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곤짠지(무 말랭이 김치)
'딩동'
올해도 어김없이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안동 형수님이 보내 준 곤짠지~~.
해마다 겨울이 되면 형수님은 곤짠지를 담가 우리 집에 나눠 줍니다.
내가 유난히 곤짠지를 좋아했던 것을 알기에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반찬통 하나 수북이 담아 주시지요.
몇 해전까지는 안동 형님댁에서 가족들이 모두 모여 설을 쇠었습니다.
그때는 귀경길에 곤짠지를 받아 왔지만 이제는 택배로 부쳐 줍니다.
직계 비속인 아들 딸들이 모두 결혼을 하고 나니 식구들의 수가 많아져 잠 잘 곳이 마땅치 않더군요.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듬해부터 각자 집에서 설을 쇠기로 했습니다.
이제 그만 둘 때도 되었건만 환갑을 훌쩍 넘겨 버린 시동생의 입맛을 아직까지 챙기는 형수의 마음 씀씀이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11월이 되면 대한민국은 집집마다 김장 담그기로 분주합니다.
준비해야 할 재료들도 많고 손도 많이 가는 일이지요.
대형마켓에 가면 진열대에 온갖 종류의 김치가 진열되어 있어 언제라도 사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김장 김치는 집에서 담가야 제 맛이 난다!"라는 한국인의 오기(?) 하나로 아직까지 웬만한 가정에서는 직접 김장 김치를 담그고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아 점점 사라져 보기 힘든 풍경이 되겠지만요.
곤짠지는 무말랭이 김치를 안동 사투리로 부르는 말입니다.
일반 식당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요.
사실 안동 곤짠지에 비하면 김장용 배추김치는 담그기가 쉬운 편입니다.
배추를 사서 소금에 절인 후 포기 속에 김장용 양념을 버무려 넣으면 김치 담그기가 끝입니다.
요즘은 절인 배추까지 배달해 주니 더욱 손쉬워졌습니다.
곤짠지 담그기는 배추김치와는 다릅니다.
준비하는 과정이 길고 험난하지요.
먼저,
좋은 무를 고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보기에도 좋고 단 맛이 나는 무를 골라야 합니다.
그다음,
큰 광주리 한가득 무를 쌓아두고 적당한 크기로 도마에서 썰어야 합니다.
무 한두 개 써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오십 개가 넘는 무를 잘게 써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마지막 단계인 무 말리기.
노력과 인내심이 요구되는 시점이지요.
늦가을과 초겨울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곳에는 어김없이 무 말리는 소쿠리나 대자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통풍이 잘 되고 따뜻한 곳에서 보름이상 제대로 말려야 쫀득하고 아삭한 식감을 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낮에 말리고 밤에 다시 걷어 들이기를 반복해야 하니 웬만한 정성이 아니고서는 담그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가 잘 마르지 않으면 맛이 없어 그해 곤짠지는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곤짠지는 안동에서 고들빼기(씀바귀) 김치와 함께 고급 김치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음식입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치이기도 하지요.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곤짠지는 김치 담그는 시기보다 한 두 달 늦어지게 됩니다.
해가 바뀌는 일월이나 설 밑에 담가 가족들의 밥상에 오르게 되는 것이지요.
어린 시절,
곤짠지 담그는 날은 내게 축제나 다름없는 날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주 귀한 오징어 구이를 맛볼 수 있는 날이었거든요.
잘 말린 무 말랭이, 말린 고춧잎, 김장양념에다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가늘게 썬 구운 오징어가 들어갔습니다.
오징어가 없는 곤짠지는 내게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습니다.
곤짠지양념에 저며진 구운 오징어를 골라 먹을 때면 식사를 하며 또 다른 묘미를 느끼곤 했었지요.
오징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동에서도 그걸 넣어 곤짠지를 담그는 집이 요즘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징어가 든 곤짠지를 아직도 좋아하는 사람이 유일하게 내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곤짠지는 내게 맛있는 반찬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와 형수의 손 맛을 느끼게 해 주는 추억의 한 자락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기억 저편에 떠오르는 손 맛이 담긴 음식이 있을 겁니다.
할머니 품에서 자란 사람은 할머니의 손 맛이 담긴 음식이, 어머니 슬하에 자란 사람은 어머니의 손 맛이 담긴 음식들이 있습니다.
옛날 그 음식들이 그립고 맛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시는 먹어 볼 수 없는 음식이기 때문 아닐까요?
나이가 들면 음식의 간을 맞추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미각이 둔해지는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시동생을 위해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형수님이 고맙기만 합니다.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고추장 삼겹살도 생각이 나네요.
가정을 꾸려가기 힘들었던 시절 형수가 해 줬던 고추장 삼겹살구이는 내가 먹어 본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곤짠지와 고추장 삼겹살 구이, 그리고 구운 오징어가 들어가는 쪽파무침.
형수님의 손 맛하면 떠오르는 대표음식 세 가지입니다.
어머니의 손 맛이 담긴 두부ㆍ오뎅찌게와 함께 내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남은 겨울도 형수님이 보내 준 곤짠지덕분에 건강하게 잘 보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