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도
방 책꽂이에 20권의 일기장이 나란히 꽂혀 있다.
2006년 1월 1일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 지나갔다.
날짜로 따져보니 7,000일.
하루도 빠짐없이 썼다는 것이 나 스스로도 놀라울 따름이다.
학창 시절 일기는 방학이 끝나면 선생님께 제출해야 하는 아주 성가시고 귀찮은 존재였다.
개학 전 몰아치기로 쓴 것이 들통이 나 선생님께 혼이 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나뿐 아니라 사람들 대부분은 한두 번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어쩌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까?
특별하고 거창한 이유나 개인적인 기록을 후세에 남겨야겠다는 거룩한 사명감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그 이전해,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쓴 '난중일기'를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1592 ~ 1598년, 2538일) 7년 동안 이순신장군이 전란 중에 직접 쓴 일기다.
성웅(聖雄)이라는 칭호로 불리고 우리나라 역사상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에 꼽히는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를 읽고 나서 그 이전까지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일기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어! 일기가 이런 것이라면 나도 쓸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속에는 7년이라는 전란기간 동안 적은 기록일지와 개인적 소회나 그리움이 담긴 글도 있었지만 가벼운 하루의 일과나 단 몇 줄로 끝난 일기도 많았다.
사람들에게 매일매일이 사건과 긴장의 연속일 수 없듯이 전란 중이라도 매일 전쟁을 치르는 것은 아니었다.
전란 중에도 가벼운 일상이 있었고 그것들을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적어 놓은 것이 난중일기였다.
"머리를 쥐어짜 낸 멋지고 감동적인 글이 아니라 일상의 느낌과 소소한 일상을 편하게 쓰는 것이 일기네."라는 것이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다가오는 새해부터 나도 일기를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내에게 일기장을 사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내는 '성 바오로딸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만든 2006년 가톨릭 다이어리를 한 권 구입해서 내게 건네주었다.
디자인도 깔끔하고 일기를 쓰는 칸마다 좋은 글이 적혀 있어 마음에 들었다.
그 해 1월 1일부터 시작된 일기를 20년이 흐른 지금까지 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젠 책꽂이를 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겐 추억이 담긴 소중한 자료일 수도 있지만 남은 누군가에겐 고민되는 유품정리의 대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를 쓰는 일은 계속되겠지만 과거의 흔적은 스스로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매해 소중했고 아쉬웠던 기억들만 찾아 정리하고 지금까지 책꽂이 한 칸을 꽉 채웠던 일기장은 정리되는 대로 버리기로 했다.
◇ 나의 2006년.
한 해의 마음다짐 글
ㆍ"새해에는 덜 착하더라도 돈 되는 일에 힘쓰자."
왜 이 문장을 택했을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해 전이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나의 이야기.
ㆍ회사 입사 20년 만에 2006년 1월 1일 자로 부장진급을 했다.
ㆍ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5월부터 고지혈증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해.
일기처럼 지금까지 여전히 먹고 있다.
끊을 수 있는 날이 오려나?
ㆍ5월에 처음으로 양주 CC에서 골프 스코어가 80대(보기 플레이어)에 들어섰다.
ㆍ대한건축학회지 3월호 특집에 서울숲 관련 해서 쓴 원고가 실렸다.
ㆍ국립공원 정상 등반.
덕유산, 계룡산, 월악산, 월출산, 설악산, 한라산, 그리고 다른 산에도 산행을 많이 다닌 한 해였다.
아내는 딸 고등학교 입시준비로 몸과 마음이 바쁜 해였다.
ㆍ회사 창립 59주년 기념 체육대회에서 사업본부대항 400미터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로 뛰어 일등을 했다.
ㆍ턴키 수주 T/F 팀으로 참여해 4개월 동안 본사 근무를 했다.
수주목표 3개의 빅 프로젝트 3개 중 2개는 수주하고 하나는 실패했다.
가족이야기.
ㆍ아내가 7월에 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았다.
ㆍ중학생인 아들과 같이 갈이 일산근교 산행을 여러 번 갔었다.
ㆍ1월에 아들 팔에 있는 점 제거 시술을 했다.
ㆍ아들 치아교정을 시작한 2월
ㆍ3월에 아들 스마트 폰 구입
ㆍ11월 아들의 학내 문제로 마음고생 했으나 선생님의 오해가 풀려 잘 해결되었다.
ㆍ딸은 11월에 명덕 외고 독어과에 합격했다.
ㆍ형님부부가 생애 처음으로 5박 6일간 일정으로 중국여행을 다녀왔다.
ㆍ아내 외할머니께서 향년 90세에 사망하셨다.
친구이야기 등.
ㆍ친구가 필리핀에서 영사로 부임해 2월에 출국을 했다.
그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임 멤버 7명 전원이 11월에 3박 4일 일정으로 마닐라를 방문했다.
친구 덕분에 골프도 치고 술도 마시고 유명관광지인 팍상한 폭포도 다녀왔다.
그때 원 없이 먹었던 다금바리회가 아직도 기억난다.
ㆍ토리노 올림픽 숏트랙 금메달, 2월
ㆍ한국 두 번째 추기경탄생 정진석 서울대 교구장, 2월
ㆍ코미디엔 김형곤 사망, 3월
ㆍ최초의 여성총리 탄생 한명숙, 3월
ㆍ최규하 전 대통령 사망 10월
ㆍ일산 신도시 장마로 지하철 중단등 큰 피해, 7월
ㆍ근무했던 판교 현대아파트 3개 단지 청약률 1위.
ㆍ미국 하와이 진도 6.6 지진발생해 섬 전체 재해지역 선포.
ㆍ국민대 교수인 대학 선배 첫 만남 및 인사,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