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이야기 (2)

내게 더 이상 아파트는 없다.

by 이야 아저씨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향에서 너른 마당이 있는 한옥 집에 살았다.

그 마당은 늘 나와 동네 친구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우리 집은 친구들과 작당하는 모든 모의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그 후 대학에 입학을 하면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객지 생활이 처음이라 일 년 동안은 서울 외곽 개봉동에 있는 외삼촌집에서 학교를 다녔고 2학년 때 독립해서 신림동에서 자취를 하며 대학을 졸업했다.

건설회사에 입사해 중동 건설 붐 막바지에 열사의 땅인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가 2년 넘게 해외근무를 하고 회사생활 5년 차인 90년 5월에 아내와 결혼을 했다.


신혼살림은 단독 주택 2층 전셋집에서 시작했다.

집 뒤에 설치된 작은 철제 대문으로 들어가 가파르고 좁은 철계단을 올라 2층 현관에 가야 했고 겨울에는 구공탄을 갈러 지하 보일러실까지 내려가야 하는 불편한 집이었다.

주인집이 살고 있는 1층과는 동선이 겹치지 않아 그나마 2층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집이었다.

그늘이 지는 전용 테라스도 있어 의자에 앉아 동네 모습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다 장인 장모님이 갑자기 낙향을 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처갓집으로 들어가 주인행세를 하며 살았다.

홍재 맞았네!!(안동 사투리로 횡재했다는 의미)

천만의 말씀.

공짜로 살았던 건 아니다.

떳떳하게 전세금을 치르고 대학생인 처남과 같이 살았고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91년도에 일산 신도시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딸과 아들, 어린 아기 둘을 키우면서 아파트 계약금과 중도금을 마련하느라 3년 동안 아내와 같이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늘 빚에 허덕이며 쪼들리는 생활을 했지만 그나마 내 집마련을 했다는 만족감이 있었다.

마침내 94년 초 처음으로 내 집에 입주를 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여러 번 이사를 다녔지만 한 번도 아파트가 아닌 곳에 살아 본 적은 없었다.

32년 동안 그렇게 아파트에서 살아왔다.


나뿐 아니라 대한민국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아마 대부분 아파트에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2024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지어진 주택의 65.7%(1,297만 채)가 아파트라고 한다.

한채당 평균거주 인구가 2.6명 정도라고 하니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65% 이상 약 3천4백만 명의 인구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셈이다.

수도권 5개 신도시나 세종시를 비롯하여 새로 조성되는 신도시는 대부분 아파트로 채워져 아파트비율이 90%에 가깝다고 한다.

아파트뿐만이 아니다.

주택가격 폭등에 힘입어 주거용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주택, 생활용 숙박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아파트군에 사는 거주자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태어나서 자라고 또 새로운 가정을 대부분 아파트에서 시작하는 요즘 세대들은 아파트가 곧 삶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들에게 아파트가 없는 생활은 상상해 볼 수가 없다.

영끌을 해서라도 아파트 장만에 올인하게 되고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만나서 나누는 대화의 주된 관심사항은 대체로 두 가지다.

정치 아니면 부동산, 그중에서도 아파트.

정치에 대해서는 상대방의 눈치를 봐가며 서로 말을 아끼기도 하지만 아파트는 누구에게나 초미의 관심사다.

언론이나 인터넷 뉴스에는 부동산이나 아파트 관련 소식들이 항상 빠지지 않는다.

서민들은 상상조차 힘든 소식들을 매일 탑 뉴스로 장식하며 언론들조차 대놓고 국민들에게 부동산투자 대열에 참여하기를 종용한다.

부동산 투자로 수십억 아니 수백억의 수익을 올렸다는 연예인에 관한 뉴스는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또 누가 그렇게 궁금해하는지 모르겠다.

아파트 가격의 등락은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가 된다.

눈과 귀만 열려 있으면 우리나라 강남 아파트 시세는 누구나 알 수 있다.

최고가를 찍었다는 강남의 한 아파트가격은

최근 국민평형(전용면적 84 m2) 기준으로 40억을 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소득 상위 7% 이내인 연봉 1억을 버는 직장인이 돈 한 푼 안 쓰고 평생을 모아도 살 수없는 아파트가 된 것이다.


퇴직할 때까지 근무했던 직장이 건설회사였다.

그런 연유로 아파트는 나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사이가 되었다.

88년 올림픽 이후 소위 3저(저유가, 저금리, 저달러) 호황으로 서울 및 수도권의 주택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아파트가격이 폭등했다.

부동산 사기로 목숨을 잃거나 전세가격인상으로 거리에 나앉게 된 안타까운 사연들이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그 해 초 취임한 대통령으로서는 발등에 떨어진 뜨거운 불이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200만 호 주택을 짓는 수도권 5개 신도시 건설사업이었다.

7~80년대 중동 건설붐이 끝나며 몇 해 전부터 회사의 존망을 위협받던 건설사들은 국가 시책에 힘입어 아파트 사업에 전력투구를 하면서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전에는 사회기반시설과 관급 건축공사가 주된 매출요인이었다면 88년 이후부터는 아파트가 건설사의 주요 사업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해외에서 귀국한 88년 말 처음으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회사에 몸 담은 38년 동안 다양한 업무와 현장경험을 했지만 주요 업무를 꼽으라면 그래도 아파트 관련 사업이었다.

현장에 직접 근무하면서 준공을 한 아파트만 해도 일만 세대가 훌쩍 넘는다.

아파트 사업수주, 사업관리등 직, 간접적으로 참여한 세대수를 모두 합치면 족히 수만 세대가 넘을 것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아파트가 전국 대도시 곳곳에 지어졌고 현재도 지어지고 있다.

이만하면 아파트 전문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지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아파트에 관해서는 누구나 전문가를 자처하니 어디 마땅히 명함을 내 밀수도 없다.


아파트는 공동주택이라 관리사무소에서 통합관리를 하고 웬만한 불편사항은 전화 한 통이면 해결이 된다.

최근에는 단지 내에 산책, 수영, 골프연습, 헬스, 카페까지 있고 사우나시설 심지어 조식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아파트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언제부터인가 거주라는 본래의 목적을 뛰어넘어 부를 축척하는 수단, 신분을 나타내는 위치까지 차지하게 된 것이다.

사실 편의성이나 안전성을 위주로 본다면 아파트에 사는 것만큼 편한 곳이 드물다.

3단계의 검문(아파트단지 출입구, 동별 현관문, 세대 현관)을 통과해야 하고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으니 예전처럼 도둑을 걱정할 일도 없다.

집에서 지하 주차장으로 바로 내려가 차를 타고 외부로 나가니 개인 프라이버시가 보장되고 마음만 먹으면 이웃과 얼굴을 부딪칠 일도 없다.

이웃과의 관계를 효율적으로 단절시키는 시스템(층별, 세대별 전용 엘리베이터, 전용주차구역 등)이 많이 설치된 아파트가 고급아파트로 대접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결혼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아파트에서 살았고 건설회사에서 그것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면서 아내와 같이 생계를 꾸려 왔다.

이쯤 되면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파트와 친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의 대답은 단연코 No다.

나는 아파트가 싫다.

지금까지 좋아서 살았다기보다는 경제사정이나 편의성 때문에 아파트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래서 퇴직 이후 아파트를 벗어나기 위한 수순에 돌입했다.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 먼저 땅을 사고 집을 지을 구상에 들어갔다.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고 후 바로 집을 지으려고 했지만 뜻밖의 암초를 만나 수 없이 다른 아파트에 이삿짐을 풀었다.

언젠가는 집을 지을 수 있겠지라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 시점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원하는 아파트.

난 그래도 아파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들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거기에는 나만 느끼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개인적인 공간이 없는 아파트.


아파트에서는 모든 일들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거실, 부엌. 방으로 편의상 나눠져 있지만 한 공간 아래에서 단지 벽과 문으로 구획이 되어 있을 뿐이다.

아파트 공간의 중심은 거실이다.

부엌이나 모든 방들이 거실 주위로 배치되어 있다.

방문만 열면 서로의 동선이 마주치는 평면구조다.

동선의 중심에 있는 거실을 거쳐야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

그래서 거실에 앉아 있으면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 수 있다.

내 방에 있다고 해서 나만의 사적인 공간이 아니다.

조금 과장하면 거실에 있으면 방에 있는 가족들의 숨소리까지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방에 있어도 거실과 부엌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특별한 장치를 하지 않는 한 아무리 방문을 꼭 닫고 있어도 개인적인 여유를 가질 공간은 수가 없다.

한마디로 아파트는 거주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일체형 공간인 것이다.



반면 전통 한옥의 구조는 마당을 가운데나 앞에 두는 ㅁ 자나 ㄴ 자, ㅡ 자 구조가 대부분이다.

방이나 부엌 모든 곳이 작지만 서로 다른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방문을 열면 마당, 바로 외부의 자연공간과 마주하고 연결된다.

다른 방이나 부엌으로 가려면 문을 열고 나와 외부 공기를 쐬며 툇마루나 집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기단 위를 걸어서 가야 한다.

부엌도 별도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으니 음식 장만이나 설거지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부엌에서 어떤 요리를 해도 다른 방에 영향이 없다.



생선도 굽고 가마솥에 군불을 때며 육개장을 끓이고 무엇을 지지고 볶든 가족들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밥상에 올라 올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대만이 있을 뿐.

더운 여름에는 마당 한편에 화덕을 설치하여 오랫동안 불을 피우며 끓여야 하는 소고기 국이나 삼계탕을 하기도 했다.

물론 부엌에서 안방이나 대청마루까지 큰 쟁반으로 음식을 날라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겠지만 두 곳 사이에 간이 문이 있는 경우도 있었고 음식을 날라 줄 자식들이 많았을 때라 큰 불편함은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요즘 한옥이랍시고 지어 놓은 집들을 보면 외관은 한옥이지만 내부는 아파트 평면과 다를 바가 없다.

편의성과 단열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겠지만 좀 더 개인적인 공간을 분리할 수 있도록 고민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다.

아내에겐 맘껏 빵을 굽고 요리도 할 수 있는 공간, 나는 책도 읽고 악기도 퉁탕거리며 놀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 국민들 대부분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그런 공간을 마련해 줄 수가 없는 듯하다.

그것이 아파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다.



둘째,

살금살금 조심조심 아파트.


이미 사회적 이슈가 된 지 오래되었지만 뚜렷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아파트 세대 간, 층간 소음문제다.

소음이란 것이 구조체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라 그것이 어느 집에서 나는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 때도 있다.

공동주택에서는 에티켓을 지키며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다 내 마음 같지는 않다.

서로 조심하고 조금씩 배려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도 가끔씩 일어 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키우는 집은 늘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자식을 키워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이들은 걸음마를 배우고 나면 절대 곱게 걸어 다니는 법이 없다.

집안에서 놀 때면 뭐가 그리 바쁜지 늘 종종거리며 뛰어다닌다.

거실 바닥에 충격 방지 매트를 깔아 보긴 하지만 소음을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

뛰어다니지 말라고 매번 주의를 주고 야단을 쳐 봐도 그 순간뿐이다.

아이들을 둔 부모는 늘 아래층의 눈치를 보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그나마 사려 깊은 이웃을 만나면 다행이지만 성격이 예민한 사람을 만나면 이사까지 가는 일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층간 소음을 줄이기 위해 법령으로 소음에 대한 규제 기준도 마련하고 건설사마다 소음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을 하지만 단편적인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콘크리트 슬라브와 거실마감재 사이에 갖가지 재료를 조합해 시공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영원히 없는 걸까?

그럴 리가!!

아파트 층고 상향조정과 최소한의 건축비 추가만으로도 층간, 세대 간 소음을 줄일 수 있다고 확신을 한다.

현재 사고의 틀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아파트 소음문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콩콩거리며 집안에서 마음껏 다닐 수 있는 그런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도 대한민국에는 그런 아파트가 지어지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에게 조심만 강요해선 아파트 세대 간, 층간소음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셋째,

모든 것이 갖춰진 아파트.


"일 년을 입어도 십 년 된 듯한 옷, 십 년을 입어도 일 년 된 듯 한 옷" 이란 유명한 의류광고 카피가 있었다.

바로 입어도 오래된 옷처럼 편안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멋과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의류를 말하는 광고카피 덕에 유명세를 탄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 지어지는 K - 아파트를 한 문장으로 대체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입주를 하고 있는 아파트에 가 보면 새로 지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잘 꾸며져 있다.

입구에는 아름드리 장송들이 심어져 있고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은 실개천을 따라 단지 내 구석구석으로 흘러간다.

유명작가들의 예술작품이나 조형물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야외 박물관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수령 수백 년이 넘 고목나무가 영양제 주사를 맞으며 성황당의 수호신처럼 굳건(?) 히 서 있기도 하고 단지 내 실내 수영장이 있을 정도다.

다양한 커뮤니티시설을 경쟁적으로 설치하다 보니 단지 내에서 웬만한 일상활동과 운동은 다 할 수 있다.

세대 내부도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각종 생활가전은 기본이다.

거실과 주방벽에 대형 타일이 붙여져 있고 주방가구도 국산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을 정도다.

아주 오랫동안 잘 가꿔 온 아파트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내 눈엔 이 모든 것이 겉모습만 잘 꾸며진 외화내빈(外華內貧)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주차장 상부 얕은 토심에 수백 년이 넘은 고목나무와 거대한 낙락장송을 왜 아파트에 심어야 하는지 늘 의문이다.

고사를 막기 위해 영양제 주사 바늘이 나무마다 꽂혀 있는 모습을 보면 인공적으로 조성된 땅에서 뿌리를 정착하기 위해 애쓰는 고목들이 애처롭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아파트의 생명주기는 길어봐야 30 ~4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국내 아파트의 재건축 연한도 30년이다.

100년이 훌쩍 넘는 주택과 아파트가 수두룩한 유럽에 비해 사용연한이 너무 짧다.

고작해야 30년밖에 못 살고 다시 허물어야 한다.

아파트 사용연한이 짧다는 것은 국가나 국민 모두에게 많은 사회적 비용을 부담시키게 된다.

그래서 유럽처럼 대한민국도 100년이 넘는 장수명 아파트도입이 시급하지만 그 마저도 기술적인 접근이나 사업 시행자들의 수익을 감안할 때 쉽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려면 뼈대가 튼튼하고 기초체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건물도 마찬가지다.

골다공증에 걸린 뼈대가 오래갈 수는 없는 법이다.

요즘 해외에서 K -드라마나 팝 흥행덕에 K-아파트에 대한 관심도 많다고 한다.

인천공항에 도착 후 서울로 오는 도중에 한강을 따라 펼쳐지는 고층 아파트의 파노라마 뷰에 외국인들이 놀라는 모습을 방송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대규모 단지 내에 조성된 조경을 보면 오래된 공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천세대가 넘는 집들이 내부 인테리어가 동일하고 그 집들이 한 채에 수십억을 호가한다는 사실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알게 되면 한국 아파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게 될까?

날로 화려함을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아파트!!

겉모습에 걸맞은 기본적인 체력과 내실을 갖추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요즘 대도시 곳곳이 재건축과 재개발을 통한 아파트 건설로 여러 가지 몸살을 앓고 있다.

주택문제 해결은 도시 전체를 재건축을 통해 아파트로 바꾸거나 신도시 추가 건설이란 단편적인 사고가 우선이라 멀지 않아 전국이 아파트로 뒤 덮일 것으로 미루어 짐작이 된다.

지금은 구축아파트의 낮은 용적률이나 재개발구역 택지덕에 그나마 재건축이 가능지역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30년 후 또다시 재건축에 직면하게 될 대한민국 즉 아파트 공화국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 조차 하기 싫지만 그리 밝지만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가들에게 마지막 작품이 최고의 작품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공감이 간다.

자신의 힘으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대외적으로 크게 성공을 했다 하더라도 남들은 모르는 작가만의 아쉬움은 늘 남는다는 것이다.

감히 예술가에 견주어 보긴 어렵겠지만 기술자인 나에게도 그런 자존심은 있다.

하나의 건축물을 준공할 때마다 기간 내에 완성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늘 아쉬움이 남았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라는 안타까움.

좋은 건축물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뒷받침이 되어야 가능하다.

훌륭한 건축가, 좋은 발주처,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건설사와 분야별 숙련기능공들이 필요하다.

속칭 건설강국으로 꼽히지만 이제는 네 가지 모두 국내에서 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건축물은 기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건축이 불가피하다면 국민들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현재의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한 후 계획하고 지어야 한다.

형태는 기능을 따라야 하되 불필요한 장식을 제거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강조한 것이 1919년 독일 바우하우스 운동의 핵심이념이다.

주거의 기능에 대한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고민이 없이 편의성과 외관만 추구하는 아파트는 이제 그만 지어져야 한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들판과 산이 지천인 대한민국이다.

도대체 왜, 누가 아파트라는 울타리 안에 국민들을 가둬놓기 원하는지 이제는 곰곰이 되짚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그건 나만의 바람으로 끝날 공산이 클 것 같다.

그것이 내게 더 이상 아파트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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