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by 이야 아저씨


세상만사 어려운 일중에 하나가 바로 소통입니다.

'막히지 않고 서로 잘 통함'이 본래의 뜻인데 요즘 소통이 잘 안돼 나와 아내가 여러모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정을 설명해도 한 사람은 막무가내로 떼를 쓰며 화를 냅니다.

몇 번을 실랑이하다 결국에는 발버둥을 치며 울음을 토해 냅니다.

다른 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호교감이 이뤄져 가끔은 순조로울 때도 있지만 의견이 벽에 부딪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수저를 던지기도 하고 자기 맘에 드는 것만 하려고 합니다.

시간이 더해갈수록 보고 느끼는 게 많아 그런 듯한데 화를 낼 수도 없어 답답한 심정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2개월째 돌봄을 하고 있는 손주 둘 이야기입니다.

첫 손주는 16개월이 되었고 둘째는 백일이 지난 지 열흘이 되었습니다.

둘째가 어린이집 영아반에 갈 때까지 손주들을 아내와 내가 돌봐주기로 했습니다.

물론 저는 보조 역할을 할 뿐입니다.

딸이 출산을 하고 2년 후 복직을 할 때 외손녀를 6개월 정도 돌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쉽진 않았지만 만 두 살이 넘었기에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 서로 타협을 할 수가 있었지요.

손주 둘은 너무 어린 탓에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본능적인 욕구인 배고픔, 대소변, 아픔을 알리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울음이나 칭얼거림 그리고 떼쓰기입니다.


백일이 지난 둘째 손주는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한두 가지만 확인하면 되니까요.

기저귀, 체온 측정 그리고 날름거리는 혀와 오물거리는 입술만 봐도 뭘 원하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정확한 소통이 가능합니다.

분유를 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면 대부분 해결이 됩니다.

수유시간을 지키느라 서로 실랑이를 하며 힘든 시간을 보낼 때도 있지만 잠시뿐입니다.

백일이 지난 후부터는 시야에 사물이 확실히 보이는지 눈을 맞추고 함께 놀아주기를 좋아합니다.

함빡 미소도 짓고 때때로 옹알이를 하며 맞장구를 치기도 합니다.

그때는 아기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손주 돌봄의 피로가 미소 하나로 한방에 날아갑니다.


문제는 첫 손주입니다.

눈만 뜨면 온 집안을 뛰며 헤집고 다닙니다.

어린이 집에서는 낮잠을 오전, 오후 두 번씩이나 잔다는데 집에 같이 있으면 잘 생각을 안 합니다.

졸리는 걸 애써 참아가며 나와 할머니를 들볶아 댑니다.

최근에는 말도 많아졌습니다.

하루 종일 책을 가져와 읽어 달라 조르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며 대화를 시도하곤 합니다.

서로 알아들을 수 없으니 제깐에는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힘도 세져 온몸을 비틀며 버둥거리면 당해내기가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말문이 틔여 최소한 의사소통은 가능해지겠지만 그때까지는 서로가 힘든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합삐(할아버지)~~" 하며 나를 찾는 한마디에 다시 책을 읽고 같이 놀이를 시작합니다.

아직까지 말은 못 해도 몸짓이나 눈치로 두 손주들 애로사항을 대부분 해결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편입니다.


손주들이 점차 나이가 들면 소통이 나아질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 갈수록 소통의 대상이 달라집니다.

영유아 때는 엄마와 아빠. 즉 함께 사는 가족들이 소통의 전부입니다.

어린이 집과 유치원에 들어가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면 소통의 대상이 더 많아집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가 우선이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또래 친구들이 생기며 소통의 우선대상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이 되면 회사 동료나 선후배가 소통상대가 됩니다.

회사 업무가 우선이 되면 가족과의 소통이 점점 줄어들게 되지요.

부모가 가장 활발히 사회생활을 하는 시기에 자식들은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하루 일과를 보내는 상대가 서로 달라 부모와 자식 간 소통이 가장 부재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손주들과 소통을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일 겁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서로 노선이 다른 사람들이 합치와 소통을 외치는 것은 단지 보여주기식 쇼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집권이 최종 목표인 정당은 윈윈보다는 제로썸게임에 더 가깝기 때문이지요.


주변 사람들과 소통이 어려워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교적이고 활동적인 인간관계를 갖기를 바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회적 성향이 강해 보이는 사람도 업무적 사유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스스로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소통의 대상을 찾게 됩니다.

반려동물을 키운다거나, 책을 읽거나, 사이클이나 등산 그리고 악기연주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게 됩니다.

소통의 대상이 반드시 사람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과의 소통만에 집착할 때 오히려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며 스스로 고립감에 빠져 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중장년층이 되면 평생을 같이 할 수 있는 소통의 대상이 필요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본인이 애정을 쏟고 만족을 느낄 수 있다면 어느 것이라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죽을 때까지 함께 동행할 수 있는 소통의 대상을 차분히 찾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모두 내 곁을 떠나 홀로 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