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부터 시작된 추석연후 긴 일정이 15일에서야 끝이 났다.
현업에서 은퇴해 매일매일이 휴일인 사람에게 무슨 연휴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백수라 해서 민속 대명절인 추석에 일정이 없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도 있고, 부모로서 해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유난히 긴 추석연휴였지만 이틀정도 잠시 여유를 가진 것을 제외하면 빈틈을 찾아보기 힘든 빡빡한 스케줄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스케줄은 아내 친구 부부와 만남이었다
그들이 연휴 첫날 양평으로 왔다.
군자삼락의 두 번째 기쁨인 벗이 스스로 방문한 것이다.
가끔 부부동반으로 서울에서 만나긴 했지만 이사를 온 후로 양평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버선발로 달려 나가 그들을 맞이해 같이 스크린 골프도 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연휴 첫날을 시작했다.
연휴 8일째, 우리 부부가 서울로 답방을 해 다시 만났으니 연휴기간 내 이틀은 아내친구 부부와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두 번째 스케줄은 고향방문 및 성묘.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시간이었다.
추석당일 새벽 일찍 고향에 사시는 안동 형님댁으로 내려갔다.
일산에서 따로 출발한 아들과 안동에서 만나 형님댁으로 같이 들어갔다.
형님내외분, 조카식구들과 함께 둘러앉아 아침식사를 마치고 성묘를 하러 갔다.
연초에 안동일대에 난 산불로 주변 산 나무들이 다 타버린 채 새까맣게 되어 있었지만 가족산소 주변에는 파릇하게 잔디가 살아 있었다.
오전에 성묘를 마치고 점심은 명절에 평생 처음으로 가족들 모두 외식을 했다.
명절 당일 외식은 예전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맛있는 돼지 생갈비를 구우며 세상이 정말 변해 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식사 후 형님 집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귀경대열에 합류하며 추석 당일일정을 마무리했다.
세 번째 스케줄은 부모로서 치러야 할 의무였다.
추석 다음날부터 1박 2일간 아들, 딸 가족들이 자고 간다는 것이었다.
아직 어린 손주 둘까지 더하면 모두 8명의 숙식을 해결해야만 했다.
손자가 첫 돌이 지나지 않았고 며느리가 11월에 둘째를 출산예정이라 외식을 할 수도 없는 상황.
할 수없이 추석 이틀 전 장을 봐 놓고 손주들을 위해 쌀로 뻥튀기도 해 놓았다.
이부자리도 마땅치 않아 인근에 사는 선배부부에게 침대패드도 빌렸다.
주방에 있던 식탁을 거실 가운데로 옮겨 놓고 손님맞이 준비를 마쳤다.
아내가 야심 차게 준비한 한우 토마호크 구이와 이태리 특식 요리로 첫날 점심식사를 했다.
이튿날은 아내가 손수 도우를 만들어 오븐에 구운 3종류의 이태리 피자가 아침식사상을 장식했다.
식사를 마치고 차가 막힐 수도 있다는 이유로 서둘러 얘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뒷정리 겸해서 아내와 같이 집청소를 했다. 모두 나름대로 힘들고 불편했겠지만 손주들 덕에 웃으며 기쁜 마음으로 보낸 시간이었다.
네 번째 스케줄은 손자 돌잔치 참석.
아들, 딸가족들을 보내고 이틀 후 손자 돌잔치가 일산에서 있었다.
양가 가족들이 모여 가볍게 돌행사를 하고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사돈댁 가족분들과 우리 가족 모두 12명이 전부였다.
돌잔치 전문가의 안내에 따라 돌잡이와 축하 행사를 하고 식사를 했다.
아직 아기 티를 전혀 벗지 못한 손자가 한 달 보름후면 형이 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자연히 사랑과 관심도 반반씩 나눠 갖게 될 텐데~~~.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 혼자일 때 더 많은 사랑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양평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스케줄은 강진 처갓집 방문.
당초는 추석 연휴이전에 다녀오기로 했었지만 갑자기 일정이 생겨 날짜를 미뤘다.
연휴기간에는 교통량도 많고 복잡할 것 같아 연휴 끝난 다음날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연휴 후 첫 출근이 시작되는 시간에 강진으로 차를 몰았다.
첫 목적지는 나주에 있는 곰탕집.
서울에도 나주 곰탕집이 있지만 현지에서 먹는 맛과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유명세를 탄 3곳 중 한 곳을 고르는 것도 늘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자장면과 짬뽕메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과감하게 한 곳을 정했다.
굿 초이스!!!!
예전의 그 맛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후식으로 호떡 하나씩 입에 물고 강진 하나로 마켓으로 달려갔다.
저녁 먹거리와 막걸리 두 통을 챙긴 뒤 최종 목적지인 처갓집에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일차적으로 집안 곳곳에 모기와의 전쟁준비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했다.
메뉴는 모두 강진산 먹거리.
한우 생고기를 썰어 만든 육회 비빔밥, 돼지 머리 고기, 병영 막걸리, 콩나물 국과 장모님이 손수 만든 토하젓.
토하젓에 찍어 먹는 돼지 머리 고기와 육회 비빔밥은 막걸리와 어우러져 환상의 맛을 내고야 말았다.
후식은 찐 밤.
작은 수저로 찐 밤을 파 먹으며 처갓집에서의 첫째 날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오늘은 뭘 할까 고민하다가 두륜산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허리 골절로 수개월 입원을 해 걷기가 힘든 장모님을 위해 최소한으로 걷는 곳을 선택한 것이었다.
케이블카 탑승장에 도착하니 흐린 날씨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안개로 인해 정상에서 주변 경치를 볼 수없다는 직원의 말이 있었지만 그날 첫 손님으로 케이블카를 탔다.
남해와 누렇게 물든 해남 곡창지대의 풍광을 볼 수없었지만 안개 자욱한 산 정상에서의 풍경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산을 내려와 윤선도 유적지가 있는 녹우당에 들렀다가 해남 읍내에 있는 칼국수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바지락의 본고장이어서인지 싱싱하고 쫀득한 속살을 오랜만에 맛볼 수 있었고 칼국수 국물도 시원했다.
저녁때까지 반나절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선사시대 공룡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자연사 유적지를 둘러본 후 장인어른 묘소에 들러 성묘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해질 무렵까지 집 주변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을 따고 내일 양평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양평집으로 올라가는 날.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집까지 거리도 멀지만 중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어 8시경 출발했다.
순창에 들러 일상처럼 할 일이 있었다.
먼저 고추장을 사고 점심으로 다슬기 수제비국을 먹은 뒤 연탄불에 구워서 만든다는 순창전통유과를 살 계획이었다.
가게가 쉬는 곳이 없어 다행히 계획대로 세 가지 모두 할 수 있었다.
비가 그치고 시간이 조금 남는 듯해 체계산 출렁다리나 건너 볼까 살짝 고민하다가 집에 일찍 올라가 쉬기로 결정했다.
양평에는 오후 5시 반경 도착했다.
간단히 짐정리를 마친 후 아내의 요청으로 저녁 겸해서 치킨과 맥주를 시켜 먹었다.
드디어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나와 아내의 긴 추석연휴 일정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