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영원히~~

조용필 콘서트

by 이야 아저씨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리고 잠시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노래하나로 콘서트장에 있는 관객뿐 아니라 TV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와이셔츠 단추를 풀어 제친 아저씨, 행주치마와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버선발로 뛰어나온 아줌마, 공부하던 책을 잠시 덮어둔 학생, 모두 다 같이 노래하며 춤을 추게 만든 노래!!

이번 추석은 "조용필 콘서트"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고향에서 성묘를 마치고 부리나케 집으로 차를 달려왔지만 귀경차량 정체로 아쉽게도 콘서트 시작을 함께하진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한 시간 정도 본 방송으로 시청하고 이틀 후 콘서트의 주옥같은 곡들을 다시 한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 나이에 설마?"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그의 노래는 내게 옛 추억들을 주마등처럼 떠오르습니다.


"나이 40이 넘으면 노래하면 안 돼!"

이번 콘서트를 기획한 방송국에서 근무했던 친구가 몇 년 전 술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저도 친구의 의견에 적극 동의하는 편입니다.

나이가 든 가수의 노래를 들어 보면 예전의 느낌이 나지 않아 실망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노래에 실리는 힘과 곡을 타고 흐르는 섬세한 감정들이 사라지고 오랫동안 실전과 경험으로 체득한 기교만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관객들은 그 노래와 연관된 자신만의 추억에 이상 빠질 없습니다.

그런데 그날 조용필의 노래를 듣는 순간 모든 걱정과 우려를 한 번에 날려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 콘서트에서 그에게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많은 가수들이 70,80년대를 풍미했지만 그 선두그룹에는 늘 조용필이란 이름이 있었습니다.

연령층과 개인적 호불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때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주저 없이 맨 앞자리에 그를 내 세울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창 시절을 그의 노래와 함께하며 보냈다고 해도 빈 말이 아닐 겁니다.

중학교 때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며 사춘기를 보냈습니다.



대마초 사건 이후 1980년에 발표된 "창 밖의 여자"는 힘들었던 고교시절을 견디게 해 준 노래였습니다.

향후 진로나 대학입시에 대한 걱정이나 고민거리가 생기면 밤늦게 기타를 어깨에 둘러메고 안동댐으로 달려갔습니다.

광장 벤치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 몇 곡을 부르고 나면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그때 매번 불렀던 곡이, 내게는 조용필 하면

떠오르는 "창 밖의 여자"였지요.

그 이후로도 그는 주옥같은 노래를 연이어 발표하며 가요계 최정상의 위치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1993년 해운대 해수욕장 야외 콘서트에서 그는 마침내 한국 가요계에서 넘사벽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당시를 뒤돌아보면 공연을 볼 때의 감동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노래 속에는 가수의 삶과 지나온 흔적들이 담겨 있을 때 진정한 가슴의 울림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곡을 만들거나 타인이 작사, 작곡한 곡을 받아 음반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가수의 음색과 새로 만들어진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가수 자신의 곡이 되고 대중들의 인기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가수생활 50년 동안 삶의 흔적과 음악에 대한 그의 노력과 열정을 노래를 들으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나는 노래에서도 느낄 수 있는 한국인만의 한이 스며있는 음색과 창법, 현란한 솜씨를 발휘하며 그의 뒤를 굳건히 받쳐주는 연주자들, 너무나 세련되게 매력적인 화음을 넣어주는 남녀 코러스, 그리고 열광적인 현장의 관객들이 모두 함께 어우러진 이번 콘서트는 다시 보기 힘든 한 편의 드라마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위대한 악기는 인간의 목소리라고 합니다.

자신만의 목소리와 노래로 몇 시간 동안 관객들과 많은 시청자들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진정한 대중가수가 아직 우리 곁에 있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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