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 아저씨 Jul 30. 2020

어머니에 대한 단상-2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나셨다.



월요일, 수도권의 혼잡한 아침 출근길을 뚫고 서초동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안동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2020년 7월 20일 아침 7시 50분경 전화로 들은 형님의 말씀 한마디.


"엄마가 돌아가셨다네!!!"




6월 중순경 어머니가 입원해 계신 요양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건강상태가 많이 좋지 않으시다고 가족면회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당시만 해도 코로나로 인해 병원의 외부인 출입 통제가 심한 시기였다.

그런데도 면회를 허락다는 것은 어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미루어 작할 수 있었다.


연락을 받고 아내와 아들, 딸, 사위 모두 주말에 내려가 어머니를 뵈려고 준비하고 있는 중 형님으로 재차 연락이 왔다.


수도권에 코로나가 많이 발병을 하고 있어서 서울, 경기지방 사람들은 면회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어머니와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몰라 다시 병원에 전화를 해서 부탁을 했다. 

절대 안 된다고 고, 지역과 신분을 속이고 면회를 할 경우 문제 발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요양병원에 무리하게 내원하는 것과 코로나 감염전파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부담이 되었다.

조금 잠잠해지면 내려가 뵈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형님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전화기에 형님의 번호가 뜨는 순간, "어머의 상태가 조금 더 안 좋아지셨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통화를 했는데 어머의 임종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의 임종이 멀지 않았음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정신이 멍해지고 온몸의 피가 정지하는 듯한 전율이 일었다.


잠시 정신을 추스르고 난 후, 아내에게 연락을 해서 가족들 모두 안동으로 떠날 준비를 하라고 일러줬다.

잠시 사무실에 들러 직원에게 상황을 전하고 서둘러 집으로 출발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월요일 출근길과 겹쳐 일산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11시경이 되어서 가족들 모두 짐을 챙겨 안동으로 출발을 했고, 오후 3시경에야 어머의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동 가족들과 친지분들이 장례식장에서 조문 준비를  이미 끝낸 상태였기에, 어머께 마지막 인사를 드린 후 상주로써 문상객들을 맞이했다.


어머니는 팔순 이후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수개월 정도 잠시 집에 머물러 계셨던 시기를 제외하고 십여 년 동안 병상생활을 하셨다.

문병차 병원에서 어머님을 뵐 때마다 나로서는 늘 애틋한 마음만 들뿐이었다.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신 적이 없고,

자식들이 가정을 이루기 전까지 2남 2녀인 아들, 딸들을 반듯하게 키우기 위해 힘든 삶을 사셨다.

가정을 이룬 후에는 손주, 손녀를 위해 오롯한 삶을 사셨기에 당신의 몸을 돌볼 겨를이 거의 없으셨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해방 이후 세대의 전형적인 어머니상이 바로 "나의 어머니"다.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그다음 날 어머 입관식을 했다.


가족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입관식을 하고 입관 전에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했다.


당신께서 생전에 마련해 놓으신 수의를  입은 채 곱게 화장한 어머모습을 봤다.

"이제는 이승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말 편안한 곳으로 가시겠구나!!" 하며 애써 마음 한편으로 위로를 했다.

그때 돌아가신 어머의 눈가에서 작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어머의 눈물을 본 순간 뜻하지 않은 상황에 가족들 모두 통곡을 하며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머의 눈물이 회환의 눈물이 아닌 마지막 안도의 눈물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까스로 가족들 모두 마음을 진정하고 스스로를 추슬렀다.


그다음 날 어머께서 생전에 말씀하신 대로 화장을 하고 2년 전에 미리 마련해 남선면 선산에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셨다.


보슬비가 내려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어머니가 영면해 계실 곳이 너무 아늑하고 포근해 보였다. 비는 맞았지만 가족들과 친지들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보내 드렸다.



장례를 끝내고 가족들 모두 형님댁에 모여 어머니를 추억하며 많은 이야기 나누었다. 어머제사 등 추후 일들을 의논한 후 각자 일상으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입원해 있었던 요양병원을 지나쳐 왔다.


십여 년 동안 일 년에 몇 번씩 병원을 지나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조금 편안하게 다가왔고 아직도 병원에 누워계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것 같았다.


"엄마~~~,  우리 가족들 돌보느라 너무 고생 많으셨고요,

이젠  편안히 좀 쉬세요.....  "



어머의 삶은~~~


자식들이 보기에는


늘 조금씩 양보하시고 손해 보시는 삶이었고,


한편으로는 애잔한 삶이었습니다.


"엄마,   늘 고마왔고  잘 가소!!!!!"










작가의 이전글 아르바이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