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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아저씨 Mar 15. 2023

아들 결혼 축사

To   ♡♡♡  님....

막내아들이 장가를 갑니다.

93년생이니 올 해로 막 서른이 되었네요.


작년 12월 성당에서 관면혼배를 치르고 벌써 3개월이 지나 꽃들흐드러지게 피는 4월 22일 드디어 결혼을 합니다.


요즘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젊은 남녀들이 결혼을 주저하는 세태인데, 2~3년 전부터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아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예식장 잡기, 청첩장  만들기, 신혼여행지 예약, 웨딩사진 촬영, 양가 부모 상견례, 패물준비하기, 예복, 한복 준비하기~~ 등, 요즘은 과거와 달리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준비해야 할 일들이 엄청 많아졌습니다.


그 많은 일들을 부모의 도움 없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준비하는 두 사람을 지켜보니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우리는 하객으로 참가할 테니 준비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란 말이 영향을  끼쳤겠지요.


그래도 일 년 못 미치는 기간에 나름대로 잘 준비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고,  마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쪼끔 들기는 합니다.


 한 일은 가끔씩 결혼준비  진행상황을 물어보며 아들과 예비 며느리에게 맛난 안주에 소주 한잔 사 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제 카운트다운을 하며 기다리면 되지만 내게는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주례 선생님 없이 예식을 해서 신랑 측  아버지가 결혼축사를 해야 한다네요!!

예식장에 제출해야 하니 아들이 빨리 축사를 써 달라고 성화입니다.


양가 어머님은 화촉을 밝히고, 신부 아버님은 신부입장 시 에스코트를 하는데 결혼식에 그냥 숟가락만 얹고 아 있으려는 아비가 어지간히 못 마땅했나 봅니다.


요즘  결혼식장에 가 보면 주례선생님의 주례사 없이 부모님과 친구들의 축사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믿고, 사랑하고 행복하란 말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가끔씩은 감동을 주는 축사도  있고 재치 있는 위트를 섞어 하객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객들의 마음도 참 묘합니다.


축사는 당연히 감동이 있고 위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길어지면 썩 마음에 내켜하지 않습니다.

나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결혼할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함축하고 미래를 당부하는 것을  짧은 글로 멋지게 표현한다는 것이 사실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아내도 짧지만 멋진 글을 내심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능력도 부족하지만 짧고 감동까지 줄 수 있는 그런 축사는 절대 없습니다.


 만원을 줘 놓고 샤넬 백이나  에르메스 가방을  내놓으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평생의 동반자를 맞아 새로운 시작을 하는 아들이지만  돌이켜 보면 쉽지 않은 시간의 터널 지나왔습니다.


어릴 때는 눈이 왕방울만큼 큰 둘도 없이 귀여운 아들이었지만,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나와 아내의 마음을 애타게 만든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선생님의 오해로 자칫 불미스러운 일에 휩쓸릴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중 갑자기 공부를 접고 뮤지컬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부모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라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고교 졸업 후 예술대학 뮤지컬 학과진학했, 한 학기 다니다 그만두고 이듬해 다시 일반 대학에 진학을 했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의 차이를 절실히 깨닫기에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었지요.

휴학 후 군대를 갔다 오고 남은 학기를 마무리한 후 졸업 전에 취업도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취업하기가 그리 만만치 않았지만 당당히 취업을 했고, 벌써 네 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속칭 명문대롤 졸업한 나도 근 40여 년 세월 동안 직장을 세 군데  다녔는데 5년 만에 네 번  회사를 옮겼으니 정말 능력이 대단한 자식(?)입니다.


아들에게 아프고 힘든 시간들이 닥칠 때마다 아내와  제삼자로서 "노심초사"의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이럴진대 그 과정들을 몸소 헤쳐나가야  하는 아들은 정작 얼마나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까요?


결국 본인이 풀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실타래를  잘 풀어 오늘까지 와 준 아들에게 부모로서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최근 아들의 모습을 행복이 충만하게 만들어  허스키(?)한 목소리에 천사의 모습을 간직한 예비 며느리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속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만남 이후로 아들이 많이 행복해진 것 같아 아버지로서 참 흐뭇합니다.


아들의 결혼축사를 생각하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떠  올라 말이 길어졌네요!!


어떻게 할까 고민 고민 끝에 아들과 며느리에게 축사를 대신해 시 한 편을 읽어 주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옛날 어려웠던 시절 전국 방방곡곡 한 집  걸러 액자그림에 쓰여 있던 아주 유명한 시입니다.

그 시기 모든 국민들에게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 동력을 준 시 한 편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달랑  시만 읽기가 뭣해서 앞, 뒤  스크립트도 쑥스럽지만 조금 적어 봤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결혼식을 하는 신랑 ○○○군의 아버지,

그리고 이 시간 이후부터 신부 ○○○양의 시아버지가 되는 사람입니다.


오늘처럼 화창한 봄날, 댁내 좋은 일들이 많으심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에 참석해 주신 것에 대해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신랑  아버지로서 축사를 해야 한다기에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며 사실  어깨가 많이 무거웠습니다.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 끝에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 한 편을 축사를 대신해서 준비해 봤습니다.

부끄럽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하객분들 앞에서 신랑, 신부를 위해 한 편을 낭송해 보겠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신랑, 신부에게도 간이 오기까지 힘든 시기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명하게  그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었기에 오늘처럼 기쁜 순간을 맞이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는 "삶은 가시덤불 속에서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내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할퀴어지고 때로는 상처로 인해 쓰라리겠지만 꽃이 필 때의 기쁨은  그 힘들었던 과정들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두 사람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있어 내게는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날입니다.


부모 된 입장으로서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 시간 이후로도   사람 모두  떳떳하고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두 사람은 서로 믿고 서로에게 항상 힘이 될  수 있는 삶의 동반자로서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 자리를 빛 내주신 하객 여러분께 재삼 감사 인사를 드리며  새로운 첫걸음을 시작하는 신랑 신부에게 다시  한번 힘찬 응원의 박수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닭살이 좀 돋는 멘트이긴 하지만 이걸로 축사로 갈음해야겠습니다.

다시 보니 조금 긴 것 같은데  이제 능력의 한계치에 다다랐네요.

그렇지만 밀린 숙제를 한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결혼식 날은 준비된 축사에서 말 한대로 꼭 "화창한 봄날"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식 도중에 지붕이 열리는 멋진 이벤트가 있어 그 결혼식장을 선택했다는 신랑, 신부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비로  인해 지붕을 열지 못하게 될까 걱정이 됩니다.

그럴리는 없겠죠?

따뜻한 햇살과 꽃 비가  신랑, 신부와 하객들의 머리 위로 끝없쏟아지는 결혼식을 상상해 봅니다.



아들님, 며눌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리고 아들 내외의 멋진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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