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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구 Jan 02. 2019

'삼촌팬'이라는 역겨운 단어

포르노가 지배하는 세상 #1

살아오면서 들어본 가장 충격적이고 역겨웠던 단어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삼촌팬'을 뽑겠다. 잠깐 한 때 유행했던 표현이고 이젠 더 이상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으나,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단어가 담고 있는 추잡한 정신세계가 한국에서 사라졌을 리 없으니 잠깐 몇 마디.


늘 그렇듯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 혹은 자주 사용했던 남성이 근처에 있다면 가급적 멀리하길, 특히 스스로를 저 단어로 표현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면 최대한 멀리하길 권한다. 당신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간에. 당신의 정신세계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당신이 혹시 여성이라면 더더욱, 당신의 안전을 위해.


'삼촌팬'이라는 단어는, 자신들이 보며 자라온 포르노의 이미지들을 무대 위의 10대 여성들에게 투영하며 즐기는 성인 남성들, 특히 그것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자들을 일컫는 표현으로, 진정 흉악한 발상이고, 역겨운 표현이다.

이 아이들의, 이 장면들의 '삼촌팬'이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다니, 그리고 그걸 용인해주는 환경이라니, 놀라운 것 아닌가?

내가 저 단어에 대해서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저 단어가 지칭하는 그룹의 연령대에 나 또한 포함되는 관계로, 그들이 어떤 나이 때에 어떤 문화를 소비해왔고, 어떤 비뚤어진 여성상을 상상/형성해 왔는지 무척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 단어가 등장한 것이 대충 10년 전쯤이라 하면 당시 30~40대였던 남성들은 주로 1970~1980년대생이고 그들이 10대 후반~20대를 보낸 것 90년대 말이다. 90년 대 말의 한국. 음성적인 경로로만 유통되던 일본 대중문화가 정식으로 유입되기 시작했고, 개인용 컴퓨터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던 시기. 국내 전용이었던 PC통신을 넘어 인터넷을 통해 포르노가 전파되기 시작한 시기. 그리고 한편으론, 음성적으로만 유통되던 일본 문화가 합법적으로, 전면적으로 한국에 발을 내디딘 시기.


왼쪽 화면(동급생)처럼 다양한 여성들을 꼬셔서 섹스를 할 수도, 오른쪽 화면(프린세스메이커)처럼 딸을 열심히 키워볼 수도 있었다.


불법 복제/수정판으로 유통되던 일본 성인/비성인 만화들, 그 만화들을 따라 하는 수많은 한국 만화들이 일반화한 '남성용 만화식 여성'들; 합법적인 경로로 유통되기 시작한 일본 게임과 애니메이션 속의 헐벗은 여성들, 그리고 비합법적인 경로로 유통되던 일본 성인용 미디어 속의 여성들과 섹스들; 어린 여자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인형 놀이하듯 입맛대로 키우는 '프린세스메이커'시리즈, 교복 입은 여고생들부터 젊은 여교사와 매력적인 미망인까지 꼬셔서 섹스를 하는 것이 목표였던 게임 '동급생' 시리즈...; 반투명한 교복이나 수영복을 입은 미성년자 여성들의 세미누드로 채워진 그라비아 사진집; 그리고 물론, 점점 빨라지는 인터넷 속도와 웹하드 서비스들에 힘입어 보급되기 시작한, 소위 '야동'이라 불리는 일본 포르노들.


이른바 미소녀 애니매이션, 그리고 미소녀 게임들.


1970~80년대 태생의 남성들은, 한국에서 저런 문화들을 통해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배우고, 상상하고, 자위하기 시작한 첫 세대일 게다. 물론 성인용 매체가 한국에 유통되기 시작한 시점이 90년대인 것은 전혀 아니지만, 포르노가 청소년과 젊은 남성들의 책상과 일상생활을 점령하기 시작한 것이 개인용 컴퓨터 및 인터넷의 폭발적인 보급 덕이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 '소년 만화 잡지' 속, '추억의 게임' 속, '야동' 속, 그리고 '걸그룹' 속 여성들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소름끼칠 정도로 닮아있다. 우리의 시선을 가득 채우는 미디어들, 그리고 그 모든 화면을 가로지르는 특정한 여성의 이미지들.


물론 저런 문화를 접하고, 소비해온 모든 사람이 강간범이 되는 것도, 하루 24시간 포르노의 장면들만을 상상하며 사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아마도 흔히들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현실과 판타지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 '정상적'인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 때부터 오랜 시간 동안 포르노에 노출되어온 사람들이 뒤틀린 여성관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은 것을 과연 우리는 부인할 수 있을까? 2000년대 초반부터 젊은 남성들이 포르노 중독을 호소하며 상담 및 치료를 요청하는 케이스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인 상황에서?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이야기들과 이미지들이 우리의 세계관과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광고들, 드라마와 영화들의 표현과 내용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검열하고, 비판한다. 그런데 왜 유독 포르노의 가능한 유해함들에 대해서는 확언을 하는 것을 꺼리고 침묵하고 '개인의 판타지와 취향'이라고 용인해 주는가.


좌/'그라비아' 사진들, 우/일본 포르노 표지 사진들 (그리고 제목 번역들). 애니메이션-게임-사진집-포르노 속 여성의 이미지들은 놀라울 정도로 연속선 상에 존재한다.


스스로가 '삼촌팬'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이 이러한 남성들을 대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린 시절부터, '스타'를 만들어 주겠다는 말에, 일반적인 교육 과정 대신 '연습생'이라는 이름 하에 몇 년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어떤 방식으로 몸을 노출하고 어떤 방식으로 몸을 움직여야 '소비자'들의 욕구를 자극할 수 있을지를 배우고 익혀온 10대 20대 여성들을 보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게다가 스스로가 그녀들의 '삼촌팬'이라 부르는 사람을, 우리는 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그들은, 포르노의 연장선 상에서 그녀들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 단어를 비판하지 않고 사용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적극적인 소비자는 아니라 할지라도, 여성들에 대한 그러한 시선들을 '있을 수 있는', '별것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이다. 한쪽에는 한겨울에도 탱크톱과 미니스커트를 입고 밝게 웃으며 무대에 올라야 하는 젊고 굶주린 여성들이 있고, 한쪽에는 텔레비전, 컴퓨터, 태블릿과 스마트폰으로 가슴과 엉덩이의 섹시한 움직임이 강조된 그녀들의 무대를 보며 즐거워하는 '굶주린' 남성들이 있다. 우리는 누구 편에 서야 하는가.


양쪽의 사진들의 차이점이 정말 보이지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한 시선으로, 다시 한 번 찬찬히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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