀 갔다.

며칠 전 온다고 하기에 굳이 오겠다면 아침 일찍 와서 밤늦게 가라고 했다.

주말 특히 토요일에는 양평까지 통행량이 많아 낮에는 길이 많이 막히기 때문이었다.


8월 셋째 주 토요일,

꿀 맛 같은 아침잠을 포기하고 오전 7시경 일산을 출발한다고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오는 아들 내외를 위해 아내는 아침 일찍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출가해서 따로 살다 보면 자식도 이젠 손님이나 마찬가지다.

"손님은 왕"이니 최선을 다해야 했다.


아침은 간편식으로 아내가 손수 만든 또띠야 피자를,

점심은 전문식당에서 돼지 목살구이 그리고 저녁은 처갓집 동네인 강진만에서 공수해 온 낙지 연포탕으로 정했다.


아내가 손수 만든 또띠야 피자


8시 반 경 도착을 해서 아침 식사로는 다소 화려하고 맛난 또띠야 피자를 먹고 난 후 아들이 수저받침 냅킨으로 뭔가를 꼬깃꼬깃 접고 있었다.


뭘 하는 거냐? 고  물어보니 종이배를 접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참 동 접고 펴고 하다가 냅킨으로는 잘 접히지 않는지 종이가 있냐고 물어 왔다.

리포트패드를 찢은 종이로 다시 종이접기를 시작하여 드디어 종이배를 탄생시켰다.


아들이 만든 종이배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양의 종이배였다.

아내와 나 그리고 며느리도 처음 본 종이배라는 것이었다.

한 때는 나도 여러  종류의 종이접기를 해 봤었다.

학, 개구리, 공, 배. 글러브 등 여러 모양을 접어 봤지만 이런 모양의 배는 처음이었다.

공간도 넓고 물에 띄우기에도 최적의 형태였다.


일반적인 돛단배 형식의 종이접기


새롭고 독특한 모양의 종이배를 보며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이어진 아들의 말이었다.


"부산에 살 때 안동 할머니가 오셔서 종이배 접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


평생 자식들을 위해 일하는 것 외에 다른 뭔가를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그 말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우리 4남매가 결혼한 후 조카들과 아들 그리고 딸을 자주 돌보기는 하셨지만 종이접기를 손주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해 보지 못했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선수촌 아파트 건설을 위해 1999년 말부터 3년간 가족들이 해운대 신시가지로 이사를 가서 살았었다.

그 당시 어머님이 한두 번 부산에 들러 몇 주를 지내신 적이 있었다.

75세셨던 어머니는 손주들이 학교나 학원에 가고 나면 집에서 할 일이 없으셔서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학원 마치는 시간이 되면 학원 앞으로 가서 손주들을 데려왔고 그때가 되어서야 어머니 얼굴에는 비로소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손주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역할을 바꿔가며 받아 쓰기 놀이를 하는 것을 가끔씩 보긴 했지만 종이배 접기를 가르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종이배 접기를 할 줄 알고 초등학교 1학년인 손자에게 그걸 가르쳤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2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할머니에게 배운 그대로 아들이 종이배를 접었다는 것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할머니의 유산이 대를 뛰어넘어 손자에게 전해진 느낌이 들었고 자주 보지 못한 할머니와 추억들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는 아들이 대견스러웠고 고맙기도 했다.



역사 이래로 언제나 그랬듯이 세대 간 소통부재와 단절이 항상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사회가 변화하면 생각도 바뀌기 마련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만큼은 기억하는 아들, 딸들이 되었으면 한다.




어머니!!!

나는 몰랐지만 어머니가 물려주신 유산을 손자가 잘 이어받았네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는 손자가 만든 종이배,

잘 간직하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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