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이야기 (3)

건설 안전사고

by 이야 아저씨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각 기업마다 비상이 걸렸다.

안전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위반하여 중대재해발생 시 그 책임을 회사와 관련 직원뿐 아니라 사업주나 최고 경영자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다.

재해 발생 시 늘 한 걸음 뒤에 물러나 있었던 기업의 오너인 회장이나 CEO들에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한 해전 2021년도에 법률이 공포되었기에 기업들도 나름대로 사전 준비에 들어갔다.

사업장별로 안전관리 강화는 기본이고 본사 안전부서나 임원들이 수시로 현장점검을 실시해 미흡한 부분이 발견되면 즉시 보완조치를 취했다.

또한 사고 발생 시 법률적 책임을 질 안전경영 책임자인 CSO(Chief Security Officer)를 CEO와 별도로 선임하는 등 안전사고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기업들도 나름대로 발 빠른 대응을 해 왔었다.



그런데 최근 안전이 또다시 산업, 특히 건설업계 최대의 화두로 떠 올랐다.

연속적으로 발생한 사망사고로 인해 해당 회사의 존폐까지 거론되며 사업장 모두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인해 결국 최고 경영자가 책임을 지고 사임을 했지만 그 여파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몰라 요즘 건설업체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이다.

모든 산재 사망사고 발생 시 최대한 빠르게 대통령에게 직보 하라는 엄명이 있고 난 후 사고예방에 기업들이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실정일 것이다.



건설재해에 대한 처벌은 사실 새삼스럽게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삼풍 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그리고 1996년 OECD 가입 이후 중대재해 발생 시 정부 부처별로 각종 제재를 이미 강력히 시행하고 있었다.

사고 발생 시 해당 사업장 공사중지 명령은 물론 공공공사의 입찰제한 제한과 업체면허취소, 관련자 처벌등 다방면으로 사고를 줄이기 위한 경제적, 형사적 조치를 시행하고 있었다.

건설회사에서 38년을 근무한 후 퇴사했지만 사실 단 하루도 안전이란 단어를 잊어 본 적이 없었다.

비단 나뿐 아니라 건설현장에 근무를 해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사고로 의해 본인이나 회사에 누가 되는 것도 있겠지만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과 근로자들의 무사고는 현장 성패와 바로 직결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전 공정 무재해는 성공 현장이라는 등식은 건설인들에게 수학 공식처럼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다.



현장의 하루 일과는 전 직원과 근로자들이 모여 국민체조와 일일 안전교육으로 시작된다.

긴장된 몸을 풀고 개개인의 컨디션 체크, 위험한 작업요소에 대한 주의사항은 물론 각종 안전장비 착용점검은 필수 사항이다.

사고예방을 위한 이러한 사전 행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접하면 누구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안전사고를 100% 예방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거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예방할 수 있었을 곳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아쉬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건설안전사고에는 저마다 다양한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과거와 달리 철저한 안전교육과 공종별 안전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요즘도 건설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설공사의 특성인 옥외작업, 건물의 고층화와 대형화, 공사기간 단축, 근로자의 고령화, 외국인 근로자의 증가등 다양한 직접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에 더해 한 세대가 넘도록 건설현장에서 몸소 부딪치며 느낀 안전사고의 간접적인 원인에 대해 나의 소회(素懷)를 몇 가지 적어 보았다.




첫째,

길어진 의사소통 단계와 현장 참여자들 간 상호 공감대 형성 부족.


과거와 비교하면 직원들과 근로자들 간 직접적인 대면접촉이 많이 줄었다.

90년대 이후 하도급 계약이 정착되며 원청인 건설사에서 직영체제로 운영되던 공종 대부분이 전문 하도급업체로 대체되었다.

직원들이 작업반장에게 직접 했던 업무 지시가 하도급 업체 소장으로 바뀌었고, 다시 작업반장 그리고 조장, 조원에게 전달되는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최종 작업자까지는 의사소통이 몇 단계 추가되었다.

단계가 길어지면 당연히 빈틈이 생기는 법.

당초 의도와 다르게 일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아졌고 하도급 시스템이 정착됨에 따라 원청 직원들과 현장의 말단 근로자 간 Eye Contact을 통한 친밀감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더구나 대형현장의 경우 상당수가 외국인 근로자다 보니 친밀감은커녕 의사소통조차 어려워진 실정이 되었다.

계약에 따른 권리와 의무, 그리고 책임이 강조되었고 그런 분위기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서있는 사람들이 상호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이 그리 쉽진 않은 일이다.

안전의무를 위반하는 근로자에게 벌점을 부과하거나 누적 시 현장퇴출제도를 시행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그것이 안전사고가 감소되는 결과로 나타나진 않았다.

안전은 법적인 교육이나 시설물 설치에 앞서 현장에 있는 모든 관계자들이 안전에 대한 상호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둘째,

건설안전은 현장 정리정돈이 기본.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서 학습이나 놀이가 끝날 때, 선생님이 외치는 소리가 있다.

"모두 제자리!"

흐트러진 장난감이나 교재들을 아이들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비록 어린이들이지만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물건들 정리를 끝낸 후 하루를 마감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8 ~ 90 년대 건설현장 안전관리의 시작과 끝은 정리정돈이었다.

작업 전 장비나 기구점검 및 현장확인, 작업 후 10분간 정리정돈은 작업자들에게 기본적인 일과였다.

직원들은 담당구역에서 일할 근로자 인원수를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때로는 농담도 건네가며 간접적으로 근로자의 건강상태도 확인했다.

또 한 달에 한두 번 담당 직원과 하도급 업체별로 현장 내 구역을 배정해 전 직원과 근로자가 함께 대대적인 청소를 실시했다.

근로자들도 현장정리 정돈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할애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모습을 현장에서 찾아볼 수 어렵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작업 후 뒷정리는 작업 당사자가 아닌 다른 근로자의 몫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뒷정리에 수반되는 비용은 차후 해당업체의 몫으로 돌아가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작업 후 정리정돈이란 단어는 현장에서 점차 사라져 버렸다.

어질러진 곳에서는 반드시 불완전한 행동이 일어나고 그 결과는 대부분 크고 작은 사고로 연결된다.

대대적인 정리정돈보다는 작업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잠깐 동안의 일일정돈이 안전사고 예방의 기본이라는 의식이 건설인 모두에게 다시 필요한 시점이다.


셋째,

내 몸의 소중함과 가치 인식.


"인간은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라고 한다.

여름의 뜨거운 땡볕이나 추운 옥외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자식이기도 하다.

현장마다 근로자를 위해 휴게실이나 샤워실 같은 편의시설들을 설치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여러모로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진정을 담은 편의시설 설치가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들은 근로자의 손끝을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근로자는 가장 소중한 존재이자 중요한 자원이다.

근로자들 자신도 몸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고 "다치면 나만 손해"라는 믿음을 굳게 가져야 한다.

모두가 이런 인식을 갖게 될 때 사고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근로자는 안전관리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라는 인식.


안전시설 설치나 관리는 원청회사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근로자들은 암암리에 갖고 있다.

현장마다 직원들과 안전관리자, 심지어 안전작업 감시반까지 현장에 상주시키며 재해예방을 위해 노력하지만 사고는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무의식적으로 근로자 본인은 안전관리의 객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현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안전표어 만들기 경진대회를 한 적이 있었다.

좋은 표어들이 많았지만 그중 일등으로 뽑힌 것이 있었다.

"내 안전도 중하지만 동료의 안전이 더 중하다."

현장 직원들 단 한 사람의 이견도 없이 만장일치로 선택되었다.

투박한 글씨로 쓰여 있었지만 어떤 표어보다 가슴에 와닿는 문장이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근로자들이 안전관리의 주체가 되는 첫 발걸음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위험요소를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위험한 곳은 발견 즉시 주변에 알리고 적절한 안전조치를 취하는 것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본인이 방치하고 넘어간 사소한 실수가 동료의 목숨을 앗아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옛 말에 "열사람이 지켜도 도둑 한 사람을 못 잡는다."라고 했듯이 안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근로자들 스스로 안전관리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안전사고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많은 안전사고를 지켜보며 현장생활을 했었다.

그 당사가가 근로자뿐 아니라 직원인 경우도 있었다.

사고에는 사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내게도 목숨이 위태로울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지독한 행운이 따라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제 한 발뒤로 물러나 있지만 현장에서 노심초사하고 있을 건설인들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하지만 마녀사냥하듯 일방적인 책임전가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고 당사자에 대한 치료와 위로가 최우선인 것은 당연하지만 근로자가 약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눈감아 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확한 원인 조사를 통해 교통사고처럼 본인 과실에 대한 책임도 당사자가 일정 부분 감당하게 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전체 현장 공사 중단이 일상화되었다.

사고 원인 조사, 안전 점검 후 시설보완, 재발방지 대책 수립 후 정부 관할부서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공사를 재개할 수 있다.

빠르면 보름 늦어지는 경우 거의 한 달이 지나 공사를 재개하는 현장도 있다고 한다.

대형현장의 경우 하루 출역 인원이 최소 수백 명이 넘는다.

공사 중단 명령이 떨어지면 근로자들은 타 현장으로 가서 일하거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는 사람들은 할 일없이 노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늦어진 공기는 야간작업이나 돌관공사를 통해 만회할 수밖에 없으니 또다시 근로자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결국 안전사고는 사고 당사자와 가족, 건설업체, 현장 근로자는 물론 최종 소비자인 입주자에게도 피해를 끼치게 된다.

해당 작업의 중지나 부분 작업 중단으로 해결될 수도 있는 것을 재해율 감소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제삼자까지 희생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재만이 능사가 아님에도 그것이 어느덧 전가의 보도가 되어 버린 듯하다.

건설사도 공사기간의 부족, 공사 중단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며 선처를 바랄 때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한다.

공사기간도 어차피 건설사가 정하는 것이고 사고 발생이 일어난 사업장의 일차적 책임 당사자가 아닌가?

사고에만 집착해 해결책을 찾거나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서류관리에만 몰두하면 사고예방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사기간, 새로운 공법, 자재 그리고 현장 근로자들 처우에 대한 총체적인 관점에서 고민을 하고 방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뤄질 때 비로소 건설재해를 예방하거나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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