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는 일산에 사는 아들 구하기 미션을 수행했다.
며느리가 친구들과 제주도로 2박 3일 여행을 떠난 날이다.
둘째를 임신하고 요즘 젊은 세대들 사이에 유행하는 베이비 샤워(Baby Shower) 파티 겸해서 가는 것이라고 한다.
금년 11월 출산 예정인 녀석(?)은 나와 아내에게 세 번째 손주다.
세 살이 지나면서 할아버지를 점점 무관심하게 대하는 외손녀가 첫 째.
둘째가 첫 돌을 앞둔 이번 돌봄 미션의 대상이다.
아직 첫 돌이 지나지 않은 손자 돌봄은 아들이 맡았다.
주말부터 월요일, 2박 3일 동안 통째로 독박육아를 맡은 셈이다.
일주일 전 아들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주말에 손자와 둘이 같이 양평에 와서 자고 가겠다고 한다.
사정을 들어보니 이해가 가기도 했다.
더위 때는 만남을 가급적 자제하는 편이지만 당연히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온 사방을 쉴 틈 없이 기어 다니는 손자의 모습을 보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오랜만에 맛보는 즐거운 일상일 듯했다.
이부자리가 마땅치 않은지 아내는 간편한 매트도 구입하고 아들과 손자를 맞을 준비를 했다.
그렇지만 단 하나 걱정거리가 있었다.
주말 아침 양평까지 오는 도로 사정이었다.
주말마다 아침부터 막히기로 유명한데 여름휴가 시즌이라 더 걱정이 되었다.
최악의 경우 차 안에서 몇 시간 갇혀 있을 수도 있었다.
이런 사정을 알았는지 아들은 양평에 오는 것을 포기하고 혼자 아기를 돌보기로 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하루만이라도 아들을 구해주기로 결정을 했다.
오전에 일산으로 가서 점심, 저녁을 같이하고 밤에 양평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10시 반경 아들 집에 도착하니 며느리는 이미 제주도로 출발하고 없었다.
아들은 아기에게 아침 이유식을 먹이고 있었다.
아내와 이유식 먹이기 바통 터치를 한 후 아들은 외출준비를 마쳤다.
영종도 삼목항 근처에 있는 횟집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한 나절을 집에서 보내기보다는 드라이브를 하며 바깥바람을 쐬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핑계 삼아 오랜만에 맛있는 자연산 회도 좀 먹고.
바깥 날씨는 올해 최고인 35도를 찍고 있었다.
차 안이 시원해지도록 에어컨을 강력하게 틀고 영종도로 출발했다.
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할 때는 찡찡거리며 보채던 손자가 외곽순환도로에 접어들자 바로 잠이 들었다.
아기들은 차가 움직여야 좋아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손자가 잠을 자는 시간은 우리에겐 천국이나 다름없다.
좀 더 재우기 위해 목적지 가기 전에 한 곳을 들렀다.
요즘 알만한 캠퍼들이 가끔씩 찾는다는 미단시티.
잘 닦여진 도로, 가끔씩 보이는 소규모 상가와 주택들 그리고 잡초들이 무성한 공원이 있었다.
공원주차장과 나무 그늘 밑에는 수십 개의 텐트가 쳐져 있었다.
취사행위 금지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들은 없는 듯했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만 남겨둔 채 짓다 말고 우뚝 서있는 호텔과 카지노.
천세대가 족히 넘을 신축 아파트 단지도 있었지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건 마찬가지였다.
영종도와 신도를 연결하는 다리공사 현장을 지나 삼목항에 있는 횟집에 도착했다.
멀어서 자주 올 순 없는 곳이지만 깔끔함과 맛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집이라서 몇 번 왔던 곳이었다.
나와 아내, 아들 그리고 손자 3대가 마주 앉아 맛있는 회로 점심을 먹었다.
물론 손주는 눈으로만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아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일산에 있는 대형 쇼핑센터에 들렀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 외부에 차를 세우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날씨였다.
뙤약볕을 피해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쇼핑센터에 들어가니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휴일이라 더위를 피해 냉방이 잘되는 곳으로 달려 나온 것 같았다.
수유실에 들러 기저귀를 갈고 시원하고 맛있는 인절미 팥빙수를 사 먹었다.
오후 네시쯤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쇼핑센터 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여섯 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낮에는 늘 암막커튼을 치고 에어컨을 켜고 살지만 요즘 같은 더위에는 소용이 없었다.
냉방성능도 시원찮은지 집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뻘뻘 날 정도였다.
그래도 뭐가 바쁜지 손자는 이리저리 기어 다니다 일어서고 넘어지고 찡찡거리다가 웃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아내는 짬을 내어 청소기를 밀고 아들은 저녁으로 죽을 배달시켰다.
나는 손자의 이동을 예의 주시하며 위험요인을 없애거나 온몸으로 접근을 막았다.
배달된 죽으로 셋이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했다.
이제부터 남은 이틀 동안의 손자 돌봄 미션은 아들의 몫이 되었다.
아들에게 임무를 떠 넘기고 우리 부부는 저녁 9시쯤 되어서야 양평집에 도착했다.
명목은 아들 구하기였지만 실은 손자와 즐거운 하루 보내기였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아들 부부 둘 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더구나 첫 손자 돌 이후 바로 둘째를 출산할 예정이니 앞으로 몇 해는 신발 끈을 고쳐 맬 여유도 없을 것이다.
예전처럼 대가족이 모여 사는 것도 아니니 아이를 돌 봐줄 사람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 이듬해에 바로 둘째를 가진 아들부부를 보며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래에 다가올 한국의 가장 큰 문제가 저출산이라는 것은 이제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합계 출산율이 0.7을 간신히 넘는 세계 최저 출산국이 된 것이다.
신혼부부가 단순히 출산을 꺼리는 것을 넘어 포기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저명한 학자는 국가소멸까지도 거론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 선조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국심으로 몸을 바쳐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
지금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한국을 지키는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둘째 손주를 가진 아들내외 덕에 갑자기 내가 국가유공자의 부모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건강한 둘째를 출산하고 잘 키울 수 있도록 마음으로 나마 아들부부에게 힘찬 응원을 보내야겠다.
힘은 들겠지만 국가 유공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멋지고 당당하게 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