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외손녀와 새해 첫나들이

남산 타워 투어

by 이야 아저씨


2025년 1월 3일 외손녀와 첫나들이가 예정되어 있었다.

외손녀가 다니는 어린이 집이 연말에 일주일간 겨울방학을 한다는 것이었다.

방학 동안 온종일 외손녀를 돌봐야 하는 것이다.

휴일은 딸 부부가 집에 있으니 상관없겠지만 평일이 문제였다.

다행히 사위가 연차휴가를 내 외손녀를 돌보고 1월 3일에는 나와 아내가 하루종일 외손녀를 책임지기로 했다.


이제 30개월이 되어 서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때때로 고집을 피울 때가 있어 외손녀와 하루를 보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집에서 원만(?)하게 보내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그날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했었다.


기온이 낮고 날씨가 쌀쌀해 외부활동은 어려울 것 같고, 백화점이나 아웃렛을 돌아다닐까? 하다가 남산타워를 가기로 결정했다.

아내는 남산 전망대를 한 번도 올라 가 본 적이 없었고 나도 대학생 때 가 봤으니 거의 40년 전이었다.



남산 하면 대표적으로 떠 오르는 음식, 왕돈가스를 점심식사로 먹고,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 정상에 도착한 다음, 엘리베이터로 남산타워 전망대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는 것이 그날의 일정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걷는 것을 최소화한 동선이었다.


다른 곳을 갈까? 고민도 했지만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을 외손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건 뼈아픈 나의 착각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은 해발 480미터 높이의 남산타워가 아니라 555미터인 잠실 롯데 타워라는 것을 다녀온 후에야 알게 되었다.


차에서 내려 잠깐씩 유모차로 이동할 때 외에는 대부분 실내라 날씨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듯했다.


딸 부부가 출근을 하고 셋이서 옷 단장을 마친 후 10시가 조금 지나 남산으로 출발했다.

외손녀도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첫나들이가 즐거웠는지 평소보다 말도 많고 표정도 밝아 보였다.

남산 순환도로에 도착하니 길 옆 식당에 차들이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서울에 온 지 43년이 넘었고 남산 왕돈가스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사실 은근한 기대감이 있었다.

손님이 많았던 식당을 놓치고 케이블카 탑승건물 근처 식당에 주차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TV를 보니 왕돈가스 크기가 엄청 크던데 2개를 시키면 양이 너무 많지 않을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먼저 식사 중인 손님들 음식을 보니 일반 돈가스집 양보다 오히려 적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언론매체의 식당홍보는 과장되고 믿을게 못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허기를 반찬삼아 식사를 마치고 매표소에서 왕복티켓을 구매한 후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아뿔싸!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유모차가 갈 수 있는 경사로가 보이지 않았다.

계단뿐인데 한두 단이 아니었다.

할 수없이 젊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유모차를 들어 올린 채로 힘겹게 승강장까지 가서 케이블카를 탈 수밖에 없었다.

유모차 무게도 만만치 않아 15Kg이 넘는 외손녀를 태우고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케이블카를 내려서도 탈때와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 겨우 남산 정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수없이 많은 자물쇠들이 겹겹이 매달려 있는 휀스를 지나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매 후 전망대 엘리베이터입구 표시판을 찾아갔다.


Oh, my god!!


건물 한층 높이의 계단이 보였다.

여기는 경사로가 있겠지?라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봤지만 어디에도 경사로는 없었다.




대한민국 수도이자 관광 일번지인 서울.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시민들의 휴식공원이자 서울의 대표관광지인 남산과 전망타워.


그곳에는 유모차가 필요한 아이들이나 노약자가 접근할 수 있는 시설들이 없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도저히 스스로 접근을 할 수 없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갑자기 부끄러운 마음이 들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민 낯을 적나라하게 보는 듯했다.

건축물 준공 시 장애인 시설물 설치확인이 기본인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건축물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건물을 지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가?


국민소득이나 국가의 경제규모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겠지만 아직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은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했구나!라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화를 내 봤자, 우리만 손해!"라는 생각에 내가 외손녀를 안고, 아내는 유모차를 들고 한 층을 내려와 즐거운(?) 마음으로 전망대 엘리베이터를 탔다.


전망대에 올라 20분 정도 서울 시내를 내려다본 후 올라갈 때의 과정을 다시 반복하며 차로 돌아왔다.



차를 타고 딸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외손녀는 천사처럼 잠이 들었다.

나들이로 낮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 듯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도 잠을 깨지 않아 한참을 차 안에 있다가 집으로 올라왔다.


집에 들어와 시계를 보니 오후 5시경.

한 시간 정도 후면 딸 내외가 퇴근을 한다.

잠에서 깬 외손녀도 기분이 좋은 것 같다.


"At last, Mission Complete!!"


의도치 않게 직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어 미안하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아직도 멀었구나!"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딸 부부 없이 외손녀와의 첫나들이, 추운 날씨에 예상치 못한 고생도 했지만 그래도 나와 아내에겐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또 다른 손주가 처음으로 뒤집기를 시도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온 날이기도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