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VS 쇼펜하우어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철학자나 사상가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개인의 성향이나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근 몇 년을 되짚어 보면 유독 두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겁니다.
교보문고나 인터넷 서적 스태디셀러와 베스트셀러 목록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지요.
바로 조선의 문신이자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과 독일의 철학자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입니다.
시쳇말로 대한민국에서 18세기 동, 서양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핫 인플루언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사람이 집필한 저서나 사상을 토대로 시중에 많은 책들이 발간되었습니다.
유튜브 동영상은 말할 것도 없고요.
본인들이 살아 있을 때 쓴 저서보다 더 많은 책들이 서점 매장에 깔려 있을 겁니다.
관련 책들이 세대를 뛰어넘어 인기를 끌면서 "자고 일어나 눈을 떠보니 유명인 되어 있더라."라고 말하는 작가분도 있더군요.
먼저 다산 정약용(1,762~1,836. 73세 졸)은 정조대왕과 더불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분입니다.
어쩌면 후세에게는 왕보다 더 유명세가 높은 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생한 곳인 남양주에는 그분의 호를 딴 다산 신도시가 생겼고 실학자인 그의 업적을 기려 전국 대학에 다산관이라 명명한 많은 건물들이 있습니다.
서울시의 대표적인 민원서비스의 하나인 다산콜센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나 소설에도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기도 했었지요.
그는 1801년 40세에 강진으로 귀양을 간 후 18년 만에 유배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저서 대부분은 귀양살이를 하는 도중에 쓰인 것이라 합니다.
해남유지였던 외갓집의 기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그가 과거에만 집착하고 연연했다면 그 기간 동안 귀중한 저서들을 남기기 쉽진 않았을 겁니다.
귀양살이의 힘든 시간을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 했기에 그의 저서와 글귀들이 우리의 가슴에 와닿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양 도성 내에 사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은 분이기도 합니다.
임종을 앞두고 자식들에게 신신당부했다는 말이 있더군요.
"한양을 벗어나는 순간, 모든 기회는 사라지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한양에서 버텨라."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정보와 희망의 사다리를 올라탈 수 있는 기회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는 의미겠지요.
조선시대 고위직이라 할 수 있는 정승, 판서를 지낸 것은 아니지만 후세에 큰 귀감이
된 것은 귀양살이 중에도 신독(愼獨),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삼가고 언행을 조심한다.'을 철저히 수행한 결과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 72세 졸)입니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세상을 뜬 사람입니다.
30세에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하고, 몇 년 후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맡았으나 수강생이 거의 없어 대학을 떠나 독자적으로 학문을 수행했던 철학자입니다.
당대의 주류 철학자였던 헤겔을 비판하며 대척점에 서 있었으니 당시에 그가 설 자리는 마땅치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1833년, 45세 이후 프랑크푸르트에 이주해 27년간 거의 은둔생활을 하며 저술활동에 전념했다고 합니다.
60세가 넘어서 출간된 '소품과 목록'이 외국에 알려지며 비로소 그의 저서들이 재조명을 받고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합니다.
1860년, 베를린 왕립 아카데미에서 그를 평생회원으로 추천했지만 나이를 핑계로 거절하고 이듬해인 1862년 72세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1825년 베를린 대학 재직 시 어느 여자 재봉사가 쇼펜하우어의 하숙방 객실에 마구 드나들고 잔소리가 심해 그녀를 문밖으로 떠민 이유로 소송을 당해 평생 그녀에게 일정액의 부양료를 지불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20년 후 그녀의 사망진단서를 받은 쇼펜하우어는 거기에다 "노파는 죽고, 나의 책무는 사라졌다"라는 짤막한 글을 썼다고 하더군요.
20년 동안이나 판결에 대한 의무를 지킨 그의 의지가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경제적 여유가 있음에도 이혼한 자녀의 양육비조차 보내지 않는 뻔뻔한 자들이 많은
현실이 새삼스레 안타깝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사상가이자 철학자였던 두 사람의 저서가 200년이란 시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많은 공감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학의 발전으로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이 이루어졌지만 인생의 욕망에 따른 고통, 그리고 끊임없는 행복에 대한 갈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두 철학자는 인간의 내면에 깊이 숨어 있는 본성을 섬뜩하도록 냉철하게 파악하고 글을 썼습니다.
누구나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차마 입밖에 내기 어렵고,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인간의 본질을 적나라하지만 공감할 수 있도록 써 놓았습니다.
그들의 글을 읽다 보면 무릎을 탁 치며 "그래 바로 이것이었어"라며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대를 뛰어넘어 현재를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글은 삶의 지혜와 삶에 대한 의지를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사람에게는 다른 점도 있지만 공통점도 많이 있습니다.
정약용은 젊은 시절 입신양명해 관직생활을 했지만 쇼펜하우어는 강사로나 철학자로 크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60세가 넘어서야 그의 사상과 저서들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니까요.
태어난 곳도 서로 달랐고 한 사람은 가정을 이룬 반면 다른 이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공통점은 정약용은 문신의 아들로 태어났고 쇼펜하우어는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두 사람 다 학문에 관심이 많았고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도 학문수행에 전력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주류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고독 속에서 끊임없이 인간의 본질, 사회 현상과 관계에 대해 공부를 하며 저술활동에 몰두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고독을 극복하며 즐기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가문의 도움을 받은 것도 또 다른 공통점입니다.
정약용은 귀양지에서 외가인 해남 윤 씨 일가의 도움을 받았고,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해 평생 경제적인 궁핍함을 벗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타고난 천재성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에게 삶의 위안과 통찰력을 주는 그러한 명저는 탄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범용적인 것이 가슴에 와닿게 하기 위해서는 천재적 재능을 필요로 한다.
널리 알려진 자료일수록 새로우면서도 올바른 방식으로 조합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료에 매달려 그것의 가능한 조합을 무수히 시도했을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책에 있는 글입니다.
일반인으로서 왠지 기분이 언짢지만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을 주는 글입니다.
그의 천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더군요.
역사 이래로 인간들에게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궁금증이 삶과 행복에 대한 것이 아닐까요?
철학이 시작되었다는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 심지어 과학자들까지 파고 뒤집고 헤쳐보았지만 여전히 명쾌하게 정의되지 않는 것이 바로 삶에 대한 인간의 본질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요.
사람들이 저마다 처해 있는 상황이나 주변환경에 따라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듯이 삶을 살아가는 의지와 행동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쇼펜하우어의 글 중 마음에 깊이 와닿는 범용적인 글을 올리며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가장 행복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그다지 큰 고통을 겪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지,
대단히 큰 기쁨이나 엄청난 쾌락을 맛본 사람이 아니다.
인간이 가진 자산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명랑한 마음이다.
그런데 명랑함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부가 아니라 건강이다.
나의 머리맡에 책 한 권을 둬야 한다면,
쇼펜하우어의 '소품과 부록(PARERGA UND PARALIPOMENA)'을
두고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