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by 이야 아저씨


일주일 전 토요일 아침.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고 하는데 현기증이 나더니 갑자기 천정이 몇 바퀴 휙~휙 돌았다.

누운 상태에서 엎드린 자세로 간신히 몸을 돌리고 균형을 잡았지만 어지럼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어!! 왜 이러지? 하며 숨을 몰아 쉬고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어지러운 증상이 계속되니 속도 메스껍고 울렁거려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오늘 서울 사는 딸네 집에 가야 되는데."

외손녀가 세 번째 맞는 생일이라 좋아하는 동그랑땡과 미역국 그리고 생일케이크 등 몇 가지 음식을 준비해서 아내와 가기로 했다.

날도 더운데 외식보다는 집에서 시원하게 생일 겸 식사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10분 정도 엎드린 상태로 있으니 다행히 어느 정도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었다.

천천히 방에서 나와 컨디션회복을 위해 우유에 단백질 파우더를 타서 먹었다.

영양분이 들어가면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꺽꺽거리며 계속 트림을 했더니 아내가 눈치를 챘다.

소화가 안 되는데 왜 우유와 파우더를 먹었냐는 핀잔을 주며 힘들면 혼자 다녀오겠다며 나더러 집에 있으라고 했다.



외손녀를 보러 가는데 집에 혼자 있을 순 없지!

운전대를 아내에게 넘기고 같이 딸네 집으로 출발했다.

가는 도중에도 속이 불편하고 어지럼증이 남아 있어 딸네 집 근처 내과 앞에 차를 세웠다.

아내 먼저 집으로 보내고 나는 진료 후 약 처방을 해서 나중에 들어가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이 어제와 아침에 먹은 음식을 물어보고 간단하게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급체로 진단을 내렸다.

이명증이나 뇌경색은 아닌 것 같으니 안심해도 좋다는 설명과 함께 아침에 먹은 우유와 단백질 파우더가 증상을 더 악화시킨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내와 똑같이 말하는 바람에 순간 당혹스러웠다.



위활동을 도와주는 약을 처방받아 딸네 집으로 들어갔다.

준비해 간 음식들이 식탁에 하나 둘 차려졌지만 내겐 언감생심이었다.

따뜻하게 덥힌 미역국에 밥을 조금 말아먹으며 외손녀의 세 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후 휴일이 지나자마자 한의원으로 달려갔다.

전신에 침을 맞고 나니 거북했던 속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방약이 다 떨어져 동네 병원에 들러 증세를 말하고 추가로 약을 처방받았다.

며칠 동안 위에 무리가 가지 않는 죽을 중심으로 조심조심 음식을 먹으며 운동과 몸의 움직임도 최소한으로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오늘에서야, 아 이제 좀 살 것 같다 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평소에 아무렇지 않다가 몸에 이상이 생기면 한 순간에 옴싹달싹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나마 나이가 어리면 회복은 빠르겠지만 기력이 없어지는 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과는 관계가 없다.

이상증상은 예고하고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리 대처할 수는 없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뭔가 원인과 전조가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소화불량증상이 나타나기 전 일주일 동안은 폭염과 무더위가 전국을 뒤덮은 시기였다.

정부 방침에 따라 외부활동을 가급적 자제하고 에어컨이 가동되는 실내에서 주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 커뮤니티시설에서 운동을 하거나 집안에서 취미활동을 하며 소일하며 지냈다.

무더위 기간에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조차 민폐다.

그러다 보니 운동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다.

평소보다 시간도 늘리고 운동 강도도 조금 늘렸다.

평소에는 주로 걷기만 했던 러닝머신에서 가볍게 조깅도 했다.

조금 힘에 겨운 듯했지만 자고 나면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탈이 나기 하루 전.

아침에 우유와 단백질 파우더를 타서 마시고 오랜만에 아내와 스크린 골프장에 갔다.

점심은 골프를 치며 아내가 손수 식빵을 구워 만든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 후 집에서 잠시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다 책을 빌리려 도서관에 들렀다.

여름에는 도서관이 최고의 피서처라는 것이 이젠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평일이라 한적한 분위기에 시원하기까지 했다.

읽을거리, 볼거리도 많고 물도 공짜로 마실 수 있고 깨끗한 화장실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그리고 옥상 전망대에 가면 남한강의 풍경을 한눈에 즐길 수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대여한 책을 도서관에서 잠시 읽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마지막 스케줄만 남았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커뮤니티로 갔다.

어제 가볍게 달려보니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좀 더 뛰어보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먼저 몸을 풀고 가볍게 근력운동을 했다.

그다음 오늘의 주 타깃인 러닝머신.

오랜만에 걷고 뛰기를 반복하며 한 시간을 보냈다.

뛰는 속도도 평소와 달리 시속 9 킬로미터를 유지했다.

오랜만에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 기분도 상쾌했다.

내일부터는 뛰기도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가니 아내가 오늘 저녁은 통닭구이가 어떠냐는 의견을 냈다.

당연히 오케이.

선주문을 하고 통닭을 가지러 간 사이 아내는 식탁에 와인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통닭치킨과 와인.

소주가 당기긴 했지만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서 와인으로 통일했다.

아내와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시고 잠자리에 들기 전 팥도넛을 간식으로 먹었다.

오랜만에 빈틈없이 꽉 찬 스케줄과 맛난 음식을 먹으며 보낸 행복한 하루였다.



그런데 그게 바로 화근이었다.

실내에서 운동량이 늘어나며 왠지 몸 상태가 좋아진 느낌.

평소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밀가루 음식을 자제했음에도 독일을 다녀온 후 좀 더 친숙해진 빵과 면류를 자주 먹은 것이 화를 불렀다.

평상시보다 무리(?)한 일정에 과하게 몸과 위장을 혹사시킨 것이다.

잠들기 전엔 몰랐지만 그다음 날 바로 급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사실 내게 여름 나기만큼 힘든 것이 없다.

매년은 아니지만 2~3년에 한 번쯤은 꼭 탈이 났다.

몸에 좋다는 각종 즙을 마셔보기도 하고 보약을 먹으며 한여름을 보낸 적도 많았다.

아내가 이번에도 보약을 먹을 때가 된 것 같다며 말을 했지만 진실은 나의 과한 의욕이 부른 참사(?)였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의욕이 과해지는 순간이 있다.

마음먹은 대로 일이 술술 잘 풀리거나 몸 상태가 가볍고 좋아져 왠지 목표치를 초과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올 때가 있다.

바로 이때가 페이스 조절이 필요한 순간이다.

현재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서서히 기대치를 조정해 가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감에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많은 사람들이 오버페이스를 하게 된다.

운동선수들은 오버페이스로 인해 심각한 슬럼프에 빠져 영원히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기도 하고 사업가의 경우 실패라는 쓰라린 아픔을 경험하기도 한다.



과수원을 하는 농부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현상이 있다.

바로 "해갈이"다.

한해 기대이상으로 풍성한 과일을 맺은 나무는 다음 해에 거의 과일을 수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일에 필요한 영양소를 한 해 동안 집중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다음 해에는 영양소 결핍으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해갈이가 나타나는 나무는 좀 더 많은 거름과 적합한 관리를 해 줘야 그다음 해에 정상적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프로 농사꾼들은 해갈이를 쉽게 해결하지만 아마추어 농사꾼들은 수확증대라는 과욕에 빠져 과수원 농사를 영원히 망쳐 버리기도 한다.

비단 과일나무뿐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사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과유불급"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보다 못하다는 의미가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부족함은 다시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지나침은 다시 되돌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심하게 한 번 겪은 급체가 나에게 좀 더 쉬엄쉬엄 그리고 부족한 듯이 살라며 앞 발을 가볍게 툭 걷어 찬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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