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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아저씨 Apr 08. 2023

단골손님, 단골 이발소

남성도 헤어스타일에 엄~~ 청 민감하다.


"단골이셨잖아요!"


3개월 전쯤 일산에 들러 오래전에 자주 이발을 했던 블루클럽에 갔었다.


이발을 한 후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 앞에 서 있는데 사장님이  내 이름을 불러 주셨다.

OOO 님 맞으시죠?

깜짝 놀란 마음에 이름을 어떻게 지금까지 기억하시냐? 고 물었더니 사장님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단골손님!!


지금은 점점  잊혀 가지만 들을수록 참 정감 있는 말이다.


일산 마두동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  대부분 그 가게에서 이발을 했었다.

미용실과 이발소를 여기저기 옮겨 다녀 보았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 이발소는 그나마 내게 어울리는 스타일로 커트를  잘해주었고 집에서도 가까웠다.

한마디로 가성비도 좋았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단골이 된 이유는 다른 것에 있었다.

사장님은 가게 구석 책장에 늘 장편만화 몇 부를 꽂아 두셨다.

지금은 주변에서 찾기  어렵지만 과거 만화방은 내 단골 휴식처나 마찬가지였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치 않게 만화를 보고 있다가 차례가 되면 머리를  깎곤 했다.

기다림이 잠깐이라 장편만화를 다  읽지 못하고 가게를 나올 때면 늘 조금 아쉬웠다.


어느 날  이발을 마치고 사장님께 만화를 빌려가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괜찮다고 하며 쇼핑봉투에 스무 권이 넘는 만화를 손수 담아 주셨다.


그 이후 임도 보고 뽕도 따는 심정으로 그  이발소는 내 단골가게가 되었다.

가끔씩 만화도 빌리고 머리도 깎고~~~




헤어 스타일에 대한 관심!

여성들이  맘에 드는 미용실을 찾기가 쉽지 않듯이 남자들도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쓰기는 여성 못지않다.

머리 손질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다음번 이발할 때까지 남자의  자신감과 컨디션이 결정된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대학 1학년때 머리를 아주 짧은 스포츠로 빡빡  은 적이 있었다.


대학친구들이 군대를 가냐?  

아님  운동권이냐? 고 집요하게 물어보며 궁금해했었다.

80년대 초반 당시만 해도 학생운동이 활발한 시절이었으니 오해를 받을 만도 했다.

헤어 스타일 변신 하나로 졸지에 민주투사로 둔갑을 하는 듯했고 대답 없는 미소로 인해 나에  대한 친구들의 궁금증은 점점 더해만 갔다.


속 사정은 사실 이러했다.


그 당시에는 보통 내가 살던  서울 개봉동 외삼촌집 근처나 학교 교내 이발관에서 늘 이발을 했었다.

오래돼서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연히 보라매공원 근처 허름한 이발관에서 이발을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가격이 매우 저렴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돌아와 별생각 없이 거울을 보니  머리카락 양쪽 길이가 서로 다르게 느껴졌다.

머리통이 남들처럼 예쁜 형이 아니라 잘 깎아도 시원찮은  스타일인데 길이가 다르니 너무 이상하게 보였다.

집 근처였으면 당장 이발소로 달려갔겠지만 거리가 멀어 포기를 했다.

아쉬운 대로 양쪽 머리카락 길이를 맞추기 위해 손수 가위로 긴 쪽을 잘랐다.

자르고 보니  밸런스가 맞지 않아서 다른 쪽을 잘랐다.

이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머리통이 괴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동네 이발소에 부리나케 달려가니, 이발소 아저씨가  "빡빡 미는 수밖에 없겠네!"라고 말을 했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빡빡이나 다름없는 스포츠형 머리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친구들의 관심도 많이 받았지만 불편한 점이 더 많았다.

길거리 불심검문의 단골 대상이 되었고 심지어 열차에서 신분증 미소지로 인해 강제하차를 당하기도 했다.

생긴 것은 그렇지  않은데 헤어스타일로 인해 범죄형 인물이 된 것이었다.




각설하고 다시 단골손님으로 돌아가 보자.

요즘은 가게 입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 "단골 우대, 외상사절"이다.

과거에는 동네 주변 웬만한 가게에서 이런 문구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렵게 살던 시절에는 동네에서 현찰을 주고 음식을 먹거나 생필품을 사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외상장부를 두고 보름이나 한 달에 한 번쯤 외상값을 치르는 게 일반적인 시절이 있었다.

그러니 외상을 하려면 그 가게에 단골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나 단골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단골이 되기 위해서는 상호신뢰와 노력이 밑바탕이 되어야만 했다.


자주 가는 밥집


손님은 손님으로서의 품격을  가져야 했고 외상결제일을 철저하게 지켜야만 했다.


가게는 맛과 서비스는 기본이고 손님에 대한 기본적 배려가 깔려 있어야만 했다.


둘 중 어느 한쪽이라도 소홀히 하게 되면 단골관계는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상호관계였던 것이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일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 단골의 기본요건이었다.


요즘은 지출수단의 기본이 신용카드인 세상이다.

사실 말이 신용카드지 속된 말로 현금박치기나 다름없다.

이미 개인과의 거래에서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외상거래는 신용카드가 일반화되면서 사라져 버렸다.


신용카드로  인해 가게 주인들은 손님에게 돈 떼일 일은 전혀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물론 먹튀로 인해 가슴앓이 하는 사장님들이 가끔 있긴 하지만, 그 옛날 외상시절 결재일을 기다리는 주인의 심정만큼 조마조마하진 않을 것이다.

단골손님의 집안사정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피고, 손님들 가정의 어려운 일들이  잘 풀리기를 매일 기도하는 심정으로 가게주인들은 살았을 것이다.

외상값을 잘 갚을 수 있기를~~~


이제는 다양한 지불결제 수단으로 인해 옛날 단골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

그리고  단골이라는 단어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단골로 기억해 주시는 사장님이 계셔서 나로서는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일 년 전쯤 블루클럽 가게가 있는 건물이 붕괴 위험으로 수개월이상 영업을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을 위해 최대한 빨리 인근에 가게를 얻어 다시 이발소를 개장했다고 한다.

손님을 배려하는 사장님의 마음씀씀이가 고맙기만 하다.


멀리 있어 자주 이발하러 가긴 어렵겠지만 점점 단골이 사라져 가는 시절에 앞으로도 그 이발소의 단골손님으로 영원히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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